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광화문 주한 미국대사관 인근 스타벅스에 아시아나항공 신입 승무원들의 여행용 보조 가방 수십 개가 ‘자리 예약 도구’처럼 등장하면서, 한 매장 좌석의 80%가 인적 없이 짐만으로 채워지는 ‘가방 전쟁’이 반복되고 있다.
미 대사관의 반입 제한 규정, 항공사 단체 비자 시스템 축소, 스타벅스의 ‘열린 좌석 정책’이 얽히며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 구조가 카페 한복판에서 재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건 개요: 30명 와서 5~10잔만 시키고 40석 점령
연합뉴스·YTN 보도를 종합하면, 논란의 현장은 광화문 주한 미국대사관 인근 스타벅스 한 지점이다. 최근 며칠 사이 오전 7시 전후 이 매장 한쪽 홀 좌석의 약 80%에 해당하는 30~40석이 사람 없이 여행용 보조 가방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장면이 반복적으로 목격됐다.
가방의 주인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입 승무원들로, 미국 비자 인터뷰를 보기 위해 미 대사관을 방문하는 동안 이 매장을 사실상의 짐 보관소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점장 증언에 따르면 약 30명이 입장해 음료는 5~10잔만 주문한 뒤, 각자 가방을 좌석에 올려놓고 약 2시간 동안 매장을 비운 뒤 면접 종료 후 돌아오는 패턴이 최근에만 최소 5차례 이상 반복됐다.
매장 점장은 “다른 고객을 위해 치워 달라고 요청하자, ‘주문도 했는데 왜 그러느냐’고 따졌다”고 전했고, 현장을 목격한 시민도 “직원과 ‘뭘 잘못했냐’는 식으로 언쟁을 벌였다”며 “사람이라도 앉아 있었으면 덜 화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매장 이용객과 영업장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직원 대상 안내와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구조적 배경 ① 미 대사관 보안 규정과 항공사 문화
이번 ‘가방 전쟁’의 1차적 배경은 미국 대사관의 보안 규정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테러 위험을 이유로 캐리어 등 대형 가방의 반입을 제한·불허하고 있다. 승무원 비자는 일반 비자보다 서류·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며, 면접 대기 및 심사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한국 항공사의 복장·소지품 규율 문화가 겹친다. 연합뉴스는 승무원들이 비행 업무 외의 시간에도 규정된 복장과 물품을 갖추게 하는 항공사 특유의 문화 때문에, 비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정에도 정식 유니폼과 준비물 가방을 휴대하는 관행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승무원 단체 비자 면접 시, 다른 항공사들은 버스를 대절해 짐을 보관하게 하거나, 사무실·호텔 회의실 등을 활용해 집단 보관을 지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 논란이 된 항공사는 최근 이런 버스 대절·짐 보관 지원을 중단한 상태라는 증언이 나왔다. 경쟁사에 인수된 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비용 절감 압박이 구조적으로 작동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구조적 배경 ② 스타벅스의 ‘열린 좌석’과 공유지의 비극
스타벅스는 전 세계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브랜드 자산으로 활용해 온 대표적인 커피 체인이다. 한국에서도 “주문을 하지 않은 고객의 좌석 이용도 허용한다”는 정책을 유지해 왔다. 2018년 미국 필라델피아 흑인 고객 체포 사건 이후, 스타벅스는 음료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화장실 개방·매장 이용을 허용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그러나 화장실을 완전히 개방한 뒤 일부 매장에 쓰레기·마약 주사기·노숙자 상주 문제가 발생하며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하니 아무도 쓸 수 없는” 공유지의 비극이 현실화됐다는 비판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을 통해 제기됐다.
한국에서도 ‘열린 공간’을 악용한 좌석 점유 빌런 사례가 반복되면서,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몇 년간 ‘브레이크성 정책’을 밟아왔다.
2025년과 2025년 말에 걸쳐, 한 남성이 마포구 스타벅스 매장에서 칸막이, 태블릿, 키보드, 마우스, 헤드셋까지 설치해 사실상 개인 사무실을 차린 채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사례가 온라인에 공유돼 논란이 됐다. “모니터 3대, 혼자 4자리 점유”와 같은 극단적 카공족·노마드 워커 사례가 심각해지자, 스타벅스코리아는 2025년 8월부터 멀티탭·칸막이·프린터·개인용 데스크톱 컴퓨터 등 4가지 장비 사용을 제한하는 지침을 전국 매장에 공지했다.
이번 광화문 사례에서도 스타벅스 측은 “장시간 좌석을 비울 경우 소지품 도난·분실 위험이 있으니 짐을 챙겨 이동해 달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자발적 준수에 의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수치로 본 ‘가방 전쟁’: 경제·운영 관점에서의 손실…좌석 회전율의 기회비용
좌석 점유 상황을 수치로 환산하면, 이번 사건이 갖는 경제·운영적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
점장 증언에 따르면, 30명 단체가 5~10잔만 주문했다. 통상 스타벅스 1인 고객이 최소 1잔 이상 주문하고, 카공족·노마드 워커도 대체로 1~2잔을 소비하는 패턴을 감안하면, ‘주문/인원 비율’이 0.17~0.33배 수준에 그친다(30명 기준).
좌석 30~40석이 평균 2시간 이상 가방으로만 채워졌다 해도, 회전율 관점에서 보면 최소 60~80 ‘좌석·시간’이 유료 고객에게서 봉쇄된 셈이다.
한국 대도심 스타벅스 매장에서, 1석당 시간당 매출을 보수적으로 음료 1잔(6000원 안팎) 수준으로 가정하면, 60~80 좌석·시간은 36만~48만원 상당의 잠재 매출이었을 수 있다.
여기에 해당 시간대에 매장을 찾았다가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린 고객들의 장기적 이탈·브랜드 호감도 하락까지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은 눈에 보이는 매출 이상의 문제로 확장된다.
게다가 동일 패턴이 5회 반복됐다고 가정하면, 잠재적으로 300~400 ‘좌석·시간’에 달하는 공간이 사실상 무료 보관소로 점유된 셈이고, 스타벅스 측이 이를 ‘악용 가능성이 높은 선례’로 인식할 만큼 충분한 문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국내 유사 사례: 카페라는 ‘사적 공공공간’의 딜레마
이번 사건은 단발성 해프닝이라기보다, 카페를 사적 공간이자 공공재처럼 활용하는 전 세계적 흐름의 한국판 변주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스타벅스 화장실 개방 이후 노숙인 상주, 쓰레기·마약 주사기 방치, 위생 악화가 심각해지면서, 일부 매장이 다시 문을 잠그거나 ‘청소 중’ 표지로 사실상 제한을 가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
스타벅스는 브랜드 철학상 열린 공간을 유지하려다, 특정 시간·공간에서 조용히 이용해야 할 다수의 고객이 완전히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세 주체 모두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규정과 관행의 합이 ‘상식적 공정성’을 무너뜨린 구조가 드러난다.
광화문 스타벅스 승무원 가방 논란은, 단순히 “매너 없는 승무원”과 “불친절한 항공사”를 넘어 도시 생활에서 ‘공유된 사적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