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2025년 8월호 보그(Vogue) 미국판에 게스(Guess)가 실은 광고에서 인공지능(AI)으로 창조한 금발 여성 모델이 등장해 전 세계 패션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화려한 줄무늬 원피스와 백을 든 금발의 완벽한 모델. 하지만 이 화보의 하단에는 ‘AI 모델’임이 조그맣게 적혀 있었고, 이 사실이 대중에 알려지며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모델 일자리·현실감 위협”…독자들 항의 쇄도·구독 취소
미국 ABC뉴스, CNN, BBC 등 다양한 매체는 이번 보그의 AI 모델 게재가 현실 모델은 물론 포토그래퍼,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패션 생태계 전체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실제로 레딧 등 해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현실 여성의 자리를 가짜가 빼앗았다”, “이젠 잡지도 안 본다”며 보그 구독을 해지하는 독자까지 속출했다.
한 틱톡 영상은 270만뷰를 넘기며 AI 모델 논란에 불을 지폈고, “실제 여성도 충분하다. 이제는 실존하지도 않는 ‘완벽한’ 모습을 요구받게 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AI 모델, 왜 문제인가?…‘미의 기준’ 획일화·다양성 후퇴 비판
비판의 핵심은 AI 모델이 대체로 ‘백인·금발·이상적 몸매’ 등 기존의 획일적 미적 기준을 답습했다는 점이다. 패션업계가 오랜 시간 다양성과 신체 긍정의 메시지를 강화해온 시점에서 '비현실적 아름다움'이 오히려 부활한 셈이다.
실제로 패션산업 내 모델의 46.8%가 백인(2024년 기준/패션다이버시티리포트), 유색인종 대표성이 겨우 19.3%에 불과한 배경 속에서 이런 AI 모델의 등장은 “15년간 쌓은 인종·체형 다양성 노력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광고주·AI 업체 측 “실제 모델 고용 계속…비용·효율 때문”
AI 모델 생성에 참여한 세라핀 발로라(Seraphinne Vallora) 측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AI 이미지는 실존 모델의 포즈와 피팅 데이터에 기반해 생성된다. 실제 모델 고용은 계속하며, AI는 창의적 버전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촬영 예산·시간 단축, 다양한 시각화 가능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한 마케팅 분석 결과, AI 모델 광고의 클릭률은 컴플레인 숫자 대비 30배에 달했고, 제품 판매량도 급증하는 등 마케팅 효용성이 입증된 사례도 있다.

현장 일자리·산업구조 변화 불가피…“2700만개 일자리 위험”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 7500만명에 달하는 의류·패션 산업 일자리 중 2700만개(60%)가 자동화·AI 도입으로 사라질 위험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방글라데시 등 제조 중심 국가에서는 이미 AI 품질관리 솔루션 도입 한 곳에서 수십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사례도 나타났으며, AI로 인한 업종 전환과 재훈련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AI vs 인간’, 패션의 미래는?
이번 보그의 AI 모델 사태는 단순한 마케팅 논란을 넘어, “진짜와 가짜의 경계”, “패션산업의 윤리와 정체성”, “AI 도입의 속도와 사회적 논의”라는 거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패션분야 전문가들은 “패션이란 고유의 인간 감정·서사, 다양성이 뒷받침되는 산업”이라며, “기술의 도입이 곧 정답은 아니다. 사회가 원하는 가치는 인간 경험과 연결된 진정성(authenticity), 그리고 다양성”임을 강조했다.
한국 빅테크 분야 한 관계자는 “AI 모델은 2020년대 패션의 ‘디지털 트랜스휴머니즘’ 도전장이다. 기술혁신이 ‘새로움’을 넘어 ‘사람의 일상과 산업, 정체성’까지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혁신 이면의 그림자, 다양성 후퇴와 인간성의 공백까지 꿰뚫는 인사이트가 패션업계 새 시대의 키워드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