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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랭킹연구소] 전쟁·제재 뚫고 러시아 억만장자 155명, 6965억 달러 '자본주의의 역설'…알렉세이 모르다쇼프(세베르스탈)>블라디미르 포타닌(노릴스크 니켈)>바깃 알렉페로프(루코일)>레오니드 미헬손(노바텍) 順

 

[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러시아 억만장자들의 자산이 전쟁과 제재를 뚫고 사상 최고치인 6,965억 달러를 찍었다는 포브스 러시아 집계는, 대러 제재의 실효성과 러시아식 자본주의의 구조적 불평등을 동시에 드러내는 신호탄이다.
 

제재 속 11% 증가, 155명의 ‘슈퍼 리치’


포브스 러시아와 이를 인용한 로이터에 따르면, 2025년 4월부터 2026년 4월까지 1년 동안 러시아 억만장자 155명의 합산 자산은 11% 늘어나 6,965억 달러로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포브스 집계상 러시아 억만장자 수는 2022년 전면 침공 직후 88명에서 2023년 110명 수준, 2024년 125명을 거쳐 2026년에는 155명으로 4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가치 총액으로 보면 러시아 억만장자들의 부는 2022년 3,530억 달러에서 2023년 5,050억 달러, 2024년 5,770억 달러, 2026년 6,965억 달러로 사실상 ‘우상향 직선’을 그렸다.

 

같은 기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금융·에너지·기술 분야를 망라한 서방의 제재 확대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제재 속 부의 역설”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자원·환율이 키운 부의 엔진


이번 부의 증가는 첫째, 자원 수출 호조, 둘째, 루블화 강세라는 두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포브스 러시아와 로이터는 러시아 최고 부호들이 석유·가스·금속 등 천연자원과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혼란과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로 원자재 가격이 지지·상승세를 보이면서 이들의 자산 평가액이 크게 뛰었다고 전했다. 

 

또한 포브스는 지난 1년간 루블화가 약 16% 절상된 점을 지목하며, 달러 기준 자산 평가액 상승에 환율 효과가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밝혔다. 실제 포브스 러시아에 따르면, 리스트에 오르기 위한 최소 기준도 약 800억 루블 수준으로 높아졌는데, 이는 루블 강세와 자산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TOP 4, 모두 ‘자원 왕국’…새 얼굴 없이 더 부유해져


순위 상단부는 기존 자원 재벌들이 그대로 지키되, 부의 규모만 불어났다. 로이터와 더모스크바타임스 등에 따르면, 철강·광물 재벌 알렉세이 모르다쇼프(세베르스탈 최대주주)가 약 370억~390억 달러 수준의 자산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인테로스와 니켈·팔라듐 생산업체 노릴스크 니켈을 이끄는 블라디미르 포타닌(약 297억 달러), 민간 석유회사 루코일 창업자 바깃 알렉페로프(약 295억 달러), 가스 기업 노바텍을 이끄는 레오니드 미헬손 일가(약 283억 달러)가 이었다.

 

포브스는 “상위권에는 새로운 이름이 없다”고 못 박으며, 기존 자원 올리가르히들이 전쟁·제재 국면에서도 자산을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규 진입자 14명 가운데 7명이 농업·식품 분야에서 부를 일군 점도 눈에 띄는데, 이는 에너지뿐 아니라 식량·곡물 수출이 러시아 ‘제재 경제’의 또 다른 수혜 산업임을 보여준다.

 

 

서방 제재, 무엇이 새고 있나


이 같은 수치는 서방이 지난 4년간 쏟아낸 제재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EU는 2026년 2월 1일부터 러시아산 해상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47.60달러에서 44.10달러로 낮추는 조치를 발효시켰고, 영국 역시 같은 수준으로 상한선을 인하해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연구진 등은 러시아 및 제재 대상 기업들이 제3국 선박·보험·금융을 활용해 가격 상한을 우회하고, 각국 규제의 빈틈을 파고드는 ‘규제 차익거래(regulatory arbitrage)’를 통해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해왔다.

 

로이터 역시 러시아 자원 기업들이 중동·아시아·아프리카 수입국과의 비달러 결제, 선박 ‘깜깜이 함대’ 활용 등 다양한 우회 루트를 동원해 수출 물량과 현금 흐름을 방어해 왔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서방의 금융·자산 동결 제재는 일부 개인·기업의 해외 자산을 묶는 데는 성공했지만, 러시아 내부에서 억만장자 집단의 총자산 증가를 막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다.

 

 

국민 예금보다 많은 ‘155인의 자산’…글로벌 격차는 여전


러시아 내부의 격차는 통계로도 선명하다. 러시아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6년 2월 기준 러시아 국민의 루블화 정기예금 잔액은 46조 2,300억 루블 수준으로, 이를 환산하면 러시아 억만장자 155명의 총자산에 미치지 못하는 규모로 추산된다.

 

즉, ‘155명의 자산 총액이 1억4,600만명 국민의 은행 저축을 상회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초부호와 비교하면 러시아 재벌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로이터가 인용한 글로벌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세계 자산 1위인 일론 머스크의 재산은 약 8,390억 달러로, 러시아 억만장자 155명의 자산 합계(6,965억 달러)를 단독으로 웃돈다.

 

이는 러시아가 자원 기반 경제를 통해 ‘내부 올리가르히’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글로벌 기술·플랫폼·지식재산을 기반으로 한 초고성장 부호를 배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방증한다.

 

‘제재 이후 세계’의 리트머스 시험지


결국 이번 포브스 러시아 통계는 세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전례 없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원·환율이라는 두 축을 활용한 러시아식 적응이 상당 부분 성공했다는 점, 둘째, 그 대가로 국내 부·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는 ‘내부 불평등의 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셋째, 글로벌 차원에서는 여전히 미국 빅테크 중심의 초격차 구조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서방이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가격 상한 인하 같은 상징적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비달러 결제·깜깜이 선단 등에 대한 정보 공유와 세컨더리 보이콧 등 구조적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러시아 억만장자 155명의 ‘사상 최대 잔치’는, 제재 이후 세계 질서를 설계하려는 서방과, 제재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해온 러시아 자원 자본주의 간 힘겨루기의 중간 성적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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