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한국 메모리 빅2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5년 4분기 기준으로 대만 TSMC를 매출총이익률에서 처음으로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AI 시대 반도체 밸류체인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3e·HBM4)를 축으로 한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파운드리 중심의 이익 구조를 뒤흔들고, 메모리가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수익원으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TSMC 60% vs 메모리 63~67%…수익구조 ‘권력이동’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2025년 4분기 매출을 322억~334억달러로 제시하며, 매출총이익률(GPM) 가이던스를 59~61%로 제시했다. 3분기 실제 GPM도 59.5%로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했지만, 2nm 전환과 미국·일본 공장 가동 등으로 마진 상단이 제한되는 모습이다.
반면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 메모리 사업과 SK하이닉스는 2025년 4분기 GPM이 63~67% 구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2025년 3분기에 매출 24.4조원, 영업이익 11.4조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률 46% 안팎을 달성했고, HBM 등 첨단 메모리가 2분기 기준 매출의 77%를 차지한 것으로 회사가 공식 밝혔다.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도 3분기 매출 33.1조원,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해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으며, 이익 개선의 상당 부분이 메모리 가격 상승과 HBM3e 판매 확대에 기인했다.
시장조사업체와 외신들이 제시하는 63~67%라는 메모리 GPM 전망은, TSMC의 59~61% 가이던스를 2~8%포인트 웃도는 수준으로 2018년 이후 약 7년 만의 ‘마진 역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 데이터센터의 가장 비싼 부동산”…HBM이 이끈 수익성 체질 개선
HBM3e는 GPU·AI 가속기에 실장되는 스택형 초고대역폭 메모리로, 시장조사업체 Yole 그룹은 HBM 시장 규모가 2024년 170억달러에서 2030년 980억달러로 커지며 연평균 33% 성장할 것으로 추산한다. 엔비디아 B200·H200 등 차세대 GPU가 모두 HBM을 필수 탑재하면서, HBM은 단순 ‘부품’에서 AI 데이터센터 안에서 가장 귀한 자산으로 위상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 업체들은 극심한 공급 제약을 레버리지 삼아 가격 결정권을 되찾았다. 트렌드포스와 여러 리서치 기관에 따르면 서버 DRAM과 DDR5·HBM3e 계약가격은 2025년 한 해에만 50% 안팎 상승했고, 일부 DRAM 모델은 수개월 사이 50% 이상 급등했다. 실제로 4분기 DDR5 서버 DRAM 계약가는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수준까지 올라, 과거 HBM3e 대비 4~5배였던 가격 격차가 2026년 말에는 1~2배 수준으로 좁혀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가격 급등에도 주요 고객사들은 물량 확보를 위해 대규모 선지급 계약과 장기 구매계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 엔비디아, AMD,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2026년 이후 HBM4까지 포함한 멀티이어 계약을 잠그면서, 메모리 업체 입장에선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고가·고마진·장기 고정수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삼성·SK하이닉스, 2026년 HBM4 ‘완판’…전통 DRAM은 공급대란
리서치 리포트를 종합하면 삼성과 SK하이닉스의 2026년 HBM4 생산능력은 이미 주요 AI 가속기 고객사와의 장기 계약으로 대부분 ‘완판’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당초 2026년 2월로 잡았던 HBM4 양산 시점을 엔비디아와의 HBM3e 증설 협의 결과 3~4월로 조정했지만, 이는 HBM3e 공급 확대를 통한 단기 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HBM·서버용 DDR5에 장비와 웨이퍼가 몰리면서, 전통 PC·모바일 DRAM이 ‘구조적 감산’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트렌드포스와 아시아 지역 리포트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기준 서버 DDR5 계약가격은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며 급등했고, 글로벌 DRAM 생산능력 증가는 2026년에도 7~8% 수준에 그칠 전망인 반면 수요 증가율은 이를 웃돌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일부 미국·중국 하이퍼스케일러는 최대 50% 가격 인상을 수용했음에도 주문한 서버 메모리의 70%만 배정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미국 IT 전문매체들은 “AI 부품으로 라인을 돌린 덕에, 구형 DDR4·모바일 DRAM까지 가격이 2배 가까이 뛸 수 있다”며 2026년까지 전통 메모리 전반의 가격 강세를 경고한다. 이 같은 ‘용량 재배치’ 전략은 단기적으로 메모리 업체 수익성엔 호재지만, 세트업체·PC OEM·서버 제조사에는 비용 압박과 제품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TSMC, 2nm CAPEX에 마진 부담…마이크론까지 가세한 ‘메모리 삼국지’
TSMC는 2025년 CAPEX(설비투자)를 400억~420억달러로 제시하며 이 중 약 70%를 2nm 등 첨단 공정에 투입할 계획이다. CFO 웬델 황은 “해외 생산시설과 환율 요인이 3분기 마진을 일부 희석했다”고 언급했으며, 트렌드포스도 “미국 애리조나·일본 구마모토 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면 단위당 감가상각비가 늘어 마진 상단이 제한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와중에 미국의 마이크론은 HBM 열풍의 또 다른 수혜자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026 회계연도 2분기(2025년 12월~2026년 2월) 매출을 183억~191억달러, EPS 8.42달러로 제시하며, 매출총이익률·EPS·현금흐름이 모두 사상 최고를 경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2026년 HBM 공급량이 이미 전량 가격·물량 계약으로 묶였다고 밝혔고, HBM 탑재 AI용 메모리 TAM(총유효시장)이 2025년 350억달러에서 2028년 1000억달러 수준으로 커질 것이라고 제시했다.
영국 IT 전문매체 ‘Blocks & Files’는 마이크론의 2026년 1분기(11월 종료) 실적에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6.6% 증가한 136억달러, 매출총이익률이 직전 분기 44.7%에서 56%로 급등했다고 전했다. 이는 삼성·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HBM과 데이터센터용 DRAM이 수익성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메모리 르네상스’…슈퍼사이클과 리스크 공존
시장조사업체·증권가는 이번 흐름을 “메모리 르네상스” 또는 “AI 메모리 슈퍼사이클”로 규정한다.
트렌드포스는 HBM3e·DDR5 등 고부가 메모리 비중 확대와 DRAM 공급 타이트를 근거로 2026년까지 메모리 업체의 높은 마진 지속 가능성을 전망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2026년 글로벌 DRAM 생산능력 증가율(7~8%)이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2027~2028년에야 의미 있는 공급 완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다만 과거 메모리 사이클처럼 과도한 증설이 이뤄질 경우 2027년 이후 다시 가격 급락·마진 축소 국면이 올 수 있다는 경고도 적지 않다. 미국·유럽의 빅테크 CAPEX 조정, AI 투자 속도 둔화, 파운드리·패키징 단계에서의 병목 해소 속도 등도 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2026년 구간만 놓고 보면 메모리 업체들이 TSMC를 매출총이익률에서 앞서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AI 서버 시대의 희소한 병목 자원이 더 이상 로직 공정 노드가 아닌, HBM과 서버 DRAM이라는 사실이 숫자로 입증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