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31 (목)

  • 구름많음동두천 31.2℃
  • 구름많음강릉 30.1℃
  • 구름많음서울 33.4℃
  • 구름조금대전 33.1℃
  • 구름조금대구 31.8℃
  • 구름조금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1.5℃
  • 맑음부산 31.8℃
  • 맑음고창 33.2℃
  • 구름많음제주 30.4℃
  • 구름많음강화 30.5℃
  • 맑음보은 30.3℃
  • 맑음금산 31.1℃
  • 맑음강진군 31.7℃
  • 구름조금경주시 32.5℃
  • 맑음거제 29.8℃
기상청 제공

Opinion

[지구칼럼] '잠자리' 관찰·성찰·통찰…가을전령사·악마의 바늘·고추잠자리=수컷·잠자리 눈의 교훈·비행능력 동급최강·H-13 기종 유사·승충(勝蟲)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가을전령사 '고추잠자리 날면 찬바람 난다'는 경북 지방의 속담이 있다. 고추잠자리가 가을철에 나타나기에 기온이 낮아져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이 됐다는 의미다.

 

고추잠자리와 코스모스 그리고 뭉개구름은 홍어삼합처럼 최적의 환상궁합이다. 뭉개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과 무리를 지어 활짝 핀 코스모스 위를 낮게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는 시골 마을 추억을 아스라이 불러낸다.

 

입추 무렵부터 들리기 시작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왠지 더 자주, 그리고 더 처량하게 들린다. 뿐만 아니라 하늘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있고, 그 아래 고추잠자리들이 한가롭게 날아 다닌다. 옛말에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

 

잠자리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미국 플로리다·하와이 등지에서 주로 서식한다. 1년 중 가장 좋은 날씨, 햇볕은 바삭, 바람은 선선한 가을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친숙하고 고마운 곤충이다. 실제로도 곤충이지만 가장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는 부류에 속한다. 꿈틀거림, 기어다님, 지나치게 기다란 더듬이, 몸에 달라붙는 행동, 미묘한 광택, 실내 침투, 특유의 울음소리 등 무엇 하나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요소가 없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마스코트 격 곤충일 만큼 자주 접할 수 있고, 개체수도 많아 익숙하고 친근하다. 또한 모기나 파리, 나방 따위를 잡아먹는 고마운 익충인데다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고 보통 조용히 나뭇가지나 풀에 매달려 있거나 사람 머리 위 멀리 공중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곤충을 싫어해도 잠자리 정도는 예외인 사람들이 많다.

 

 

단, 유럽과 미국에서는 인식이 안 좋아서 잠자리를 '악마의 바늘(Devil's Needle)'이라고 부른다. 가늘고 뾰족한 배를 보고 바늘을 연상시켜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름아닌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잠자리가 날아와 산채로 눈과 입을 꿰매버린다는 전설도 있다. 

 

유럽에서 dragon은 악마, 사탄을 의미했다. 동양에서의 긍정적인 용의 심상과 매우 다르다. 잠자리가 영어로 dragonfly(용 + 파리)라는 점에서 한국 및 아시아의 아이들은 잠자리를 좋아한다. 우리가 '잠자리채'라 부르는 것을 유럽, 미국에서는 'Dragonfly net'이라고 안 부르고 'Butterfly net'이라고 부를 정도로 매우 꺼림을 알 수 있다.

 

잠자리는 동족포식도 한다. 그래서 잠자리를 같은 통에 넣어놓는 것은 잠자리에겐 고문이다.

 

곤충강 잠자리목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으로 잠자리아목(불균시아목)과 실잠자리아목(균시아목)으로 나뉜다. 전세계에 약 5700여 종이 있고, 한국에는 127종이 서식한다. 한자로는 청낭자(靑娘子)·청령(蜻蛉)·청정(蜻蜓)이라고 한다. 잠자리의 애벌레는 순우리말로는 '학배기'라고 하고 한자로는 蠆(전갈 채)를 써서 '수채(水蠆)'라고 부른다.

 

고추잠자리는 평지의 늪지대에서 자라서 늦봄과 초여름인 5∼6월부터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우화(羽化·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됨)한다. 다 큰 고추잠자리는 몸길이가 17∼20mm로 녹갈색 바탕에 검은색 점무늬가 있으며 연못 등 수생식물이 많은 곳에 산다. 

 

수컷은 몸이 붉어 '고추잠자리'라 부르고, 암컷은 노르스름해 ‘메밀잠자리’라고 한다. 고추잠자리 이름은 몸이 고추처럼 생기고 빨개서 붙은 이름이며, 성인 수컷에만 이런 색이 나타난다. 미성숙한 수컷이나 암컷은 노란 빛을 띈다.

 

 

곤충 중에 머리를 이리저리 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물이다. 사마귀처럼 뒤를 쳐다볼 정도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고개를 조금씩 돌려 상하좌우를 살피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잠자리의 커다랗고 둥그런 겹눈은 종에 따라 1만~2만8000여 개의 낱눈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각의 벌집처럼 생긴 각각의 낱눈은 사람의 눈처럼 각막과 망막과 유리체를 가지고 있다. 시력은 낮지만 각각의 낱눈이 따로따로 빛을 감지할 수 있어서 움직이는 것을 잘 포착한다. 이 겹눈으로 잠자리는 앞뒤 좌우 제 몸 20미터 뒤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다. 잠자리는 뇌의 80%를 겹눈이 포착해낸 사물을 감지하는 데 사용한다. 이 엄청난 기능의 겹눈 사이에 있는 세 개의 홑눈은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빛의 밝기를 측정해 사물의 원근과 명암 정도를 구별한다.

 

잠자리 눈이 우리에게 주는 철학적 교훈은 "하나의 눈으로 바라본 하나의 정답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2만8000여 개의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그 다양함이 그대로 인정될 수 있는 그런 세상, 잠자리가 꿈꾸눈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잠자리는 날개를 접지를 못하고, 이동은 불가능하고 착륙만 가능한 반쪽짜리 다리를 가진 원시적인 생물이다. 하지만 비행능력만큼은 곤충 중에서 최고급 수준이다. 벌새와 함께 인간이 가진 그 어떤 비행체도 아직 잠자리의 비행능력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날개는 그냥 얇은 막이 아니라 가는 관이 있어서 혈액은 물론 신경도 있다. 날개 두 쌍을 움직이는 골격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날개의 속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다. 덕분에 방향전환과 속도가 자유자재다. 날개 네 개를 모두 따로 움직여 급선회·급강하·급상승·호버링·상하좌우 이동 등 비행 중에 가능한 모든 기동방식을 갖췄다.

 

게다가 웬만한 새들도 못하는 평상시 날아다니는 속도 그대로 후진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원시적인 진화인 만큼 이 비행능력은 심각한 구조적 결함을 내재하고 있다. 잠자리가 날아다닐 때 나는 타다닥거리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데, 사실 날개끼리 충돌해서 나는 소리다. 즉 급기동시 날개가 휘며 다른 날개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작은 곤충이라 무사할 뿐 다른 생물에는 적용 불가능한 날개구조이다. 직선 고속비행에도 적합하지 않다. 

 

잠자리가 정지비행 중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 고속으로 날아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때 엄청난 압력을 받지만 외피가 인간보다 튼튼한 곤충이라서 멀쩡하다. 만약 인간이 비슷한 속도로 그렇게 움직이면 약 12G에 달하는 압력을 받는다. 참고로 우주선이 이륙할 때 인간이 받는 압력이 10G가 조금 안된다. 일부 종의 경우 최대 약 97km/h로 날기도 한다.

 

독일의 페스토(Festo)라는 회사에서 만든 바이오니콥터(Bionicopter)라는 잠자리 로봇도 있다. 크기는 메가네우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모양이 비슷한 500MD 헬기의 별명이 잠자리헬기다. 헬리콥터와 모양새를 연관 지으려면 H-13 기종이 가장 잠자리와 유사하다.

 

일본에서는 과거 승충(勝蟲)이라 부르며 무사들이 자신의 투구나 무기 등에 잠자리 모양 장식을 달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잠자리는 오직 전진만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 전쟁에 나가서도 후퇴 없이 전진만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도 주인공이 얼어붙은 잠자리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 일본 문구브랜드 톰보의 PPL로, 극에 잘 녹아들으면서도 거부감 없이 상표를 알린 모범적인 PPL사례다.

 

곤충 중 체급 비율까지 생각하면 거의 모든 동물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의 최상위 포식자다. 포유동물에 비유했을 때 호랑이나 사자에 비견될 정도다. 장수풍뎅이류나 사슴벌레류는 말벌이나 사마귀조차도 명함을 못 내미는 사실상 곤충의 정점이지만, 애초에 서식지가 겹치치도 않을뿐더러 이들은 대부분 초식성이다.

 

장수말벌과 사마귀의 경우 잠자리가 이기기 힘들다. 소형 사마귀들이라면 모르지만, 애초에 사마귀들은 잠자리의 사냥범위 안에 들어갈 만큼 비행을 오래, 높게 하는 곤충이 아니다.

 

잠자리 수컷은 배가 시작되는 부분, 즉 복부 제2마디에 부성기가 있고 배의 끝부분에 암컷의 목에 연결되는 부속기가 있다. 암컷의 배 끝에는 산란변이 존재한다. 교미(짝짓기)를 시작하면 수컷은 부속기로 암컷의 목을 휘어감고 암컷은 배 끝의 음문을 수컷의 부성기에 접촉해 정자를 받아들인다.

 

교미는 공중에서 단시간 내에 이뤄진다. 잠자리 두 마리가 하트(♡) 모양으로 연결되어 날아다니거나 앉아서 쉬는 것이 바로 교미장면이다. 특히 실잠자리의 교미는 다른 잠자리들보다 하트 모양이 잘 나온다. 꼬리가 가늘기 때문. 여담으로 러브버그도 교미하면서 비행한다.

 

교미 후 여러 가지 형태로 산란한다. 수면 위를 날면서 공중에서 알을 뿌리는 공중산란, 배 끝의 산란 변을 수면에 스치듯이 하며 산란하는 타수산란, 역시 비행하면서 진흙에 산란하는 타니산란, 물 옆에 앉아서 알을 흩뿌리는 유리성정지산란, 물에 산란변을 푹 담가 산란하는 접수정지산란, 진흙이나 모래에 산란변을 꽂아 알을 낳는 접니정지산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수컷이 암컷과 연결되어 함께 산란하는 경우도 있고, 수컷은 근처에서 감시하고 암컷이 단독 산란하는 경우도 있다.

 

고추잠자리가 아닌 꼬마잠자리는 문화재청이 2007년에 천연기념물로의 지정을 예고했으나 아직도 지정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노란잔산잠자리, 대모잠자리, 꼬마잠자리의 3종이 대한민국 환경부 지정 보호대상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12월에 대한민국 고유종인 노란배측범잠자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IUCN 적색목록에 위기종(EN)으로 등재됐다.

 

근대화 이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성체와 애벌레를 결핵, 천식 환자에게 약재로 썼으며, 일본의 내륙지방 역시 잠자리 유충을 모아 어린 아이의 감기약으로 사용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잠자리 연구의 권위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활동한 이승모 박사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잠자리를 연구하는 학자는 정광수 박사가 거의 유일하다. 정광수 박사는 잠자리 도감, 한국 잠자리 도감, 잠자리 나들이 도감, 한국 잠자리 유충 도감 등 수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한국의 잠자리'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 박은옥 씨의 동요 '윙윙윙'(1978년) 

 

윙윙윙윙 고추잠자리 이리저리 놀리며 윙윙윙
윙윙윙윙 꼬마 아가씨 이리저리 쫓아가며 윙윙윙

 

◆ 조용필 씨의 '고추잠자리'(1981년)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로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니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로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 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니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배너
배너
배너

관련기사

60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마음 회복 연구실] 남의 답안지를 덮고, 내 목소리를 켜다

◆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답답한데 우라 점보러 갈래?", "소름 돋아. 지난번 그 점쟁이가 말한 대로 됐어." 사주, 신점, 손금, 타로... 등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회사에서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현실과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런 마음이 고개를 든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무거운 감정이 나를 짓눌러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울 때가 있다. 누군가가 "이게 정답이에요.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된 본능이다. 옛날 왕들이 별의 움직임을 읽는 점성술사나 관상감을 곁에 두었던 것처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어려운 시험 앞에서 누군가 미리 써놓은 답을 훔쳐보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 AI도 내 인생을 알 수 없다 얼마 전 생성형 AI에게 내 사주를 물어봤다. 생년월일과 시간을 입력하자 10초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분량의 글이 쏟아졌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조언들이 정제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게 맞네

[Moonshot-thinking]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정책 “한 손에 고삐, 다른 손에 당근”…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던진 메시지

새 정부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래 뒤로 밀려 있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작된 이후,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는 일관되게 ‘주거’에 쏠려 있었다. 초고강도 대출 규제와 다주택자 세금 논쟁, 공급 확대와 전세 사기 대책까지. 대부분의 정책 보도와 논의는 주택 시장 중심이었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주택과는 다른 규칙, 논리로 움직인다. 오피스,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대형 빌딩 등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상업용 시장에 대한 정부 정책의 영향은 주거 못지않게 심대하며, 때로는 여파가 더 구조적이다. 2024년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은 4.6만 건으로 2023년 대비 11.6% 감소했다. 연간 거래량이 5만 건 이하로 줄어든 것은 2008년 이후 16년 만이다. 수도권은 0.9% 하락에 그쳤지만, 비수도권은 8.3%나 떨어졌다. 흥미롭게도 전국 평균 가격은 0.4% 상승했는데, 이는 수도권 거래 비중이 48.6%에서 54.9%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안전자산 선호’로 급격히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수사와 현실 사이의 간극 이재명 정부는 ‘시장 안정화’라는 기조를 내세우

[플라이미투더문] 고객의 욕구가 자력을 띤다고?

개인의 삶에서 필요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방식의 라이프 코칭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알아차림” 이다. 즉 코치는 상대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심연에 자리잡은 욕구를 알아차리게 함과 더불어 이를 구체화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객은 나 자신도 잘 몰랐던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욕구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게 되고, 진중한 고민과 성찰 과정을 거쳐 해결을 위한 실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결국 고객의 “알아차림” 만 성공한다면 이후의 과정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진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하지만 늘 그 알아차림이 어렵다. 고객의 입으로 고객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깊은 내공을 지닌 상위 코치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객이 시작단계에서 정한 주제와 목표가 코칭 과정에서 변경이 되었다면 그것은 성공한 코칭이 될 확률이 높다.” 목표가 바뀌었다는 말은 표면적인 주제 속에 숨어있는 한단계 더 깊은 욕구를 알아차렸다는 말과도 같으며, 이때의 깊은 욕구는 같은 결 선상 에서의 보다 구체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생경한 욕구일 수도 있다. 이 경우 필자가 자주 듣는 고객의 피드백은 다음과

[마음 회복 연구실] 내 마음의 빨간 경고등이 켜졌을 때

늦은 주말 오후. 아이들의 목소리와 TV 소리로부터 잠시 도망쳐 나왔다. 좋아하는 카페문을 열고, 가장 구석진 창가 자리에 앉아서 늘 마시던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했다. 언제부터인가 숙면을 위해 내 생존 본능이 만들어 낸 작은 습관이다. 커피가 그리워 카페에 왔지만 카페인은 피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 상황. 조금 우스운 듯 하지만 난 이 순간이 좋다.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진한 커피로 남은 오후를 충전하고 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방에서 충전기를 꺼냈다. 하얀 케이블을 스마트폰에 연결하자 화면에 작은 번개모양이 그려졌다. 기계는 참 정직하다. 방전되기 전에 미리 알려주니까.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조용히 무너진다. ◆ 나를 방전시키는 것들은 아주 사소하다 문득 나를 방전 시키는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들은 대단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 팀원의 어두웠던 표정, 작은 실수로 핀잔을 들었던 아침, 늦은 밤 아이의 가방 속에서 뒤늦게 발견했던 구겨진 안내문과 '내일 오전까지'라고 적힌 준비물을 확인하는 순간 등... 아이의 학부모 단체톡방에서 누군가 "체험학습 어떠셨어요?"라고 물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Moonshot-thinking] 해수부 부산 이전 “상업용 부동산 조류가 바뀌고 있다”

정부기관 이전만큼 지역 부동산 생태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은 드물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결정은 단순한 행정기관의 위치 변경이 아니다. 이는 침체된 부산지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조류를 만들어내는 전환점이다. 동시에 서울 중심의 부동산 패러다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신호탄이다. 현재 부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20%에 가까운 높은 공실률로 대변되는 깊은 침체 속에 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이전과 함께 예고된 북항 재개발, 그리고 향후 추진될 수 있는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이 지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줄 것이다. 반면 서울, 수도권 시장은 당장 큰 변화가 없겠지만, 수요 구조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부산, 긴 침체의 터널 끝에서 보이는 희미한 빛 부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부산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18.1%로 전국 평균 8.9%의 두 배에 달한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 14.2%, 임차권리금이 있는 상가 비중의 감소 등 모든 지표가 시장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임대료 하락세다. 부산 오피스 평균 임대료가 ㎡당 7,100원으로 전년 대비 0.9% 하락한

[눈치코치] coach identity… 코치는 누구인가?

코칭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보 코치지만, 협회 인증을 받고 코칭의 길에 들어선 저 또한 여러분과 함께 꾸준히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코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코치란 누구인가? 코치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를 지적하고 ‘고치‘는 사람도 아니고, 사소한 것까지 ’꼬치꼬치‘ 따져 묻는 존재도 아닙니다. 코치는 고객의 옆에서,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도록 돕는 조력자이자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마라톤에서 속도를 함께 맞추는 ‘페이스메이커’처럼, 때로는 조용히 응원하며 뒤에서 밀어주는 지원자(supporter)가 바로 코치입니다. 선생님처럼 가르치지도 않고, 멘토처럼 위에서 조언하지도 않습니다. 코치는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파트너로서, 클라이언트의 잠재력을 믿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case study> “솔직히 의구심도 들었는데… 지금은 정말 함께하길 잘한 것 같아요” ‘아까비 팀장’의 이야기 겉으로는 ‘실천형 리더’를 자처했지만, 실상은 실무에만 몰두하며 위계와 권위를 중시했던 아팀장. 조직의 추천으로 코칭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처음엔 짜증과 불신이

[마음 회복 연구실] 조직에서 말하지 않는 사람들…문을 여는 열쇠는 '심리적 안전감'

◆ 침묵 뒤에는, 말보다 많은 감정이 숨어 있다 “팀장님이 자꾸 편하게 말하래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제일 불편해요.” 눈을 떨구던 그녀의 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신입으로 입사한 지 8개월. 어느 순간부터 회의실에서 그녀는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디어를 내면 ‘그게 아이디어야?’ ‘넌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머리는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달고 다니라고 있는 게 아니고.’ 가끔은 말 대신 큰 한숨으로 절 쳐다보세요. 그럴 땐 숨조차 쉬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냥… 입을 닫게 되었어요...” 상담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시려온다. 단어는 조금씩 달라도, 그 밑바탕에 깔린 아픔은 닮아 있다. 개인의 경험으로 시작되지만, 알고 보면 팀 전체가 감정적으로 얼어붙은 경우가 많다 그런 팀은 소통이 사라지고, 조심스러운 눈치와 말 없는 불신만 남아있다. 그래서 어쩌면 사무실에서의 침묵은 큰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 최근 조직문화 키워드 중 가장 주목받는 단어 ‘심리적 안전감’ 실수해도, 궁금한 걸 물어봐도, 다른 의견을 말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심리적 안전감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일터에서 이 확신은 유리컵처럼 너무 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