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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빅테크칼럼] "영하 63℃·고압 1000배서 물의 ‘제2임계점’ 확인"…34년간의 탐색 끝에 미스터리 종결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30년 이상 물리학자들은 물이 과냉각 상태 깊은 곳에 숨겨진 제2임계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논쟁해왔다. 이 임계점은 물이 왜 거의 모든 다른 액체와 그렇게 다르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phys.org, EurekAlert에 따르면, 스톡홀름대학교 안데르스 닐손(Anders Nilsson) 연구팀이 X선 레이저를 활용해 물의 과냉각 영역에서 예측됐던 ‘제2임계점(liquid–liquid critical point, LLCP)’을 세계 최초로 직접 관측했다. 이 결과는 1992년 제시된 이론 가설을 34년 만에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으로, 물의 비정상적 열역학적 특성의 근본 원인에 대한 해석을 재정립할 수 있는 핵심 단서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는 목요일 Science 저널에 게재됐다.

 

고온·대기압 물까지 영향 미치는 임계점


연구팀은 과냉각 물의 “무인지대(no man’s land)”라 불리는 영하 38℃ 이하·고압 조건에서 물이 나노초 안에 얼어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포항가속기연구소(PAL-XFEL)의 초단파 X선 레이저를 이용해 비정질 얼음(amorphous ice)을 빠르게 녹인 뒤, 얼음화 이전의 액체 상태를 X선 산란으로 관측했다.

 

이 방법으로 확인한 제2임계점의 위치는 약 –63°C(110 K 전후)와 대기압의 약 1,000배 수준(약 1,000 atm)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산·모델링 연구에서 제시된 수준과도 일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임계점이 고온·저압 범위의 일반 물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닐손은 “대기압·상온에서 관찰되는 물의 밀도 최댓값(약 4°C), 비정상적인 압축성·열용량 등이 모두 과냉각 영역의 제2임계점 근처에서 나타나는 고밀도·저밀도 두 액체상의 요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물의 열역학적 이상(anomalies)은 임계점에서 끝나는 “액체–액체 전이”가 높은 온도·압력으로도 희석된 형태로 이어진다는 해석이 가능해진 셈이다.

 

1992년 시뮬레이션 가설의 30여 년 추적

 

제2임계점 존재론은 1992년 피터 룰(Peter Poole), 프란체스코 시오르티노(Francesco Sciortino), H. 유진 스탠리(H. Eugene Stanley)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시한 개념에서 출발했다. 당시 그들은 물이 고밀도·저밀도 두 액체 상태로 분리될 수 있고, 이 두 상의 경계가 임계점에서 사라진다는 ‘액체–액체 전이(liquid–liquid transition, LLT)’ 모델을 제안했다.

 

이후 수십 년간 수천 마이크로초 수준의 분자동역학(MD) 시뮬레이션과 정교한 모델(TIP4P/2005·TIP4P/Ice 등)을 통해, 약 180–220 K·800–1,200 atm 구간에서 임계점이 존재할 가능성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무인지대”에서의 실험적 접근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2020년대 초반까지도 “강력한 시뮬레이션 증거와는 달리, 직접적인 실험적 증명은 없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적외선 펄스로 고밀도·저밀도 비정질 얼음을 순간 가열한 뒤, PAL-XFEL의 X선 산란 패턴을 통해 두 액체 상태의 공존과 임계점 근처에서의 상전이 소멸을 직접 관측해, “액체–액체 전이와 임계점의 존재”를 명확히 입증했다는 점이 Science 논문과 EurekAlert 등에서 강조된다.

 

임계점 근처에서 느려지는 ‘블랙홀 같은’ 분자운동


연구팀은 임계점 근처에서 물 분자의 동역학이 극도로 느려지는 현상도 관측했다. 밀도파 동요(soft modes)가 강화되면서, 시스템이 임계점에 들어가면 거의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느려지는 양상을 보였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이는 통계역학에서 통용되는 3차원 Ising 계열(3D Ising universality class)의 임계 행동과 일치하며, 시뮬레이션에서 추정된 이론과도 맥락이 부합한다. 실험 데이터는 또한 임계점에서 고밀도 액체(HDL)와 저밀도 액체(LDL)의 밀도 차이가 0에 수렴하고, 상전이의 에너지 장벽(barrier height)이 줄어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준다.

 

일상·생명·기후까지 영향 줄 수 있는 물리학

 

닐손은 “이제 물의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물이 과냉각 영역에 임계점을 가진다는 모델에 상당 부분 합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며, "다음 과제는 이 임계점이 물리·화학·생물·지질·기후 관련 과정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0–4°C 사이에서 물의 밀도가 증가하는 현상은 얼음이 물 위에서 뜨게 하며 수생 생태계를 보호하는 기능을, 비정상적인 압축성·열용량은 대기·해양 순환과 기후 모델의 민감성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이번 발견은 얼음 형성 제어, 제약·생명공학에서의 수용액 설계, 고압·저온 환경 기후 모델링 등에 새로운 이론적 출발점을 제공할 전망이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물이 4도에서 가장 무겁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 이면에는 영하 60도·고압 1,000배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제2임계점의 그림자와, 물 분자의 고밀도·저밀도 요동이 100년 넘게 풀리지 않던 물의 열역학적 미스터리를 끝내 줄 수 있는 핵심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새로움으로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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