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서쪽 아구라힐스.
10차선의 101번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월리스 애넌버그 야생동물 생태교량(Wallis Annenberg Wildlife Crossing)’이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마지막 공사 단계에 돌입했다. 이 사업은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미래를 제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태교량 프로젝트다.
생태계 복원의 상징, 10년 대장정의 결실
생태교량 건설은 2015년 국립야생동물연맹(NWF)과 캘리포니아 교통국(Caltrans)이 최초로 제안했다. 2016년 월리스 애넌버그와 애넌버그 재단이 100만 달러 매칭펀드를 기부하며 본격화됐고, 이후 3000여 곳의 민간·공공·기업 후원이 이어졌다. 총 사업비는 9200만 달러(약 1250억원)로, 자금의 상당 부분이 시민과 기업의 기부로 충당됐다.
이 프로젝트의 필요성은 1990년대 연구에서 비롯됐다. 당시 101번 고속도로가 산타모니카 산맥과 시미힐스 사이 야생동물 이동을 막아, 특히 멸종 위기종인 퓨마(산사자)의 유전적 고립과 개체수 감소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의 상징적 퓨마 ‘P-22’의 사망은 도시화와 고속도로가 야생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세계 최대, 최첨단 생태교량…기술·생태·디자인의 총집결
생태교량은 101번 고속도로와 아구라 로드를 동시에 넘는 구조로, 길이 64m·폭 53m의 대형 교량이다. 2022년 착공 이후 2단계로 진행됐으며, 1단계는 2600만 파운드(약 1.18만 톤)의 콘크리트와 82개의 거더, 방음벽, 암석·토양 등으로 기반을 다졌다.
올해 4월에는 6000입방야드(4600㎥)의 특수 토양이 교량 위에 깔렸다. 이 토양은 현지 미생물과 균류를 접종해 생태적 복원력을 극대화했다.
2단계(최종 단계)는 아구라 로드와 인접 구릉지로 교량을 확장해, 남북 산맥을 완전히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지하 하천, 보호수목(오크나무), 고압 송전선, 대형 수도관 등 다양한 인프라와의 충돌을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엔지니어링이 요구된다.
실제로 현장에는 125피트(38m) 고도차 극복, 곡선 고속도로 구간의 시야 확보, 지하 유틸리티 이설 등 복합적 기술과 협업이 동원된다.

유전자까지 고려한 식생 복원, 야생동물-식물-토양 삼위일체 전략
생태교량의 핵심은 단순한 동물 이동 통로가 아니라, ‘원래 있던 산의 일부’를 복원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5마일 반경에서 채종한 토종 식물 종자를 직접 육묘해 50여 종, 총 12에이커(약 4.8만㎡)에 심는다.
이 과정에서 2018년 울시 산불로 소실된 산림의 유전자 다양성까지 복원한다. 토양 또한 현지에서 채취한 미생물과 균류를 배양해 식물과 토양 생태계가 함께 되살아나도록 설계했다.
도시-자연 공존의 모델…교통사고 90% 감소 효과 기대
이 생태교량은 하루 30~40만 대가 오가는 미국에서 가장 혼잡한 고속도로 구간에 설치된다. 야생동물의 안전한 이동뿐 아니라, 연간 수백 건에 달하는 차량-동물 충돌사고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 실제 애리조나 등 타 지역의 유사 사례에서는 동물 관련 교통사고가 9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혁신적 협업과 시민 참여, 글로벌 모델로
이번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주, 연방정부, 국립공원관리청, 산타모니카 산맥 보전청 등 30여기관과 수천 명의 시민·기업이 참여한 ‘공공-민간-시민’ 협력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베스 프랫 NWF 캘리포니아 지부장은 “생태교량 완공은 첫 퓨마가 다리를 건너는 순간, 도시와 자연이 다시 이어지는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6년 완공, 미래 도시생태계의 이정표
월리스 애넌버그 야생동물 생태교량은 2026년 완공 후, 도시와 자연의 공존, 생태계 복원, 시민 참여형 환경운동의 상징이 될 전망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도시권의 야생동물 보전과 생태적 연결성 회복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