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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동산

[The Numbers] ‘3조 블록딜’로 12조 상속세 종결…홍라희·삼성家, 5년짜리 족쇄 풀었다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삼성 오너 일가를 5년간 옥죄었던 12조원대 상속세 부담이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의 3조원대 삼성전자 블록딜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고(故)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이어진 ‘세계 최대 규모 상속세 분납 드라마’가 마침표를 찍으면서, 시장의 시선은 이제 상속 부담에서 삼성전자의 실적·지배구조 재편 시나리오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3조800억 규모 블록딜, 할인율 2.5%·지분 0.25% 이동


9일 금융투자업계와 전자공시에 따르면 홍라희 명예관장은 이날 정규장 개장 전 삼성전자 보유 지분 1500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다. 매각 단가는 전 거래일 종가 21만500원 대비 약 2.5% 할인된 20만5237원으로, 총 매각 금액은 약 3조786억~3조1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는 삼성전자 전체 발행주식의 약 0.25% 규모로, 이번 거래 이후 홍 명예관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49%에서 1.24%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번 블록딜은 전날 장 마감 뒤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북빌딩)을 진행해 할인율과 물량을 확정하는 전형적인 IB 구조로 진행됐다. IB 업계에선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대규모 현금 재원을 한 번에 확보하기 위한 ‘정공법’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1500만주라는 적지 않은 물량이 장내가 아닌 시간 외에서 소화되면서, 단기 매도 오버행 우려가 분산됐다는 점도 시장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12조원 상속세, 연 2조씩 6회에 나눠 낸 ‘세계급’ 분납 구조

 

삼성 일가의 상속세 논란은 2020년 10월 이건희 회장 별세 직후부터 시작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주식 등 상속재산을 평가한 결과, 상속인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는 주식분만 11조400억원으로 추산됐고, 전체 상속세 규모는 12조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정됐다. 이는 당시 국내 전체 상속세 납부액(약 3조1500억원)의 4배에 육박하는 규모로, ‘단일 가족 기준 세계 최대 상속세’라는 수식어를 낳았다.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5년간 세 부담을 나눠 내는 방식을 택했다. 구조는 명확했다. 상속세 확정 후 처음 신고·납부 시 전체 세액의 6분의 1을 먼저 납부하고, 이후 최대 5년간(총 6회) 매년 4월 말께 나머지를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삼성 일가는 2021년부터 매년 약 2조원 안팎의 상속세를 분납해 왔고, 2026년 4월 6차 납부를 끝으로 총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완납하는 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홍라희 명예관장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는 약 3조10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상속세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 지분에 기초해 부담해야 했던 만큼, 홍 명예관장의 잇단 지분 매각은 사실상 ‘상속세 분납 로드맵’에 맞춘 재원 마련 수순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세 차례에 걸친 삼성전자 지분 매각…주가 상승이 만든 역설


홍 명예관장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3월과 2024년 1월 그는 각각 약 0.3% 안팎의 삼성전자 지분을 블록딜로 처분해 1조3720억원, 1조4052억원 수준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에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신한은행과의 ‘유가증권 처분 신탁계약’이 공시되면서, 삼성전자 주식 1500만주를 6월 말까지 시장 상황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사전 포석이 깔렸다.

 

흥미로운 지점은 주가 레벨이다. 1월 신탁계약 체결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10만원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어, 당시 기준으로 1500만주 처분 시 예상 매각대금은 약 2조800억~2조1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이후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와 인공지능(AI) 서버용 HBM 수요 확대가 겹치면서 삼성전자 주가는 20만원대를 돌파했고, 이번 블록딜 단가는 20만5237원으로 결정됐다. 그 결과 동일한 1500만주 매각에도 실제 확보한 현금은 약 3조원 안팎으로 불어났다.

 

이 역설적인 구조는 삼성전자 주가 상승이 상속세 재원 마련에 오히려 ‘레버리지 효과’를 제공했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애초 연부연납 기간 내 상속세 전액을 충당하기 위해선 더 많은 주식을 처분해야 했지만, 주가가 두 배 가까이 올라주면서 필요한 매각 물량은 지분 0.25% 수준에 그친 셈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오너 일가의 지배력 희석을 최소화한 사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삼성家 전체 상속세 완납 임박…오버행 해소·지배구조 시나리오 주목

 

홍라희 명예관장의 블록딜로 촉발된 현금 확보는 삼성 오너 일가 전체의 상속세 납부 마무리 국면과 맞물려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고문 등 자녀들 역시 그간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보유 지분 매각과 금융권 대출을 통해 분납 재원을 조달해 왔다. 이번 4월 6차 분납분 납부를 끝으로 삼성 일가는 총 12조원 규모 상속세의 법적 납부 의무를 모두 이행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블록딜을 상속 부담의 ‘종결 선언’이자, 삼성전자 주가를 짓눌러온 오너 일가 매물(오버행)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내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국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 지분 매각이 언제, 얼마나 나올지”가 삼성전자 투자 판단의 변수로 작용해 왔다. 상속세 완납이 가시화되면서, 향후 삼성전자 주가의 핵심 변수는 반도체 시황·AI 투자 전략·주주환원 정책 등 펀더멘털 요인으로 재정렬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 일각에선 상속세 족쇄에서 벗어난 삼성 오너 일가가 인공지능,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성장축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함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상속세 완납이 이뤄지면 지배구조 재편과 주주환원 확대, 해외 M&A 등 장기 패키지 전략이 보다 유연하게 추진될 수 있다”는 IB 업계의 평가를 전했다. 

 

‘세금 12조’가 남긴 것…초대형 상속세와 시장 간의 긴장


삼성가의 상속세 납부 과정은 단일 기업집단에 부과된 초대형 세금이 어떻게 자본시장과 교차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례로 남게 됐다. 한편으론 “고액 상속세로 인한 지배력 약화와 대규모 블록딜은 기업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다른 한편으론 “초대형 상속에 합당한 과세와 투명한 재산 승계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분명한 것은,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이어진 12조원 상속세 분납과 그에 따른 수차례의 블록딜이 삼성전자 주가와 투자심리에 적지 않은 변동성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이제 상속세 완납이 초읽기에 들어간 만큼, 향후 삼성전자와 삼성그룹 전반을 둘러싼 논의의 초점은 ‘세금’에서 ‘성장 전략과 지배구조의 방향성’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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