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시민 기자]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한 가족이 유럽행 여객기 안에서 대량의 빈대(bed bug)에 물려 여행이 망가졌다며, 미국 델타항공과 네덜란드 KLM 네덜란드항공을 상대로 20만달러(약 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항공사 기내 위생과 안전 관리에 대한 논란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사건 경위: 로어노크→애틀랜타→암스테르담→베오그라드
소장을 보면, 안과 의사인 로물로 앨버커키(Romulo Albuquerque)와 아내 리산드라 가르시아(Lisandra Garcia), 두 자녀(베니시오, 로렌조)는 지난 3월 21일 버지니아 로어노크에서 델타항공편으로 출발해 애틀랜타에 도착한 뒤, 암스테르담을 거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KLM 운항편으로 환승했다.
이 왕복 항공권은 델타의 ‘스카이마일스(SkyMiles)’ 프로그램을 통해 예약됐고, 문제의 빈대 피해는 애틀랜담발 암스테르담행 KLM 코드셰어 구간(좌석 12H·12K, 뒤쪽 14H·14K로 기재)에서 발생한 것으로 소장에 적시됐다.
“옷 위로 빈대가 기어 다녔다”…승무원은 “조용히 하라”
비행이 시작된 지 약 2시간이 지났을 때, 가르시아는 몸 위를 벌레가 기어 다니고 무언가에 계속 물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곧 옷 위와 좌석 틈에서 실제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모습을 발견했고, 가족은 곧바로 승무원에게 신고했으나 “다른 승객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사진·영상 증거와 신체 피해 주장
앨버커키 가족은 기내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이 자료에는 KLM이 제공한 음료용 휴지(냅킨) 위에 죽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벌레, 승객의 스웨터와 좌석 틈을 기어다니는 벌레, 그리고 목·등·팔다리에 생긴 붉은 발진과 부어오른 자국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에 따르면 가족 전원은 “몸통과 팔다리 전반에 걸친 부어오르고 가려운 두드러기, 병변, 발진”을 겪었으며, 이 자국은 귀국 후까지 상당 기간 사라지지 않았고 일부는 현재까지 흉터가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휴가 ‘전면 파탄’…20만달러 손배 청구
가족은 “빈대에 물린 충격과 고통으로 세르비아에서의 가족·친지 방문 일정이 사실상 망가졌다”며, 여행 중 의료비 지출, 감염 우려로 인한 심리적 불안, 오염 가능성이 있는 의류·소지품 폐기 등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호소했다.
소장에서 이들이 요구한 배상액은 델타와 KLM을 합산해 최소 20만달러로, 여기에는 신체적 상해와 발진·가려움, 정신적 고통(불안·분노·수치심 등), 치료비, 손상된 의류·소지품 비용 등이 포함돼 있다.
델타·KLM “구체적 언급 어렵다”…책임 공방 예고
현지 보도에 따르면 델타항공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소송이 제기된 바와 같이, 문제의 항공편은 델타가 직접 운항한 항공편이 아니다”라며, “소장을 검토한 뒤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KLM은 영국 인디펜던트 및 미국 매체에 “현재 진행 중인 법적 절차에 대해 구체적 코멘트는 할 수 없다”며, 관련 사안을 ‘적절한 법적 채널’을 통해 처리하겠다고만 밝힌 상태다.
항공기 ‘빈대 리스크’...터키항공·델타 등에서도 반복 제기
이번 소송은 항공기 내 빈대 문제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 나왔다. 2024~2025년 사이 터키항공 장거리 노선 여러 편에서 좌석·담요·머리 위 수납함 등에서 빈도가 잇따라 목격됐다는 승객 증언이 뉴욕타임스와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외신에 연이어 보도됐다.
터키항공의 한 피해 승객은 항공사로부터 향후 항공권 10% 할인 쿠폰 정도의 보상만 제시받았다며 불만을 토로했고, 항공사는 “21일마다 한 번씩의 ‘딥 클리닝(deep cleaning)’과 매 항공편 전 일반 청소를 시행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기내 방제 비용: 항공사 부담은 어느 정도인가
항공기가 빈대 등 해충에 오염됐을 경우, 통상 항공사는 기체를 일정 기간 운항에서 제외한 뒤 고열·증기·약제 분무 등을 이용한 방제 작업을 진행한다.
미국 Fortune과 교통·해충방제 전문가 추정에 따르면, 대형 항공기 내부 좌석 전체를 고온 스팀 세척하는 비용은 항공기 1대당 약 1만~1만3,000달러 수준으로, 항공기가 운항에서 빠지는 기간 동안의 매출 손실까지 고려하면 총 비용은 7만5,000~12만5,000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항공기 내 빈대, 얼마나 흔한가
항공기 기내 빈대 사건은 통상 호텔·기차 등 숙박·운송시설의 빈대 문제에 비해 공식 통계가 잘 잡히지 않는 편이다. 근거가 부족해 정확한 연간 발생 건수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항공 전문 매체와 소비자 커뮤니티에 집계된 사례를 보면, 북미·유럽 대형 항공사들을 포함해 장거리 국제선에서 수시로 ‘좌석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제보가 올라오고 있으며, 일부 사례는 항공사가 공식 확인 후 기체를 즉시 퇴역 또는 장기 점검에 들어간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법적 쟁점: 청결 의무와 손해 범위
이번 버지니아 가족의 소송은 ‘항공사가 승객에게 안전하고 위생적인 운송 환경을 제공해야 할 계약상·불법행위상 의무를 위반했는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한 실제 빈대 존재와 물림 사실, 항공사의 인지 여부와 대응 수준, 여행 일정 파탄과 정신적 손해의 범위, 그리고 코드셰어 구조 하에서 델타와 KLM 간 책임 분담 비율이 어떻게 인정될지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항공사들에 던지는 시그널
항공·위생 전문가들은 장거리 국제선의 높은 탑승률과 빠듯한 기재 순환 구조를 감안할 때, ‘위험을 최소화할 수준의 사전 방제와 사후 대응 프로토콜’이 향후 항공사의 평판과 재무 리스크 관리에서 중요한 변수로 부상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항공분야 전문가는 "이번 델타·KLM 상대 소송 결과에 따라, 향후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도 기내 청소·방제 주기를 늘리고, 승객 신고 시 기체를 즉시 운항에서 제외해 정밀 점검에 나서는 ‘제로 톨러런스’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