[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신흥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 직후 되돌림에 들어갔다. 오픈AI 성장 목표 미달에 따른 글로벌 기술주 급락과 이란 사태 재점화로 인한 유가 급등이 동시에 겹치면서, 올 들어 ‘승승장구’하던 위험자산 랠리에 균열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흥시장, 신고가 직후 0.8% 되밀려
reuters, investing, moneycontrol, The Next Web, tradingeconomics에 따르면, 4월 26일(현지시간) MSCI 신흥시장지수(MSCI EM)는 전장 사상 최고치 경신 직후 0.8%가량 하락한 채 4월 28일 화요일 장 초반을 통과했다. 전날 인공지능(AI) 기대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제안에 힘입어 최대 1.7%까지 오르며 2월 기록했던 직전 고점을 넘어섰던 흐름이 하루 만에 꺾인 것이다.
블룸버그와 머니컨트롤 집계에 따르면, MSCI EM은 올해 들어서만 약 16% 상승해 S&P500의 수익률(약 5%)을 세 배가량 앞서 있었고, 2025년 한 해 동안에는 34% 급등하며 2017년 이후 첫 선진국 대비 아웃퍼폼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밸류에이션이 높아진 상태에서 지정학 리스크와 AI 성장 둔화 우려가 동시에 부각되면서, 단기 조정에 취약한 구조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투자은행 리포트에서 반복되고 있다.
‘AI 대장주’의 급브레이크… 오픈AI 악재 직격탄
직접적인 촉발 요인은 오픈AI의 성장 둔화 보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픈AI가 최근 몇 달간 신규 사용자와 매출에서 내부 목표를 연달아 밑돌고 있으며, 특히 2025년 말까지 ‘주간 10억명’ 수준의 챗GPT 이용자 확보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사라 프라이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향후 초거대 데이터센터 투자 계약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내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캐나다·미국 시장에서 AI 인프라 대표 수혜주로 꼽히는 오라클 주가는 장전(프리마켓) 기준 7%대 급락했고, 엔비디아·브로드컴·AMD 등 주요 반도체 종목도 2~5% 하락대를 기록했다. 오픈AI에 지분·사업적 이해관계를 가진 소프트뱅크는 도쿄 증시에서 10% 가까이 밀렸고, GPU 클라우드 인프라 업체 코어위브(CoreWeave) 역시 7%대 낙폭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더넥스트웹(TNW)은 “오픈AI가 보도를 ‘클릭베이트’라고 반박했지만, 시장은 단 하루 만에 오라클과 코어위브, 소프트뱅크, 주요 칩 메이커에서 수십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증발시켰다”고 전했다. AI 인프라 투자에 이미 6,000억달러 규모의 장기 커밋먼트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최대 수요처인 오픈AI의 성장성에 물음표가 찍히자 ‘AI 캡엑스 사이클’ 자체의 지속 가능성에 의구심이 번지는 모양새다.
이란·호르무즈 변수, 유가 111달러 돌파
지정학 리스크도 위험자산을 압박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브렌트유는 화요일까지 7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배럴당 111달러를 돌파했다.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사실상 봉쇄 상태였던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는 대신, 미국이 이란 항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는 내용의 제안이 테헤란에서 나왔지만, 워싱턴과 테헤란 간 협상은 ‘교착’ 국면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제안에 대해 “매우 곧”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국 측이 이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기존의 강경 조건을 완화할 조짐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이로 인해 중동산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상존하고, 에너지 가격발(發) 인플레이션 재가열 가능성이 글로벌 채권·주식시장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특히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통화·채권시장이 취약 고리로 지목된다.
코스피는 신고가, 대만·필리핀은 흔들
아시아 증시는 지역·업종에 따라 명암이 갈렸다. 한국 코스피는 28일 장중 6,712.73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쓴 뒤, 0.39% 오른 6,641.02로 마감했다. 빅테크보다는 자동차·철강 등 경기민감주가 상승장을 이끌었고, 이란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한 달 동안 35조원 이상 순매도에 나섰던 외국인 투자자는 4월 들어 ‘역류수’처럼 되돌아와 이달에만 3조2,1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4월 코스피의 월간 상승률이 26%를 상회했다는 점을 들어 “중동발 충격에서 완전 회복, 나아가 선제적 리레이팅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반면 대만 증시는 기술주 중심의 역풍을 정면으로 맞았다. FTSE TWSE 대만 50 지수는 대형 반도체주가 AI 관련 매도세에 휘말리며 약 0.8% 하락했다.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스토리의 양대 축으로 꼽히는 한국·대만 중, 한국이 ‘AI+제조업·수출 다변화’ 기대에 상대적 강세를 보인 반면, 대만은 순수 반도체·파운드리 노출비중이 높아 오픈AI 악재의 충격이 더 크게 반영된 셈이다.
외환시장에서는 필리핀 페소가 대표적인 약세통화로 부상했다. 필리핀 페소는 월요일 달러당 60.71페소로 마감해 사상 최저치 인근까지 밀려났는데, 이 역시 고유가 장기화로 수입 물가와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란 사태 장기화 가능성이 부각될수록, 경상수지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취약한 신흥국 통화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가 글로벌 리포트에서 잇따른다.
연준 ‘동결’ 기정사실… 관건은 파월의 한마디
통화정책 환경도 투자심리를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는 화요일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논의한다. 선물시장에 반영된 기대를 보면 ‘동결’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시장의 초점은 수요일 제롬 파월 의장이 내놓을 경제·물가 진단과 향후 금리 인하 시점에 쏠려 있다.
이란 리스크와 유가 상승이 겹친 상황에서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강하게 우려할 경우, 신흥시장에 우호적이었던 ‘완화 기대’가 위축되며 주식·채권·통화 세 시장 모두 추가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반대로 연준이 물가 상방 리스크를 인정하면서도 성장 둔화와 금융여건을 감안해 완화의 문을 열어둔다면, 이번 조정은 ‘숨 고르기’ 수준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는 기대도 공존한다.
“AI·유가·금리 삼각파도… 신흥국 선별투자 국면”
전문가들은 이번 조정을 ‘구조적 강세장 내 전형적인 변동성 확대 구간’으로 진단하면서도, AI 성장성에 대한 신뢰와 유가·금리의 경로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올스프링자산운용의 게리 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MSCI EM의 랠리는 단기 뉴스보다는 구조적 요인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면서도 “AI 수혜국과 에너지·인프라·방산 투자 수혜국 중심으로 ‘질적 차별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들어 MSCI EM의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는 약 30% 상향 조정된 반면, MSCI 월드지수는 12% 상향에 그쳤다. AI 무게중심이 큰 한국·대만의 실적 개선 기여도가 지수를 끌어올린 가운데, 이란 전쟁 충격 이후 중동·원자재 수출국과 인도·인도네시아 등 내수·인프라 투자국도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작년 강세장 이후 밸류에이션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정학·금리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신흥국 증시는 단기적으로 더 큰 조정에 노출될 수 있다”며 2026년까지 MSCI EM의 EPS가 25% 증가할 것이라는 기본 시나리오는 유지하되 단기 리스크 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오픈AI 성장엔진의 속도 조절’과 ‘이란발 유가 불씨’, 그리고 ‘연준의 속내’가 맞물리며 신흥시장에는 강한 삼각파도가 몰려온 형국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AI 인프라 과잉투자 여부, 유가의 상단, 금리 인하 시점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점검하면서, 국가·업종·통화별로 노출을 세밀하게 재조정하는 ‘선별 투자’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