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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빅테크칼럼] AI, ‘평등의 기술’이 아니라 고소득·고학력·남성에게 쏠린 특권이 되고 있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소득·성별·연령·학력에 따라 혜택이 극단적으로 쏠리는 ‘AI 디바이드(AI 격차)’가 빠르게 굳어지는 양상이다. 기술 낙관론이 말하던 “AI가 모두의 생산성을 공평하게 높여줄 것”이라는 서사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통계와 거리가 멀다는 게 국내외 데이터를 종합한 결론이다.

 

고소득층 60% 이상이 매일 AI 사용…저소득층은 16%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리서치 기업 포컬데이터(Focaldata)가 미국·영국 근로자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AI 노동시장 추적기’ 첫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근로자의 60% 이상이 AI 도구를 ‘매일’ 사용하는 반면, 저소득 근로자 가운데 매일 AI를 쓴다고 응답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AI 활용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전형적인 ‘K자형 기술 확산’의 단면이다.

 

FT는 이 조사 결과를 두고 “임금과 교육 수준, AI 활용 간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상위 노동자의 생산성을 더 끌어올리는 반면 하위 노동자에게는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소득 격차 확대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별도의 설문조사에서 직장에서 AI를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 성인의 21%였지만,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 가구에서는 34%로 크게 뛰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고학력층이 AI를 더 많이, 더 자주 쓰고 있다는 정황은 여러 조사에서 일관되게 포착되고 있다.

 

국내 데이터도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련 기관이 집계한 생성형 AI 이용 실태를 보면, 월 가구소득 500만원 이상 계층의 AI 이용률은 38.7%로, 200만원 미만 계층(12.1%)의 3.2배에 달했다. 학력별로는 대졸 이상 집단의 AI 이용률이 44.0%로, 초졸 이하 집단(20.1%)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연령별로는 20대의 이용률이 53.9%에 달한 반면 70대 이상은 7.2% 수준에 그쳤다. 한국 역시 고소득·고학력·저연령층으로 AI 혜택이 쏠리는 구조적 ‘AI 디바이드’가 이미 확인된 셈이다.

 

“여성은 망설이고, 남성은 먼저 쓴다” 성별 격차 고착 조짐


FT–Focaldata 조사에서는 성별에 따른 AI 활용 격차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기술, 교육, 유통 등 다양한 산업에서 여성이 AI를 사용할 가능성은 남성보다 약 20% 낮은 것으로 집계됐고, 연구진은 그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디지털 역량 차이는 크지 않은데도, 실제 AI 사용에서는 일관된 격차가 포착됐다는 점에서 향후 노동시장 성별 격차를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가 성인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별도의 조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개인적으로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비율은 여성 14.7%, 남성 20.0%로 5.3%포인트 차이가 났으며, 특히 AI가 정신건강·개인정보·일자리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크게 우려하는 집단에서는 여성 14.1%, 남성 31.0%로 격차가 16.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연구진은 “여성의 낮은 AI 활용률은 ‘기술 이해 부족’이 아니라, AI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높은 인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국내 조사에서도 성별 격차가 확인된다. 한 조사에서 “생성형 AI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성 39.3%, 여성 49.1%로 약 10%포인트 차이가 났고, “매일 사용한다”는 응답은 남성 8.6%, 여성 6.5%로 남성이 여성보다 높았다. 단순한 접근성 문제가 아니라, 위험 인식·기대효과·조직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AI를 먼저 써 보는 쪽’과 ‘지켜보는 쪽’이 성별로 갈라지고 있는 셈이다.

 

‘MZ’가 아니라 30대 숙련자가 AI 주도…경력 구조까지 흔든다

 

이번 FT–Focaldata 데이터가 던지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메시지는 “AI는 젊은 디지털 네이티브가 가장 많이 쓸 것”이라는 통념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가장 적극적으로 AI를 사용하는 집단은 막 사회에 진입한 20대가 아니라, 이미 경력을 쌓은 30대 지식노동자들이었다. AI를 업무의 일부로 녹여낼 수 있을 만큼 도메인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도입을 주도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FT는 이 흐름이 이른바 ‘커리어 피라미드’의 하단부, 즉 신입·주니어 직군을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초년생들이 반복·기초 업무를 수행하며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AI를 장착한 숙련 인력이 그 업무까지 흡수하면서 신규 인력이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상위 숙련 인력의 생산성을, 장기적으로는 세대 간 기회 격차를 동시에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일부 글로벌 연구에서는 AI에 가장 크게 노출된 직군이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고임금 화이트칼라 직종이며, 이들 직군 평균 임금이 저노출 직군보다 47%가량 높다는 분석도 제시된 바 있다. AI가 고임금·고숙련 화이트칼라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동시에, 그 결과물과 도구를 다시 이들이 선점하는 ‘이중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다.

 

“AI로 늘어난 부, 고소득층에 거의 전적으로 귀속”…전 세계적 정책 경고


이 같은 불균등한 AI 확산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정책 논의의 중심 의제로 떠올랐다.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왈레 에둔은 IMF·세계은행 봄 회의에서 “AI와 디지털 금융을 포함한 기술 혁신의 혜택이 폭넓게 공유되도록 국제사회가 보장해야 하며, 특히 신흥시장과 저소득 국가들이 포용적 성장을 위한 도구·인프라·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확산의 초기 국면에서부터 ‘불평등의 경사’를 완화할 글로벌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경고다.

 

노동시장 데이터는 우려를 뒷받침한다. 인력 분석업체 레벨리오 랩스(Revelio Labs)는 올해 초 발표한 연구에서 자동화 압력이 저임금 직종의 임금 상승을 불균형적으로 억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AI가 주로 고소득 사무직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기존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하위 임금 계층의 임금 성장률을 먼저 갉아먹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거시경제 차원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온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의 이네스 맥피 CEO는 포춘(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AI 도입으로 미국 전체 부가 약 7% 증가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 혜택은 “거의 전적으로 고소득 가구에 집중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의 K자형 경제 궤적이 적어도 2035년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며, “AI가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더라도 분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으면 체감 격차는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본시장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공유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올해 3월 연례 서한에서 “데이터, 인프라, 자본을 갖춰 AI를 대규모로 배포할 수 있는 기업들이 불균형적으로 큰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밝히며, 현 구조가 지속될 경우 AI 혁신의果実이 소수 빅테크와 초대형 자본에 집중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AI 교육·접근성 정책’이 곧 복지·노동정책


국내 데이터와 글로벌 통계를 종합하면, AI는 이미 소득·학력·성별·연령·직군 간 기존 격차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 직장인의 AI 활용률은 61.5%로 동아시아 1위를 기록했다는 조사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소득·직무·기업 규모에 따른 도입 격차와, 일반 국민 차원에서 드러난 3배 이상의 소득별 이용률 차이가 동시에 존재한다. ‘AI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이 곧 ‘AI 혜택의 공평한 배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AI 정책은 더 이상 산업정책이나 기술진흥정책에만 머물 수 없다.  AI는 이미 ‘누가 더 빨리, 많이 쓰느냐’의 경쟁을 넘어, ‘누가 혜택을 가져가고 누가 뒤처지는가’를 가르는 새로운 사회계층 분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논쟁이 아니라, “AI 도입의 방향타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라는 차원의 정치·사회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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