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묘한 충격과 전율을 안겨준 영화가 있었다. 흥행 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수세미를 꽉 쥐어짜면 틈새가 드러나듯 서사의 빈틈도 있었던 작품. 그럼에도 신선했고 제법 재미있게 봤던 영화, 바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콘크리트마켓>은 그 세계관을 확장한 스핀오프 같은 작품이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나름 좋아했던 영화였는데도 이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을 넷플릭스 신작 소개로 보기 전까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요즘은 한국 영화나 시리즈물이 신작으로 올라오면 거의 자동으로 넷플릭스 1위를 찍는 분위기다. 그래서 이제 그 순위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저 다시 봐도 좋을 콘텐츠, 혹은 새로 올라온 한국 영화나 드라마라면 웬만하면 섭렵하는 CHU(Contents Heavy User)일 뿐이다.
오늘따라 서두가 길어졌다. 금요일, 내 생일을 핑계 삼아 칼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가족들과 케이크를 자르고 난 뒤 소파에 몸을 맡겼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무엇을 하든 방해받지 않을 분위기였다.
생일이라는 것이 묘하다. 나이가 들어도 축하를 받으면 기분은 좋다. 한편으로는 이 풍진 세상에 태어나 하루하루 살아가게 만든 날이라는 생각에 괜히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영화가 <콘크리트마켓>이다.
오픈마켓도, 당근마켓도 아니다. 대지진 이후 붕괴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간, 황궁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다.
한 줄 평을 남기자면 이렇다.
‘볼 만할까? 별볼 일 없다. 그래도 한 번쯤 볼 만하다.’
모순 같지만, 이 영화의 느낌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일 것이다.
◆ ‘무질서’ 속에서 생겨나는 ‘질서’
이 세계에서는 화폐가 무의미하다. 코인도, 주식도 아무 의미가 없다. 남는 것은 오직 실물이다.
사람들은 물건과 물건, 노동과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교환 경제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시스템과 거래 질서가 붕괴된다면 인간은 결국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다시 만들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인류의 최초 시장이 물물교환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영화는 꽤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 한 문장은 이 세계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가진 게 없어? 그럼 몸이라도 팔아.”
바로 이 한 문장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런 극단적인 무질서 속에서도 결국 권력 구조와 위계 질서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약육강식의 논리 속에서 누군가는 지배자가 되고, 누군가는 그 아래에 놓인다.
‘회장’이라 불리는 한 인간. 그의 수하들. 그에 맞서는 약자들. 그리고 복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아니, 살아지게 된다. <콘크리트마켓>이 보여주는 세계는 결국 그런 인간의 이야기다.
◆ ‘…라면(if)’이라는 명제
“떼돈을 번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갑부가 된다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인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if’가 존재한다.
가정법은 끝이 없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가정은 인간이 미래를 상상하고 대비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사고 도구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곧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 돈 들어갈 일은 많아지고 건강은 서서히 약해지며 인간관계는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불쑥 나타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대비하려 한다. 물론 대비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비하려고 시도한 사람과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의 결말은 종종 정반대로 갈라진다.
이는 코칭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치들은 종종 가정법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장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하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정 우산이 없다면, ‘양산’이라도 말이다.
P.S: 오랜만에 만난 이 세계관은 분명 신선했다. 다만 중반부로 갈수록 서사가 다소 허술해지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방향을 잃는 듯한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보고 나면 묘하게 나쁘지 않았다는 느낌이 남는다. 큰 기대 없이 본다면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른다.
다만 전편의 이병헌처럼 강렬한 중심 캐릭터가 한명쯤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여주인공 역시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면 좋았을 듯.
*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소재·화학, IT, 패션 등 다양한 업계를 거쳐온 홍보전문가입니다. 인증코치이기도 한 그는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