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외적인 부분을 떠나,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만 놓고 볼 때 유독 좋아했던, 아니 강렬하게 애정했던 두 감독이 있다.
홍상수와 김기덕.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마니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작품관과 연출 방식,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까지도 즐겼을 뿐이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 개봉관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놓치고 있었다. (*故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은 가끔 다시 보곤 한다.)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전, 큰아이 학원 라이딩을 앞둔 시간보다도 일찍 눈이 떠졌다. 그 틈을 타 간만에 넷플릭스가 아닌 쿠팡플레이를 뒤적였다.
고요한 일요일 새벽은 QT를 하기에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콘텐츠 몰입의 시간이기도 하다.
웬만한 작품은 이미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홍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묘한 충만함을 안은 채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시절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만 ‘역시 홍상수지~’라고 단정하기엔 망설여졌다. 특유의 현실을 비트는 위트와 대사에서 터져 나오는 실소는 다소 옅었다. 대신 시나리오인지 독백인지 경계가 모호한 권해효의 연기, 그리고 그를 둘러싼 여배우들의 존재감은 여전히 흥미로웠다.
독립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홍 스타일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놓치기 아까운 수작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볼 만한 범작이다.
◆ 한때 잘나가지 않았던 이 있으랴
잘나가는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딸의 취업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회적 지위와 작품에 대한 인지도, 그리고 그를 찾는 주변 인물들까지…전형적인 예술가의 초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래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는 결국 옥탑방에 머무르며 술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어딘가 방치된 삶으로 기울어간다.
보는 내내 영화 제목 ‘탑’의 의미를 계속 곱씹었다. 일부러 평론이나 다른 리뷰는 찾아보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온전히 내가 느낀 감정만으로 해석하고 기록하는 것! 이것이 나의 리뷰 방식이기 때문.
‘절정의 인기까지는 아니지만, 상위 클래스로 비쳐지는 감독. 그래서 탑(TOP)일까.’
‘혹은 라푼젤처럼 탑에 갇혀 현실을 외면하는 듯 또 외면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존재이기에 탑(TOWER)일까.’
그 두 가지 해석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신작도 아니고 감독의 의도를 확인한 것도 아니지만 내게 <탑>은 그렇게 읽혔다.
◆ 적당한 호응, 눈맞춤, 그리고 맞장구
독백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화는 본질적으로 상호작용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맞추고, 적절한 타이밍에 반응하는 것. 이런 맞장구가 빠지면 대화는 곧 독백으로 전락하고, 관계는 단절되기 십상이다.
코치로서의 관점에서 보면 ‘LENS’라는 개념이 있다. 코칭 대화의 기본이다.
상대에게 몸을 기울이고(LEAN), 눈을 맞추며(EYE), 고개를 끄덕이고(NODDING), 공감의 언어로 반응하는 것(SAYING).
이 영화 속 감독은 무능해 보이고 때로는 미운 캐릭터일 수 있다. 그러나 이 ‘LENS’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그래서일까. 딸과는 5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다. 한때 가까웠다가 멀어진 건물주 역시 그를 쉽게 밀어내지 못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네 가지를 동시에,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화를 나눌 때, 한 번쯤 의식적으로 실천해 보시길 권하며 글을 마친다… (to be continued)
P.S. 가끔 홍상수 감독의 흑백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풀잎들>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왜 흑백인가”를 묻기보다 ‘그래서 더 좋다’고 느껴진다. 흑백이 주는 울림은 때로 컬러의 풍성함을 넘어선다.
*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소재·화학, IT, 패션 등 다양한 업계를 거쳐온 홍보전문가입니다. 인증코치이기도 한 그는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