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중국이 메타(Meta)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마누스(Manus) 인수를 공식 불허하며, 20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빅딜’이 미·중 기술패권 전면전에 휘말렸다. 힘들게 키운 자국 AI 기술을 베이징의 영향권 안에 묶어두기 위한 단호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블룸버그와 로이터에 따르면, 4월 27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외국인투자안전심사 사무실 명의로 “법에 따라 마누스 프로젝트 인수에 대해 투자 금지 결정을 내린다”며 “당사자에게 인수 거래 철회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2025년 12월 메타가 마누스 인수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거래 철회’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메타 측 대변인은 논평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제2의 딥시크’ 20억달러 딜, 4개월 만에 막힌 이유
마누스는 2022년 설립된 중국계 AI 스타트업으로, 심층 리서치 리포트 작성과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제작 등 복합적 고난도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를 앞세워 ‘제2의 딥시크’로 불리며 급부상했다. 2025년 중반에는 본사를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옮기고 ‘Butterfly Effect Pte. Ltd.’라는 법인을 세우며 글로벌 자본 유치와 해외 사업 확장을 꾀했다. 이어 그해 12월, 메타가 마누스 싱가포르 법인을 약 20억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발표하면서 이 스타트업은 단숨에 글로벌 AI M&A의 상징적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시각은 달랐다. 2026년 1월 중국 상무부가 기술 수출 통제 및 해외투자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심사에 착수한 데 이어,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3월 메타와 마누스 경영진을 베이징으로 소집해 우려를 전달했고, 이후 공동창업자 2명에게 출국 제한(일종의 출국금지) 통보가 내려졌다는 보도까지 이어졌다.
뉴욕타임스 등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마누스의 기술이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해당하는지 집중 검토해 왔다고 전했다.
이번 불허 결정은 결국 베이징이 마누스를 ‘실질적인 중국 AI 자산’으로 규정하고, 메타로의 기술 이전과 인재 유출을 국가 안보·산업 전략 차원에서 차단한 결과로 해석된다.
‘싱가포르 워싱’ 정조준…기술 민족주의의 전면 등장
마누스 사태의 핵심 키워드는 ‘싱가포르 워싱(Singapore washing)’이다. 중국 스타트업이 본사를 싱가포르 등 제3국으로 옮겨 중국 규제의 그늘을 벗어난 뒤, 서방 빅테크에 고가로 매각되는 경로가 최근 몇 년 사이 대표적인 엑시트 모델로 떠올랐다. 브런치·전문 리포트 등에 따르면 마누스 역시 지정학 리스크와 중국의 기술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싱가포르 이전을 택했고, 그 결과 메타 인수라는 ‘대박 딜’에 안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기술 유출’이자 규제 회피 시도로 규정하며 칼을 빼 들었다. 한국 KOSAC 동향리포트와 국내외 보도들을 종합하면, 베이징은 메타–마누스 딜 심사를 계기로 AI, 반도체, 양자기술 등 전략 기술 분야에 대해 ‘기술 민족주의(tech nationalism)’ 기조를 노골화하고 있다. 특히 2026년 들어 NDRC와 관련 부처가 Moonshot AI 등 유망 AI 기업들에게 “정부의 명시적 승인 없이는 미국계 자본을 받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보도는, 단일 기업 딜을 넘어 미·중 간 기술·자본 흐름 전체를 재설계하려는 신호로 읽힌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이 2023년 이후 중국 AI·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대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해 온 흐름과 ‘거울상(mirror image)’을 이룬다. 워싱턴이 ‘돈과 장비의 흐름’을 죄고 있다면, 베이징은 ‘기술과 인재의 흐름’을 틀어막는 구조다.
메타·마누스·글로벌 AI 생태계에 미치는 파장
이번 결정은 메타와 마누스 모두에게 상당한 불확실성과 비용을 안긴다. 메타 입장에선 20억달러 규모의 인수 계약이 중국 규제 변수로 좌초하면서, 자사 AI 생태계에 마누스의 범용 AI 에이전트 기술을 신속히 이식하려던 전략이 지연되거나 원점 재검토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메타는 마누스 팀을 미국 조직에 통합했다고 밝혔지만, 중국 당국이 창업자와 핵심 인력에 대한 출국 제한, 기술 이전 제한을 병행할 경우, 실제 연구·개발과 제품화 과정에는 상당한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마누스와 같은 중국계 ‘탈중국’ 스타트업, 중국정부의 경고는 치명적
중국 무역·산업 관련 기관과 국내 언론 분석에 따르면, AI·딥테크 스타트업이 향후 싱가포르·두바이 등으로 법인을 이전하더라도, 중국 당국이 창업자 국적·기술 출처·연구개발 거점을 근거로 ‘사실상의 중국 기업’으로 간주해 개입할 여지가 커졌다. 이는 그동안 중국계 스타트업들이 선호해온 “중국에서 키우고, 해외에서 엑시트한다”는 모델 자체를 흔드는 조치다.
글로벌 AI 생태계 차원에서도 파장은 작지 않다.
첫째, 중국발 AI 기술의 서방 빅테크 편입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지면서, AI 기술 스택이 ‘미국 중심 블록’과 ‘중국 중심 블록’으로 더욱 분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둘째, 스타트업 투자 측면에서는 중국계 창업자를 둔 AI 기업에 대한 미국·유럽 벤처캐피털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인수·지분 매각 등 엑시트 경로가 정치·규제 변수에 의해 차단될 수 있다는 사례가 구체적 수치(20억달러 딜 불허)와 함께 눈앞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중 ‘AI 장벽’ 시대, 한국에겐 무엇이 기회인가
마누스 사태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이제 개별 기업 인수합병 거래의 세부 조건까지 통제하는 국면에 들어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수출통제·투자제한을 통해 중국의 첨단 AI 역량을 봉쇄하고, 중국은 역으로 외자 인수 제한과 기술·인재 유출 차단을 통해 자국 기술 주권을 강화하는 ‘쌍방 통제 구조’가 굳어지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중간국·개방형 경제에는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열린다. 단기적으로는 미·중 양측 규제의 교차점에서 한국 기업과 투자자 역시 제3자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중국발 AI 인재·기술이 직접 서방으로 넘어가기 어려워질수록, 한국·싱가포르·두바이 등이 중간 허브로 부상할 여지가 있고, 미국·유럽 빅테크가 중국계 대신 ‘정치·규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대만·동남아 스타트업을 선호할 가능성도 커진다.
관건은 한국이 이 기회를 ‘규제 명확성’과 ‘데이터·AI 인프라 경쟁력’으로 연결시키느냐다. 마누스의 20억달러 딜 좌초가 보여주듯, AI 시대의 M&A와 투자 판도는 더 이상 기술과 밸류에이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법·제도·안보·외교가 한꺼번에 얽힌 복합 게임 속에서, 누가 더 예측 가능한 규칙과 신뢰할 수 있는 생태계를 제공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