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2025년 6월, 전 세계 IT 업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리눅스(Linux) 창시자 리누스 토발즈가 마침내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이 역사적 만남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CTO 마크 루시노비치(Mark Russinovich)의 초대로 이뤄졌으며, 윈도우 NT의 아키텍트 데이비드 커틀러(David Cutler)도 함께했다.
Times of India, MoneyControl, DigiTrendz, Igor’s Lab 등 글로벌 IT 전문매체와 루시노비치 링크드인(LinkedIn) 게시글에 따르면, 루시노비치는 “빌 게이츠, 리누스 토발즈, 데이비드 커틀러와 저녁을 함께했다. 리누스는 빌을, 데이브는 리누스를 처음 만났다. 핵심 커널 결정은 없었지만, 다음 만찬을 기대한다”는 유쾌한 소감을 남겼다.
“적대에서 공존으로”…소프트웨어 철학의 충돌과 변화
이 만남의 상징성은 단순한 ‘첫 대면’에 그치지 않는다. 두 인물은 지난 30년간 상반된 소프트웨어 철학의 상징이었다. 빌 게이츠는 MS-DOS와 윈도우, 오피스 등 폐쇄형(프로프라이어터리) 소프트웨어로 시장을 장악하며 ‘소프트웨어를 상품으로 만든’ 대표적 기업가다. 그는 라이선스와 통합, 종속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반면, 리누스 토발즈는 1991년 리눅스 커널을 공개하며 “소프트웨어는 모두의 도구”라는 오픈소스 운동의 기수로 떠올랐다. 그는 “최대의 적응성, 라이선스 없는 자유, 투명한 협업”을 강조하며 전 세계 개발자 커뮤니티를 이끌었다.
이 두 철학은 2000년대 초까지 극한의 대립을 이어왔다.
MS의 전 CEO 스티브 발머는 “리눅스는 지적재산권적 의미에서 모든 것을 잠식하는 암(cancer)”이라며 공개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토발즈 역시 “윈도우는 열면 쓸모없어지는 에어컨 같다”는 촌철살인으로 MS를 비꼬았다.

“적은 사라지고, 협업이 남았다”…MS의 오픈소스 대전환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MS는 2010년대 들어 애저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리눅스를 적극 도입하고, 2018년에는 오픈소스 개발의 허브인 깃허브(GitHub)를 인수하며 오픈소스 진영과의 거리를 좁혔다. .NET Core, Visual Studio Code 등 자체 기술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현재 애저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OS는 리눅스다.
이러한 변화는 사티아 나델라 CEO 체제에서 더욱 가속화됐다. 그는 “MS는 이제 오픈소스의 친구”임을 천명했고, 실제로 MS는 리눅스 커널 개발에도 기여하고 있다.
“만찬의 대화, 기술을 넘어 인류로”
이번 만찬에서 두 거장은 소프트웨어 논쟁이 아닌 보다 폭넓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토발즈는 “대화는 거의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 공학과 무관했다. 빌은 아프리카에서의 자선활동과 소듐 원자로 및 핵융합 등 차세대 에너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게이츠는 2008년 테라파워(TerraPower)를 공동 설립해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매진 중이다.
AI에 대한 시각도 엇갈렸다. 게이츠는 “10년 내 대부분의 일자리를 AI가 대체할 것”이라 전망한 반면, 토발즈는 “AI는 90%가 마케팅, 10%가 현실”이라며 과도한 기대에 선을 그었다.
“적대의 시대를 넘어, 공존과 협업의 미래로”
이 만남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기술 업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준다. 폐쇄와 독점, 오픈과 협업의 대립이 ‘공존과 융합’으로 진화한 것이다. 실제로 MS와 리눅스 진영 모두 클라우드, AI, IoT 등 미래 산업에서 더 많은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토발즈는 “이제 MS와의 이념적 전쟁은 끝났다”고 말한다. 루시노비치는 “다음 만찬에서는 진짜 커널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빌 게이츠와 리누스 토발즈의 만남은 ‘적대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두 거인의 악수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폐쇄와 독점’에서 ‘개방과 협업’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흐름의 상징이다.
이들의 만남이 앞으로 어떤 협업과 혁신을 이끌지, 전 세계 IT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