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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DNA로 기후위기 ‘시간 벌기’ 나선 과학자들…진화의 속도를 보전유전체학으로 조절한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기후변화가 생태계의 ‘진화 속도’를 앞지르자, 전 세계 연구자들이 생태계 복원 전략의 핵심 도구로 보전유전체학을 전면에 올리고 있다. 자연선택이 수천·수만 년 걸려 할 일을, DNA 데이터를 활용해 몇 세대 안에 앞당겨보겠다는 실행형 실험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서부 레드우드 숲과 캘리포니아 연안 거머리말 초지처럼 탄소흡수와 생물다양성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는 생태계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장수종 위주의 이러한 생태계는 세대 교체 속도가 느려, 진화적 적응만으로는 급격한 온난화·가뭄·해양열파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진단이다.

 

보전유전체학은 이런 시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가속 페달’이다. 연구진은 특정 종의 전체 게놈을 해독한 뒤, 고온·가뭄·질병·저광량 환경에서 생존과 연관된 유전 변이를 통계적으로 추출하고, 이 정보를 토대로 복원에 투입할 ‘기후 내성형 개체’를 선발한다. AP가 인용한 전문가들은 “기후가 바뀌었기 때문에, 과거에 잘 자라던 개체를 다시 심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유전체 정보 기반의 정밀 선발이 새 표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레드우드와 세쿼이아, 10개 형질·84개 유전자 마커로 가뭄 내성 지도 만든다

 

육상 생태계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해안 레드우드와 자이언트 세쿼이아가 ‘유전체 기반 기후 적응 실험장’의 전면에 섰다. 레드우드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팀은 두 종에서 탄소동위원소 비, 삼투압, 목부(도관) 직경, 수분 운반 섬유 면적 등 10개 가뭄 관련 생리·해부학적 형질을 지표로 삼아,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을 수행했다. 그 결과 해안 레드우드에서 78개, 자이언트 세쿼이아에서 6개의 유의미한 ‘마커×형질 연관’이 확인되며, 총 84개의 후보 유전자 영역이 drought tolerance(가뭄 내성)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진은 건조·고온 지역에서 온 레드우드 개체가 더 넓은 수분 운반 섬유를 가져 수분 스트레스에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 남부·건조·고고도 지역 자이언트 세쿼이아가 탄소동위원소 차별값이 높아 향후 가뭄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정량적으로 제시했다. 이 데이터는 어느 지역 유래 개체를 미래 기후 시나리오에 맞춰 우선 보전·이식할지 결정하는 ‘유전자 기반 지도’ 역할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위치(위도·고도)가 아니라 미래의 기후에 맞는 유전자 구성이 복원 전략의 기준으로 떠오른 셈이다.

 

잡종 거머리말, 이산화탄소 흡수의 새 카드…재이식 성공률 50%의 벽 넘을까


해양 생태계에서도 DNA 분석을 전제로 한 실험이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AP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인근 미션베이에서 진행 중인 거머리말(eelgrass) 복원 사업은 기존에 ‘같은 종을 같은 곳에 다시 심는’ 전통적 방식으로는 평균 성공률이 약 50%에 그쳤다. 수온 상승과 수질 변화로 과거 조건에 최적화된 개체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와 솔크 연구소 연구진은 이 한계를 넘기 위해 연안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 Zostera marina와 수심이 깊은 곳에 사는 Zostera pacifica의 자연 잡종을 발견해 집중 분석하고 있다. 이 잡종은 심해 모종에서 물려받은 일주기 시계(circadian clock) 관련 유전자를 통해 저광도 환경에서도 효율적인 광합성이 가능해, 부모 세대가 모두 실패한 환경에서 더 높은 생존·성장률을 보인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진은 향후 수온·수심·광량별 생존률, 탄소흡수량, 어류 산란장 제공 효과 등 정량지표를 종합해 연안 복원의 ‘우선 투입’ 후보로 삼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3~5년이면 진화가 눈에 보인다”…그러나 극한 고온에서는 ‘집단 붕괴’ 확인

 

보전유전체학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진화는 너무 느리다”는 통념을 깨는 데이터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스탠퍼드대 등이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 GrENE는 식물 모델종 애기장대(Arabidopsis thaliana)를 서유럽, 지중해, 레반트, 북미 등 4개 권역, 30개 노외 실험지에 동일 조건으로 심고, 최대 5년에 걸쳐 진화를 추적하는 전례 없는 실험을 수행했다.

 

연구팀은 각 플롯마다 수백 개체의 유전적으로 다양한 집단을 구성한 뒤, 약 7만 개 생존 개체를 전장 유전체 시퀀싱해 약 3년 사이에 나타난 allel(유전자형) 빈도 변화를 분석했다. 버클리대 설명에 따르면, 유전적 다양성이 충분한 집단에서는 3~5년 안에 특정 기후(건조·고온·저온 등)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DNA 변이가 일관되게 쌓이는 패턴이 포착됐다. 이는 “몇 세대 안에 진화적 적응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실측 데이터로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실험은 동시에 ‘적응의 한계선’도 드러냈다. 사이언스 3월 26일자 논문에서 모이세스 엑스포시토-알론소 연구팀은 극단적인 고온 플롯 일부에서, 유전적 다양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allel 빈도의 변동이 방향성을 잃고 요동친 뒤 결국 개체군이 붕괴·멸종하는 사례를 보고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진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를 수 있지만, 극한의 열 스트레스는 개체군 규모를 너무 작게 줄여 버려 ‘진화가 작동할 수 있는 최소 단위’마저 붕괴시키는 진화적 브레이킹 포인트”라고 규정했다. 요약하면, DNA 데이터는 적응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리고 어디서부터는 완전히 무너지는지 ‘임계값’을 수치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유전체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탄소 감축·생태계 전체 설계와의 병행이 관건


그렇다고 해서 DNA가 기후위기의 ‘만능키’는 아니다. AP·U.S.뉴스·Courthouse News 등 복수 매체는 현장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전유전체학이 개별 종의 회복력(resilience)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 종에 의존하는 복잡한 먹이그물·미생물군까지 자동으로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고 경고한다. 또한 레드우드·세쿼이아 유전체 연구에서도 후보 유전자와 형질 사이의 연관성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만, 실제 현장 복원에서 어느 조합이 ‘최적’인지 검증하려면 장기간 필드 트라이얼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명시돼 있다.

 

예산과 인력 문제도 걸림돌이다. AP 보도에 따르면, 레드우드 게놈 분석과 해양 잡종 거머리말 연구 모두에서 “유망한 유전자-형질 연결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이를 대규모 현장 복원에 반영할 수 있을 만큼의 반복 실험과 검증을 수행하기에는 현재 연구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UC 샌타크루즈의 카렌 홀 교수는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보전유전체학은 분명 유용한 도구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는 한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며 “과학계의 DNA 연구가 정책 차원의 탄소 감축과 병행되지 않으면 ‘더 잘 죽지 않는 나무와 풀’을 선별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구 기후위기 전문가는 " DNA는 기후위기 시대 생태계 복원의 ‘정밀 지도’와 ‘속도계’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 지도와 속도계를 활용해 실제로 어떤 숲과 바다를 설계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가 배출을 얼마나 줄일지 여부는 여전히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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