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혜주 기자] 인류가 ‘술꾼’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비밀이 진화 연구로 확인됐다.
미국 다트머스대와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최근 논문(ADH4 진화, 발효 과일 섭취 분석)과 BBC, Nature등의 보도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나무에서 생활하다가 땅에서 떨어진 발효 과일을 자주 섭취하는 습성이 있었고, 이 결과 아프리카 유인원보다 알코올 분해 효소(ADH4) 활성도가 40배 이상 폭발적으로 향상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땅에 떨어진 ‘발효 과일’이 만든 숙련된 알코올 분해자
연구진에 따르면, 약 1000만년 전 인류 조상이 땅에서 열매를 주워 먹기 시작하면서 자연발효된 과일의 알코올에 노출되는 빈도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알코올 대사에 관한 효소(ADH4)가 강하게 선택적으로 진화해, 기존 아프리카 영장류에 비해 40배나 강력한 알코올 분해 능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인간은 침팬지 등 나무 위 생활에 특화된 영장류보다 발효 과일 알코올을 더 빨리, 더 많이 대사하는 대사 경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진화사의 ‘술친구’…현대인 음주 문화와의 관계
연구 논문에서 “자연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열매는 바람직한 에너지 공급원이었고, 동시에 적절한 알코올 분해력이 없으면 에너지 흡수에 실패하거나 중독, 사망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연구진은 “인간의 알코올 대사 능력은 진화의 산물로, 현대사회에서 음주 인구 비중이 높은 이유 역시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찾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현대인 알코올 대사 차이와 유전 변이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에도 인종 간 알코올 분해 효소 보유 유전자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일부 인구는 알코올 분해효소(알데히드탈수소효소, ALDH2)의 결함으로 속칭 ‘술에 약한 체질’이 많다.
반면 서구권 인구는 상대적으로 대사 효율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는 인간의 70~80%가 알코올을 적정량 이상 대사할 수 있는 유전형을 갖고 있다는 연구도 보고됐다.(British Medical Journal)
‘술 진화’ 연구는 계속된다
향후 인류학·유전학계에서는 ‘음주 진화’가 사회·문화·경제 구조에 미친 영향, 각기 다른 유전적 배경 하에서 전략적 음주 행동, 지역별 질병 취약성 등 폭넓은 연구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즉 술에 유독 강한 인간의 진화적 내력은, ‘자연 발효 과일→알코올 분해 능력 진화’라는 진화의 퍼즐로 설명된다.
우리 인간들의 ‘음주본능’도 결국은 생존전략의 일부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