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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공간사회학] 대학 도시로 간 "최고 현대미술" '터너상'…英 ‘미들즈브러 효과’ 노리는 테이트의 승부수

 

[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테이트 브리튼이 2026년 터너상 최종 후보 4인을 발표하면서, 영국 현대미술계의 ‘실험실’이라 불려온 이 상이 런던을 넘어 지역·대학 공간으로 이동하는 장기 전략을 한층 분명히 드러냈다.

 

The Guardian, Artnet News, ArtReview, metropolism, HENI, Secret London, Tate에 따르면, 후보 작가들의 작업은 영국성·생태·자원·정체성이라는 거시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전통적인 회화 대신 퍼포먼스·설치·필름을 중심으로 한 ‘경험형 전시’로 재편되고 있다.

 

터너상이 뭐길래

 

터너상(Turner Prize)은 영국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이 주관하는,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상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상이다. 1984년 제정된 현대미술상으로, 영국 낭만주의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 해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나 활동을 선보인 영국 작가, 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에게 수여된다. 제정 당시에는 ‘50세 미만’ 연령 제한이 있었지만, 2017년 이후 연령 제한이 폐지돼 더 넓은 세대가 참여할 수 있게 바뀌었다. 매년 4명 내외의 최종 후보가 발표되고, 후보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가 열린 뒤 12월경 최종 수상자가 발표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터너상은 아방가르드·실험적 작업, 정치·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과감히 수상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데이미언 허스트, 재슬린 카우르 등, 이후 국제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작가 다수가 터너상을 계기로 주목을 받았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놓고 매년 사회적 논쟁을 촉발해, 영국 내에서는 단순한 상을 넘어 ‘현대미술에 대한 공론장’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있다.

 

 

4인의 후보, 서사와 정치성 앞세운다


테이트 브리튼은 4월 22일(현지시간) 2026년 터너상 최종 후보로 시메온 바클레이, 키라 프레이예, 마르그리트 위모, 타노아 사스라쿠를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터너상은 1984년 제정 이후 매년 영국 국적 혹은 영국 거주 작가의 전년도 주요 전시에 수여되는 상으로, 현재 영국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금 2만5,000파운드(약 4,200만원) 규모의 상으로 자리잡았다.

 

바클레이는 라이브 타악기와 호른 연주가 결합된 1시간 분량 퍼포먼스 작품 「The Ruin」으로 이름을 올렸다. 허더즈필드에서의 성장 경험을 토대로 영국성, 계급, 인종, 남성성이라는 네 개의 축을 동시에 건드리면서, 말과 리듬, 신체를 통해 ‘영국 사회의 목소리 구조’를 해부한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최종 후보 중 순수 퍼포먼스 기반 작업은 바클레이가 유일하다.

 

조각가 키라 프레이예는 허프워스 웨이크필드에서 열린 첫 대규모 개인전 「Unspeak the Chorus」로 주목받았다. 그는 금속과 패브릭, 길거리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결합해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형상화”에 도전했고, 심사위원단은 갤러리 전체를 하나의 몽환적 무대로 만든 설치적 감각을 “표현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출신 마르그리트 위모는 덴마크 코펜하겐 ARKEN 현대미술관과 헬싱키 시립미술관을 순회한 개인전 「Torches」로 선정됐다. 위모는 선사시대 생명 형성과 가상의 미래 생태계를 상상하며 조각·사운드·라이트를 결합해 ‘생태 SF’에 가까운 서사를 펼친다는 점에서, 기후·멸종·비인간 존재를 다루는 동시대 담론의 선봉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나계 영국 작가 타노아 사스라쿠는 런던 ICA에서 선보인 「Morale Patch」로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었다. 사스라쿠는 발견된 오브제와 종이·조각·필름을 결합해 석유라는 자원이 어떻게 군사력, 전쟁, 국경, 국기와 연결되는지를 시각화했고, 심사위원단은 “국가 정체성과 자원의 폭력적 결합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업”으로 평가했다.

 

대학 미술관 첫 유치…‘MIMA 20주년’과 맞물린 전략


4인의 작품은 모두 티사이드대학교 소속 미들즈브러 현대미술관(MIMA)에서 2026년 9월 26일부터 2027년 3월 29일까지 전시된다. 테이트는 이번 전시가 “터너상 전시가 대학 갤러리에서 열리는 첫 사례”라고 강조했고, MIMA는 개관 20주년(2007년 개관)을 맞는 2027년을 앞두고 상징적인 이벤트를 확보하게 됐다.

 

전시는 전 기간 무료 입장으로 운영되며, MIMA는 화~토요일 10:00~16:30, 일요일 12:00~16:00까지 문을 연다. 2010년대 말까지 터너상 전시가 연간 최대 13만 명 수준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는 과거 통계와, 최근 영국 내 무료 미술관 관람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지방 도시 미들즈브러에 적지 않은 문화·관광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수상자는 2026년 12월 10일 MIMA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수상자에게는 2만5,000파운드, 나머지 세 명의 후보에게는 각 1만 파운드의 상금이 수여된다. 총 상금 5만5,000파운드는 유럽 주요 미술상과 비교해도 결코 크지 않은 규모지만, 주요 갤러리 및 미술관 전시·컬렉션 진입, 2~3년간 국제 비엔날레 러브콜 등 파급 효과를 감안하면 ‘상징 자본’으로서의 가치는 훨씬 크다는 것이 미술계 중론이다.

 

 

‘논쟁의 상’에서 ‘공론장의 플랫폼’으로


터너상은 출범 후 40여 년 동안 상 자체보다 더 많은 언론을 불러모으는 ‘논쟁의 장’이었다. 포멀린 통 속 상어(데이미언 허스트), 엉망으로 흐트러진 침대(트레이시 에민) 등 선정작마다 “이게 과연 미술인가”라는 논쟁이 반복됐고, 1990년대 말에는 한 해 전시 관람객이 13만명을 넘어서며 영국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사화되는 현대미술상”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 사이 터너상은 노골적인 ‘충격 요법’ 대신,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섬세하게 다루는 작업을 전면에 배치하는 방향으로 기조를 변화시켰다. 2026년 후보 4인의 작업 역시 영국 사회의 계급·인종·젠더, 기후위기와 생태, 에너지 지정학, 감정과 신체성 등 복합 의제를 장르를 넘나드는 형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각 예술가들이 현실과 상상을 아우르는 정교하게 구성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는 알렉스 파쿠어슨 심사위원장의 평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번에 테이트가 런던 테이트 브리튼을 떠나 북동부 대학 도시 미들즈브러를 선택한 것도, 중앙집중형 아트씬의 권력을 의도적으로 분산시키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BBC는 지난해 이미 MIMA 유치 소식을 전하며 티사이드 지역에서 “대단한 쾌거(major coup)”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고, 지역 언론은 대학·도시·미술관이 결합된 ‘문화 허브’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결국 2026년 터너상은 네 명의 작가만이 아니라, 런던을 벗어난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동선과 대학 미술관이라는 플랫폼의 실험을 함께 시험대에 올려놓은 무대다. 바클레이의 퍼포먼스가 영국 내부의 목소리 충돌을 어떻게 무대화할지, 위모와 사스라쿠가 생태와 자원의 폭력성을 어떤 서사로 엮어낼지, 프레이예가 감정의 조각을 어디까지 확장할지가 올가을 미들즈브러에서 확인해야 할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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