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세계 첫 ‘현대식 대도시 완전 물 고갈’ 재앙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경고가 유엔과 국제기구, 머시코어스(Mercy Corps)를 비롯해 Down To Earth, KabulNow, ecowatch 등의 미디어들을 통 연달아 나오고 있다.
2025년 7월 기준 카불의 인구는 600만명을 돌파했지만, 심각한 물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 인간거주프로그램(UN-Habitat)은 최근 "전례 없는 대재앙"으로 사태를 묘사하며, "즉각적이고 대규모의 개입이 없다면 2030년까지 카불 대부분의 지하수원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수층 30m↓, 연간 4400만㎥ ‘빨대질’… ‘보충 능력 2배’ 지하수 초과 추출
카불의 수자원 위기는 뛰는 수요와 급속한 인구팽창, 그리고 기후 위기, 정책 실패가 결합된 복합 재난이다. 최근 10년간, 카불의 3대 대수층은 최대 25~30m나 하락했고, 현재 매년 자연적으로 재충전될 수 있는 양보다 4400만㎥, 즉 2배 가까운 지하수를 더 뽑아 쓰고 있다.
지하수 보충의 90% 이상이 힌두쿠시 산맥의 만년설과 빙하 해빙에 의존되지만, 최근 5년간 겨울 눈·강수량은 평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12만곳이 넘는 무허가 관정과 수백 개의 공장·온실이 도시 지하수원을 통제 불가 상태로 방치하고 있어, 거의 절반의 관정이 이미 마른 상태다.

인구 6배 증가… 도시화·기후위기·관리실패 ‘폭탄돌리기’가 만든 복합비극
카불의 인구는 2001년 100만명 미만이었지만 2025년 600만명까지 6배 늘었고, 무분별한 도시확장과 무계획 지하수 개발, 수십 년 누적된 관리 부실이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머시코어스 보고서는 "즉각적인 구조 조치가 없다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근접했다고 경고한다.
주민, ‘물값=월소득 30%’…빚더미로 내몰린 일상, 극심한 경제적 파탄 직면
물 부족의 일상은 곧 절망과 직결된다.
머시코어스의 조사에 따르면, 주민 상당수는 현재 전체 소득의 15~30%까지를 사설 급수차량 등에서 물을 사는 데 지출하고 있고, 68% 이상이 물 관련 빚을 지고 있다. 한 달에 6~7달러(약 9000원~1만원)의 물값을 부담하는데, 이는 식비를 넘기도 한다.
빈곤층일수록 빚 이자는 15~20%대에 치솟고 있으며, 대다수 주민들은 "물과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이런 극한 상황 속에 수도배관에 연결된 가정은 전체의 20% 안팎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하루 20리터 이하라는 극저수준 공급에 의존한다. 주간 몇 시간만 수도가 작동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질은 ‘최상위 오염국’… 지하수 80%이상에서 비소, 하수, 염도 검출
물 부족에 더해 남아있는 지하수마저도 80% 이상이 하수, 산업오염물, 비소 및 염분 등으로 WHO 기준 초과 오염상태다.
80% 가까운 카불 주민이 pit toilet(땅에 구멍만 파는 화장실)과 개방 배수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수가 곧바로 토양과 수로로 스며들고, 많은 공장에서는 정화 없이 폐수를 방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카불공항 서쪽 구습지대처럼 천연 염도가 매우 높고, 곳곳에서 심한 악취와 침전물, 색변화가 보고됐다.
이로 인해 많은 학교, 병원이 문을 닫고, 생수나 정화수를 구입하느라 가계 파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국제 원조 30억달러 동결·USAID 삭감…생존 인프라, 후퇴만 거듭
2021년 탈레반 재집권 이후 약 30억달러에 달하는 국제 WASH(물, 위생) 자금이 동결되고, 미국 USAID 지원금의 90% 이상도 삭감되면서 현지 인프라 유지와 신규 프로젝트가 사실상 중단됐다.
2025년 상반기 기준으로, 카불의 수도·위생 분야에 필요한 2억6400만 달러 중 실제 집행된 금액은 겨우 840만 달러에 불과하다. 결국 카불시 전체의 주요용수관로 및 저장 시설 확대, 취약 지역 상수도 신설, 수질 모니터링이 사실상 스톱된 것이다.

전문가·국제사회 경고 "탈출구 있으나 시간이 없다"
머시코어스와 UN해비타트는 한목소리로 "즉각적 개입 없이는 카불은 2030년 세계 최초의 ‘Day Zero City’가 되고, 최대 300만명의 강제 이주, 수백만 명의 인도주의적 재난이 현실화된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대수층 재충전, 지하수 사용규제, 외부 수자원 도입, 국제협력 복원" 등이 미루어질수록 회복 불능의 파국으로 치닫는다고 진단했다.
카불의 물 위기는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선 심각한 정치·경제·공중보건·인도주의적 재난의 신호탄이다. 세계를 향한 경종을 울리는 ‘물 사망선고’의 사례로, 단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앞으로 수많은 도시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시사점이 크다.
국제원조 예산 동결, 세계적 기후충격, 무책임한 관리, 그리고 무분별한 성장. 이 4중고가 남긴 카불의 참상은, 국제사회 모두에게 ‘지금 당장 구조해야 할 재앙’임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