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의사가 있다. 그는 살인자다. 그가 죽인 이들은 모두 범죄자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사의 피가 치료 불가능한 불치병 환자들을 살릴 수 있다. 유죄인가, 무죄인가. 혹은 무죄 같은 유죄인가, 유죄 같은 무죄인가.
넷플릭스 신작을 거의 섭렵하다 보니, 오랜만에 다시 디즈니플러스에 접속하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설정처럼 보였지만, 스릴러 장르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설 연휴 잠깐 짬을 내어 보기엔 총 4부작 구성의 시즌1이 부담 없었다.
솔직히 2화까지는 다소 지루했고, 3화부터 그럭저럭 볼 만해졌으며, 4화에 이르러서야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점에서 마무리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킬링타임용 작품’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짧게나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 말도 안 되는 설정에, 몰입할 수 있을까
“이게 현실도 아니고 영화인데, 그냥 그렇다고 여기고 보면 되지. 뭘 그리 따져?”
가끔 함께 사는 사람이 내뱉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일지라도 ‘개연성’을 꽤 중시하는 편이라, 그 고리가 느슨해지는 순간 몰입이 확 깨져버린다.
불치병을 살려낼 수 있다는 설정, 그 치료제가 살인자의 피라는 점,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한부 딸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 하나에 매달리는 변호사의 선택…. 이 모든 요소가 전형적이고 과장된 설정으로 느껴졌다.
이미 익숙한 장치들 위에 또 다른 비현실이 겹쳐지니, 호기심보다 ‘별로’라는 감정이 앞섰다.
부제에서 언급했듯, 말도 안 되는 설정 속에 끝까지 몰입하며 즐길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만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가정 위에 또 가정을 얹기보다 ‘그럴 법한 가능성’이 조금만 더 보강됐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 세계다. 그 비현실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의 ‘경쟁작’으로 언급됐지만
설 연휴 넷플릭스 화제작은 <레이디 두아>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결에서 <레이디 두아>의 완승이라 느꼈다. 이유는 비교적 분명했다.
첫째, 주연 배우의 힘.
신혜선이 중심을 잡고 끌고 간 넷플릭스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시선을 놓치기 어렵다. “그래서 톱배우를 캐스팅하는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반면 디즈니플러스 쪽 주연은 익숙하지 않은 배우였고, 오히려 성동일, 형사 역의 조연 배우들만 기억에 남았다. 검사 역을 맡은 금새록의 연기 역시 다소 과장돼 호불호가 갈릴 만했다.
둘째, 개연성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든 드라마든 결국 시나리오다. 치밀하게 짜인 각본 위에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질 때 콘텐츠는 힘을 얻는다. 아무리 장르적 설정이 강해도, 인물의 선택과 사건의 전개가 납득 가능해야 관객은 따라간다.
셋째, 적절한 ‘완급 조절’의 중요성.
묵직한 직구만 던지는 콘텐츠도 의미 있지만, 중간중간 숨을 돌릴 여지, 즉 리듬감 있는 완급 조절이 있어야 보는 재미가 살아난다. 야구에서 4번 타자만으로 경기가 완성되지 않듯, 콘텐츠도 주조연과 긴장·완화의 균형이 맞아야 오래 기억된다.
보는 내내 코칭을 배울 때 자주 떠올랐던 의문이 겹쳐졌다.
“이게 말이 돼? 사람들이 정말 이걸 믿을까?”
너무 답이 정해진 질문,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장면들이 반복되면 몰입은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요술 지팡이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보다(*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지금보다 용기가 10배 더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라는 질문이 더 좋았다.
완전히 비현실적인 가정보다는, 지금의 나를 조금 확장하는 질문이 훨씬 더 설득력 있고, 현실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결국 내가 살아가는 세계, 내가 발 딛고 선 현실이 더 복잡하고, 그래서 더 흥미롭다…(to be continued)
P.S. 시즌1이 4부작으로 끝난 건 다소 싱겁다. 간간이 좋은 콘텐츠를 선보이는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처럼 한 번에 몰아볼 수 있는 완결 편성도 함께 고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각 플랫폼의 전략과 정책이 다르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말이다.
*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소재·화학, IT, 패션 등 다양한 업계를 거쳐온 홍보전문가입니다. 인증코치이기도 한 그는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