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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공간사회학] 힐튼호텔 '저주의 현장' 재현에 흑역사 추가...45년 만에 또 울린 총성, 레이건·트럼프 대통령 경호의 아이러니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워싱턴D.C.의 워싱턴 힐튼호텔이 45년 만에 다시 한번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총격 사건의 현장이 되면서, 이 호텔의 불운한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4월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 행사 중 발생한 총격 사건은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이 발생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콜 토머스 앨런(31)은 산탄총과 권총, 칼 여러 자루를 소지한 채 호텔 투숙객으로 등록해 내부에 접근했으며, 범행 약 10분 전 가족에게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을 암살 표적으로 삼겠다는 선언문을 전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안전한 호텔'의 역설


워싱턴 힐튼호텔은 역설적이게도 워싱턴에서 가장 안전한 행사장 중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호텔 측은 '프레지던트 워크(President's Walk)'라는 차폐된 통로를 별도로 설치했으며,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은 1970년대 초부터 이 호텔을 최소 100차례 이상 사전 점검해왔다. 레이건 암살 시도 사건 이후에는 대통령 전용 스위트룸과 긴급 대피를 위한 전용 차고까지 건설하는 등 구조적 개선을 거쳤다.

 

그러나 이러한 보안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대통령을 노린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호텔 보안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용의자는 호텔 입구에 금속 탐지기가 설치되지 않은 점을 악용해 무기를 반입했으며, 출입증만 제시하면 호텔 내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보안 검색의 치명적 공백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보안 검색대가 호텔 입구가 아닌 연회장 바로 앞에만 설치됐다는 점이다. 약 2,300명의 참석자들은 연회장 입구에서 출입권 확인과 금속 탐지기 검색을 받았지만, 호텔 자체 출입은 투숙객 등록이나 간단한 출입증 제시만으로 가능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비밀경호국이 제공한 최고 수준의 보안 조치는 만찬장 및 그 주변의 매우 제한된 구역에만 집중되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안 카메라 영상에 따르면 앨런은 보안 요원들이 금속 탐지기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검문소를 통과해 연회장 쪽으로 질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회장에 착석한 이후 추가 참석자의 입장이 제한되면서 보안 요원들이 탐지기를 철거하던 중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앨런은 선언문에서 "무기를 여러 개 들고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란 요원이 M2 기관총을 들고 들어왔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며 보안의 허술함을 조롱했다.

 

 

'특별 보안 행사' 미지정 논란


이번 만찬이 '특별 보안 행사(National Special Security Event, NSSE)'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NSSE로 지정되면 비밀경호국이 행사 전체를 총괄 지휘하며 호텔 건물 전체에 대한 철저한 보안 검색이 이뤄진다. 워싱턴포스트는 행사 보안 설계 및 준비 과정에 참여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 고위 인사들이 참석하는 행사보다 낮은 수준의 보안이 제공되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 승계 서열 1~6위 중 5명이 이날 만찬장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을 포함해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 등이 참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영업 시설인 호텔에서 행사가 열린 만큼 완벽한 보안 봉쇄가 불가능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용의자의 치밀한 사전 계획


앨런은 약 6,000단어 분량의 선언문에서 자신을 '냉혹한 힘(coldForce)', '친절한 연방 암살자(Friendly Federal Assassin)'라고 칭하며 범행을 정당화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을 고위직 순으로 표적으로 삼겠다고 명시했으며, "소아성애자·강간범·반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해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더는 그의 범죄로 내 손을 더럽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주장한 그는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산탄을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도 "필요하다면 대부분의 사람을 관통해서라도 목표에 접근하겠다"고 적어 대규모 인명 피해 가능성도 암시했다.

 

또한 앨런은 행사 참석자들을 "범죄자의 연설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공모자"라고 규정하며 일반 시민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정당화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면서 "억압받는 타인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 것은 공모"라며 폭력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쳤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총기상에서 권총 2정과 산탄총 1정을 구매한 앨런은 항공기 탑승에 따른 보안 검색을 피하고자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까지 기차로 이동했다.

 

 

1981년 레이건 암살 시도와의 데자뷔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발생한 레이건 전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은 미국 대통령 경호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당시 오후 2시 27분경, 레이건 전 대통령이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노조회의(AFL-CIO) 대표들을 대상으로 한 오찬 연설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던 중 25세의 존 힝클리 주니어가 22구경 권총으로 3초 만에 6발을 발사했다.

 

총알 한 발은 대통령 전용 차량에 맞고 튕겨져 레이건의 가슴에 박혔고, 레이건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 병원에서 응급 개흉 수술을 받은 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으로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 비밀경호국 요원 티모시 매카시, 경찰관 토머스 델러핸티도 부상을 입었다.

 

힝클리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출연한 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강박적 집착을 보이며 그녀에게 인상을 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문화적 관점에서 본 호텔의 '저주'


워싱턴 힐튼호텔은 1965년 건립 이후 백악관 인근에 위치한 입지 덕분에 정계 행사가 단골로 열리는 장소였다. 그러나 두 차례의 대통령 총격 사건으로 이 호텔은 '저주받은 장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 직후 "힐튼호텔은 특별히 안전한 건물이 아니다"라고 직접 비판하며, 백악관 부지 내 전용 연회장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역설적이게도 워싱턴 힐튼은 케네디 암살 이후 가장 안전한 시설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정작 두 차례나 대통령 암살 시도의 현장이 됐다. 이는 아무리 철저한 물리적 보안 인프라를 갖추더라도 일반 영업 시설과 대통령 행사 공간을 동시에 운영하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레이건 사건 이후 미국 대통령의 경호 체계가 전면 개편되고 건물과 차량 사이 동선 관리가 대폭 강화됐음에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장소에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했다는 사실은 보안 시스템의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 3년 사이 세 번째로 암살 위협에 노출되면서 경호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총격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충분한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결과적으로 용의자 저지에 성공했다"며 보안 조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26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비밀경호국, 법집행 기관, 경찰 모두 훌륭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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