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조일섭 기자] 삼성물산이 2025년 하반기 서울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압구정2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전격적으로 발을 뺐다. 당초 현대건설과의 ‘빅매치’가 예고됐던 상황에서, 입찰 공고 사흘 만에 내린 갑작스러운 결정은 업계와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표면적 사유는 ‘조합 입찰조건의 이례적 제한’이지만, 그 이면엔 삼성물산 특유의 브랜드 전략, 리스크 관리, 장기적 시장 포지셔닝 등 입체적 판단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표면적 이유 “조합 입찰조건, 글로벌 랜드마크 실현 불가”
삼성물산은 공식적으로 “조합의 이례적인 대안설계 및 금융조건 제한으로 당사가 준비한 글로벌 랜드마크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조합의 입찰지침이 문제로 지적됐다.
조합은 최근 대의원회의에서 ▲ 대안설계 범위 대폭 제한 ▲ 모든 금리 CD+가산금리 형태로만 제시 ▲이주비 LTV 100% 이상 제안 불가, 추가이주비 금리 제안 불가 ▲ 기타 금융기법 등 활용 제안 불가 등 이례적인 입찰 지침을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는 삼성물산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세계적 설계·금융 패키지, 조합원 실익 극대화 전략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회사의 공식 입장이다.
실제이유 ① 조합의 ‘과도한 제한’…건설사 경쟁력 발휘 불가
압구정2구역 조합은 시공사간 과열경쟁과 향후 분쟁을 막기 위해 설계와 금융조건을 강하게 제한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삼성물산이 준비한 초고층 혁신설계, 맞춤형 금융지원, 글로벌 파트너십 등 차별화 전략이 봉쇄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입찰조건이 사실상 ‘최저가 경쟁’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삼성물산이 세계적 시공·금융 역량을 발휘할 공간이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실제이유 ② ‘클린수주’ 원칙과 사업 리스크 회피
삼성물산은 2015년 이후 ‘클린수주’ 원칙을 내세우며, 무리한 출혈경쟁이나 불합리한 조건의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는 기조를 고수해왔다. 최근 한남4구역 등 대형사업 수주로 이미 연간 수주목표를 초과 달성한 상황에서, 초대형 프로젝트라도 사업성·브랜드 가치에 손상이 우려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단기적 실적보다 장기적 브랜드·수익성 관리에 방점을 둔 ‘옥석 가리기’ 전략의 일환이다.
실제이유 ③ ‘최저가 입찰’ 유도, 브랜드 프리미엄 무력화 우려
조합이 설계·금융 등 모든 경쟁요소를 제한하면서, 사실상 ‘공사비 최저가’만 남는 구조가 됐다. 삼성물산은 글로벌 초고층·스마트홈 등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내세웠으나, 조합이 이를 받아들일 여지가 사라졌다는 평가다.
“브랜드·기술 프리미엄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장에선 굳이 출혈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삼성물산 내부 분위기다.
실제이유 ④ 향후 정비사업 시장·브랜드 가치 고려
압구정2구역은 향후 3·4·5구역 등 강남권 정비사업의 ‘기준점’이 되는 사업지다. 삼성물산이 무리하게 수주해 저가경쟁에 휘말릴 경우, 이후 강남권 전체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와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내부적으로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번 포기는 단기적 손실보다 장기적 브랜드 가치와 시장 전략을 우선한 결정”으로 해석한다.
‘초대형’ 압구정2구역, 조합-건설사 ‘동상이몽’이 만든 결렬
삼성물산의 압구정2구역 수주 포기는 ▲조합의 과도한 입찰조건 제한 ▲클린수주 원칙 및 리스크 관리 ▲브랜드 프리미엄 무력화 우려 ▲장기적 시장 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한 구역의 수주전 포기를 넘어, 향후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입찰구조와 건설사-조합 관계, 브랜드 전략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현대건설이 단독으로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조합의 ‘최저가 경쟁’ 지향이 향후 사업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