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삼성전자가 모바일용 구형 D램인 LPDDR4 신규 주문을 사실상 접고 차세대 LPDDR5·LPDDR5X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이미 심화된 글로벌 메모리 공급난이 스마트폰 시장 전반의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업계와 시장조사업계의 객관적인 수치들을 종합하면, 이번 결정은 단순한 제품 단종이 아니라 ‘AI 중심 메모리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전략적으로 계산된 수이자, 저가·중저가 스마트폰 생태계에 직접적인 비용 충격을 가하는 분수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 “LPDDR4 접고 첨단 메모리로”…계획된 퇴장이 현실화되다
대만 공상시보 등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5년 6월을 끝으로 DDR4와 저전력 모바일용 LPDDR4 신규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주요 고객사에 통보했다. 10나노급(1z) 공정에서 LPDDR4 8Gb 일부 품목 생산은 이미 2025년 4월 중 중단됐으며, 출하는 늦어도 10월 전후로 마무리하는 일정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3년 DDR3 공급을 완전히 끊은 데 이어, 불과 1년여 만에 그 다음 세대인 DDR4·LPDDR4까지 빠르게 정리하는 수순이다.
배경에는 두 가지 축이 분명하게 자리한다. 첫째, 중국 CXMT 등 후발 업체들이 구형 D램에서 저가 공세를 강화하면서 수익성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HBM과 DDR5, 그리고 LPDDR5·LPDDR6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수요가 AI 서버·온디바이스 AI 확산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면서, 한정된 웨이퍼 캐파를 어디에 배분할지 선택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삼성은 이미 기존 D램 라인을 DDR5와 HBM 등 고사양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LPDDR4 생산 중단은 이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메모리 가격 3배…저가 스마트폰부터 ‘칩플레이션’ 직격탄
문제는 타이밍이다. 메모리 공급난이 극심해지는 국면에서 세계 1위 메모리 업체가 구형 LPDDR4 공급을 접으면서, 특히 200달러 이하 보급형 스마트폰 생태계에 가격 폭탄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최신 전망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모바일용 LPDDR4·LPDDR5 가격은 2025년 3분기 대비 거의 3배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메모리 업체 계약 가격 자료에 따르면, 모바일용 LPDDR5는 2025년 1분기 대비 3배 가까이 급등해 기가바이트(GB)당 10달러 안팎까지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트렌드포스 역시 2026년 1분기 범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최대 90~95% 급등했다고 분석하며, DDR4 이하 구형 제품 생산 중단과 공급 타이트 현상이 가격 급등의 핵심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보급형 기준 20% 안팎으로 추산되지만, 최근 보고서들에선 저가형 모델의 경우 부품 가격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메모리 비중이 50%를 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저가 안드로이드 단말의 경우 LPDDR4(X) 기반 설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이번 LPDDR4 공급 중단과 가격 급등은 설계 변경 비용과 부품 단가 상승을 동시에 유발하는 이중 부담으로 작용한다.
출하량 12% 급감 전망…“팬데믹보다 더 큰 충격”
수요 측면의 충격 역시 수치로 확인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스마트폰 마켓 아웃룩 트래커’에서 2026년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12.4% 감소해 11억 대를 소폭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4G 전환이 가속화되던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연간 물량이자, 역대 최대 연간 감소폭이다. IDC 역시 비슷한 수준인 12~13% 감소를 예상하며, “10년 이상 만에 최저 출하량”이라고 규정했다.
이미 2026년 1분기에도 경고 신호는 뚜렷하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으며, IDC는 같은 기간 2억 8,970만 대로 4.1% 하락했다고 집계했다. 두 기관 모두 이번 감소세의 주된 원인으로 DRAM 및 NAND 공급 부족과 이에 따른 완제품 가격 상승, 특히 보급형 기기의 공급 제한을 지목한다. IDC 리서치 디렉터 앤서니 스카르셀라는 “메모리 부품 가격 급등으로 신흥 시장에서 소비자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며, 이는 지난 5년간의 팬데믹보다도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운터포인트와 IDC는 공통적으로 이번 위기를 “일시적 쇼크가 아닌 구조적 전환”으로 정의한다. AI 서버 투자 폭증, HBM 생산 병목, 레거시 D램 감산·단종이 동시에 겹치면서 2027년까지 메모리 중심의 공급 쇼크가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칩셋·OEM 전략 재편…“스펙 다운이냐, 가격 인상이냐” 양자택일
삼성의 LPDDR4 엑시트는 칩셋 설계와 완제품 포트폴리오 전반에도 재편을 강요하고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퀄컴과 미디어텍 등은 중저가 라인업에서 LPDDR4X 지원 비중이 여전히 높다. 삼성 갤럭시 A 시리즈를 비롯한 다수의 보급형·준보급형 단말 역시 LPDDR4X 기반 설계가 많아, 향후 리비전이나 후속 모델에서 LPDDR5·LPDDR5X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제조사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 출하량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완제품 가격을 인상해 늘어난 메모리 원가를 전가하는 방식. 둘째, 저장용량(RAM·스토리지) 스펙을 낮추거나, 카메라·디스플레이 등 다른 부품에서 원가를 절감해 전체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는 방식. 셋째, 아예 최저가 라인업 자체를 축소·정리하고, 상대적으로 마진이 높은 중고가 라인에 자원을 집중하는 포트폴리오 재편이다.
업계 관측에 따르면, 특히 중국·인도 등 신흥 시장을 겨냥한 저가 안드로이드 OEM들이 세 번째 시나리오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LPDDR4 공급 중단의 ‘그림자 효과’도 간과하기 어렵다. 중국 CXMT 등 후발 업체들이 구형 LPDDR4 수요를 일부 떠안을 수 있지만, 공정·품질·신뢰성 측면에서 대형 글로벌 OEM들이 단기간에 전면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이 공백은 결과적으로 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이저 3사의 LPDDR5 가격 협상력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게 일부 외신과 리서치 기관의 공통된 관측이다.
‘AI 편향’이 만든 구조적 메모리 쇼크…누가 살아남을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메모리 업체들의 ‘AI 편향(capex bias)’이 만들어낸 구조적 공급 쇼크에 가깝다. 인공지능 서버용 HBM과 고용량 DDR5 수요가 폭증하면서, 메모리 업체들은 제한된 투자와 생산 능력을 가장 높은 마진을 제공하는 세그먼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일반 소비자용 D램, 특히 구형 규격인 DDR4·LPDDR4는 의도적·비의도적 감산과 단종을 동시에 겪고 있고, 이 공백이 ‘칩플레이션(chipflation)’이라는 형태로 스마트폰·PC·태블릿 등 완제품 시장에 전가되고 있다.
결국 삼성의 LPDDR4 엑시트는 한 메모리 규격의 퇴장이 아니라, AI 시대를 향해 재편되는 반도체·스마트폰 밸류체인의 권력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메모리 한 종류의 생산 중단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10%대 감소와 신흥국 소비자 선택권 축소로 이어지는 시대, “메모리 공급망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관리하느냐”가 향후 2~3년 글로벌 단말 산업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