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소금쟁이는 적은 힘으로 어떻게 물 위를 걷는 것일까. 세계 최초로 수면 위를 자유자재로 기동하는 곤충 라고벨리아(부채다리 소금쟁이)를 모사한 초소형 로봇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동력의 비법은 근육의 힘이 아닌 다리 끝 부채꼴 구조가 물과 상호작용하며 생기는 표면장력·탄성이다. 모터 없이도 힘을 낼 수 있는 소형 웨어러블 기기 등을 만들 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조지아 공과대학교, 그리고 한국 아주대학교의 공동 연구진이 소금쟁이 중에서도 뛰어난 기동성을 자랑하는 물장군의 발을 모방한 곤충 크기의 초소형 로봇 ‘라가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스스로 형태가 변하는 부채 모양의 발 구조를 장착해 물 표면을 빠르고 민첩하게 횡단할 수 있다.
이는 과학 저널 'Science' 2025년 8월 20일자 논문에서 상세히 보고됐으며, eurekalert.org, science.org, Rhagovelia, nps.gov, arxiv.org의 자료를 종합취합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봤다.
수동적인 부채 발 전개가 만드는 고속 기동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리플 버그’라 불리는 라고벨리아(Rhagovelia) 속 물장군이 사용하는 특수한 평평한 리본형 부채 모양의 다리 구조다. 기존까지는 이 부채를 근육이 움직여 펴고 접는 것으로 여겼으나, 실제로는 이 부채가 물 표면에 닿으면 표면 장력과 탄성력만으로 10밀리초 만에 자동으로 펼쳐져, 눈 깜빡임의 10배 빠른 속도로 확장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곤충은 50밀리초 만에 180도 급선회할 수 있으며, 초당 체장 길이 120배에 달하는 놀라운 속도를 구현한다. 이는 공중에서의 과일파리 급선회 속도와 맞먹는 수준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통합 생물학자 빅터 오르테가-히메네즈 박사는 “물방울과 접촉하자마자 수동적으로 부채가 즉각 펼쳐지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러한 수동적 기구의 신속한 동작이 소금쟁이의 민첩성 비결임을 강조했다.
평탄한 리본형 미세 구조 모방해 '라가봇' 개발
한국 아주대학교 김동진 박사팀과 고제성 교수팀은 주사전자현미경(SEM) 분석을 통해 리플 버그 부채의 평평한 리본형 미세구조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무게 1밀리그램의 초경량 ‘라가봇’을 설계했다. 원통형 팬으로는 구현할 수 없던 ‘추력 생성용 강성’과 ‘복원 시 유연성’이라는 기능적 이중성을 평평한 리본형 구조가 가능케 한 점이 기술적 성과였다.
라가봇 실험 결과, 팬이 없는 기존 로봇 대비 추진력, 제동력, 조종성이 현저히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주대 고제성 교수는 “우리 로봇 팬은 생물모델과 동일하게 물 표면의 힘과 유연한 구조만으로 스스로 형태를 바꾸며, 높은 민첩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 모니터링부터 구조작업까지 미래 활용 기대
조지아 공대의 Saad Bhamla 박사는 이번 연구가 "난기류가 심한 빠른 흐름 환경에서도 자율운항이 가능한 작고 강인한 수중 마이크로로봇 설계 원칙을 새롭게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리플 버그는 평생 휴식 없이, 난기류가 일반 비행기 난기류를 훨씬 초과하는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물 표면을 누비는 뛰어난 내구성을 지닌다.
이러한 자연모사 기술을 활용한 라가봇은 향후 환경 오염 감시, 수색·구조용 탐사용 마이크로로봇, 민첩한 수면 이동이 필요한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자연환경의 격렬한 물-공기 경계면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 연구는 식물, 동물, 환경 공학 그리고 로봇공학을 넘나드는 다학제적 협력의 산물로, 곤충과 로봇공학의 경계를 허문 획기적인 기술 혁신을 보여준다. 민첩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적인 초소형 로봇 기술은 향후 의학, 환경,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