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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동산

[이슈&논란] NYT,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로 아담 백 지목…증거는 쌓였지만 결론은 없다

 

[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뉴욕타임스(NYT)가 18개월에 걸친 탐사보도 끝에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가장 유력한 실존 인물’로 영국 출신 암호학자 아담 백(Adam Back·55)을 지목하면서, 17년 묵은 암호화폐 업계 최대 미스터리가 다시 불붙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핵심인 ‘결정적 증거’는 여전히 부재하며, 당사자인 백은 단호한 부인으로 맞서고 있어 논쟁은 장기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NYT 탐사보도, 무엇을 근거로 백을 지목했나


NYT의 이번 보도는 테라노스 사기 사건을 폭로한 존 캐리루(John Carreyrou)가 주도했으며,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암호학·사이버펑크 메일링 리스트에 남겨진 방대한 이메일과 게시글을 AI 기반 문체 분석과 기술사(史) 검증으로 재구성한 것이 골자다. NYT는 이 과정에서 12명의 ‘사토시 후보’를 상정한 뒤, 비트코인 백서와 후보들의 글을 비교하는 스타일로 문체 및 표현 사용 패턴을 추적했다.

 

핵심 물증으로 제시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백이 1997년 제안한 ‘해시캐시(Hashcash)’라는 작업증명(Proof-of-Work) 기반 스팸 방지·디지털 현금 프로토콜이 비트코인 설계의 직접적인 뿌리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사토시는 2008년 비트코인 백서에서 해시캐시를 명시적으로 인용했고, 같은 해 백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져 있다.

 

둘째, NYT가 의뢰한 계산언어학자 플로리앙 카피에로(Florian Cafiero)의 스타일로메트리 분석 결과, 12명의 후보 가운데 백의 문체가 사토시의 글과 가장 가깝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셋째, 추가 텍스트 분석에서 백과 사토시의 글에서 동일한 하이픈 표기 오류가 67건 발견됐는데, 이는 두 번째로 유사한 용의자의 거의 두 배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정황은 ‘타임라인의 공백’이다. NYT에 따르면 백은 사토시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 암호학 메일링 리스트에서 눈에 띄게 조용했다가, 2011년 4월 사토시가 커뮤니티에서 사라진 뒤 약 6주가 지나서야 비트코인 관련 발언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캐리루는 “proof-of-work”, “partial pre-image(부분 프리이미지)”, “burning the money(돈 소각)” 같은 표현이 수년에 걸쳐 백과 사토시의 글에서 동일한 맥락과 용례로 반복 등장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언어적 지문’으로 제시했다.

 

문체 분석과 67개의 하이픈 오류, 설득력과 한계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문체 분석이다. 카피에로는 암호학·사이버펑크 메일링 리스트에서 1992~2008년 사이 공유된 13만여개의 게시물과 이메일을 수집해, 문장 구조, 철자 오류, 복합명사의 하이픈 사용, “its/it’s” 오용 등을 지표로 삼아 통계적 유사도를 측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백이 사토시와 가장 높은 유사도를 보였고, 할 피니(Hal Finney)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NYT와 복수의 2차 보도 내용이다.

 

다만 카피에로 본인은 이 결과가 ‘결정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백이 “가장 가까운 후보”이긴 하지만, 피니와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압도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결론을 단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즉, ‘가장 그럴듯한 후보’일 수는 있어도, ‘사토시임이 입증된 인물’로 격상하기에는 증거의 질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업계 반응도 냉담하다. 비트코인 지갑 업체 카사의 최고보안책임자(CSO) 제임슨 롭(Jameson Lopp)은 “사토시는 문체 분석으로 잡아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라며, 텍스트 유사성만으로 정체를 특정하는 시도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도 “온라인 활동량이 많은 인물일수록, 우연한 유사성을 발견할 확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7개의 동일한 하이픈 오류는 언론과 투자자에게 강한 서사적 힘을 제공한다. 비트코인 전문 매체와 거래소 리서치들은 이를 “일반적인 우연으로 보기엔 적지 않은 수치”라고 소개하면서도, 상대적 비교(‘두 번째 용의자의 두 배’)라는 점을 강조해 절대적인 증거로 포장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아담 백의 단호한 부인과 ‘확인 편향’ 논쟁


논란의 중심에 선 아담 백은 NYT 보도 직후부터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엘살바도르에서 진행된 2시간 분량의 영상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사토시라는 주장을 6차례 이상 부인했으며, NYT 측이 요구한 이메일 메타데이터 제공도 거절했다는 게 NYT 기사와 후속 보도의 공통된 설명이다.

 

백은 이후 소셜미디어와 외신 인터뷰에서 이번 보도가 “전형적인 확인 편향(confirmation bias)의 결과”라고 역공했다. 여러 사람이 디지털 현금과 작업증명 시스템을 연구하던 시기에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었을 뿐인데, 사후적으로 ‘퍼즐 조각’을 맞추다 보니 자신의 이름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는 자신이 온라인에서 방대한 양의 글을 써왔기 때문에, 분석 대상 텍스트가 풍부한 만큼 사토시와의 유사성이 ‘통계적으로 과대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백은 2014년 공동 설립한 비트코인 인프라 기업 블록스트림(Blockstream)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중이며, 최근에는 캔터 피츠제럴드(Cantor Fitzgerald)의 페이퍼 컴퍼니와의 합병을 통해 비트코인 재무(treasury) 회사를 상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ARKM 리서치는, 만약 백이 실제로 사토시이고 사토시의 비트코인 지갑(약 110만 BTC)에 접근 권한을 갖고 있다면, 현재 가격 기준으로 최소 약 780억 달러(최고점에서는 약 1,340억 달러)에 달하는 순자산을 보유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디까지나 ‘가정’에 기반한 계산에 불과하다.

 

업계의 회의론과 ‘익명의 창시자’라는 서사

 

NYT 보도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업계 전반의 태도는 “흥미로운 서사이지만, 실질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쪽에 가깝다. 암호화폐 거래소 및 온체인 분석 업체들의 리포트는 하나같이 “NYT의 조사는 지금까지 시도된 언론 보도 가운데 가장 공들인 작업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암호학적 증거(예: 사토시 주소에서의 서명 메시지 또는 코인 이동)가 전무한 상태”라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2024년 영국 법원이 크레이그 라이트(Craig Wright)에 대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가 아니다”라고 공식 판결을 내린 이후, 업계에서는 ‘사토시 공방’에 필요한 증거 기준이 한층 높아진 분위기다. 법원과 규제기관, 그리고 대형 기관투자가들에게는 “사토시 지갑에서 나오는 암호학적 서명 혹은 실제 코인 이동”이 사실상 유일한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사토시의 익명성’을 비트코인의 핵심 자산 중 하나로 본다는 점이다. 백 본인도 최근 발언에서 “비트코인에는 알려진 창시자가 없는 편이 오히려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한다”고 언급했다. 창시자가 특정 인물로 확정될 경우, 해당 인물에 대한 규제 압박이나 정치적 공격이 네트워크 전체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남은 것은 110만 BTC와 ‘미해결 사건’의 힘


사토시 정체 논란이 반복될수록, 시장이 가장 예민하게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온체인(on-chain) 데이터다. 약 110만개로 추정되는 사토시 보유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출범 이후 17년 동안 단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 이 물량은 현재 시가 기준으로 수십억 달러를 훌쩍 넘는 규모로, 어느 날 갑자기 일부라도 이동한다면 가격과 심리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데 시장 참여자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이번 NYT 보도는 사토시의 정체를 둘러싼 서사에 새로운 장(章)을 더했지만, ‘사건 종결’과는 거리가 멀다. 증거는 정교해졌으나 여전히 정황에 머물고, 주요 이해당사자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며, 시장은 차분하다. 비트코인 창시자를 둘러싼 이 17년 묵은 미스터리는, 당분간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편이 오히려 비트코인이라는 서사의 힘을 더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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