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이 한계까지 소진된 2026년 3월이다. 단순히 업무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직에 가까운 재취업 이후 반년. 긴장으로 버텨온 시간의 대가는 이제 서서히 몸과 마음의 균열로 드러나는 듯하다.
사람에게 여유가 사라지면 그 존재는 어딘가 고장 난 채 살아가는 느낌이 된다. 숨은 쉬고 있지만, 온전히 살아 있는 감각은 희미해진다. 문득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 ‘미생(未生)’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미생이지.
요즘의 나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 없이 하루를 통과하고, 그저 버티듯 살아낸다.
어쩌면 이런 고백이 우울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는 아니다. 그저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이다.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그 나이. 순응과 수용이 삶의 방식이 되는 시기다. 그렇게 쉰 살에 다다랐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와의 만남은 작은 행운이었다. 단 한 회를 봤을 뿐인데, 가슴은 따뜻해지고 머리는 맑아지며 감정은 잔잔하게 정리됐다.
우연히 접한 작품이었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 ‘테라피(therapy)’에 가까웠다.
◆ 요즘 아이돌은, 정말 ‘idol’이다
슬퍼야 할 장면이 오히려 아름답고, 안타까워야 할 상황이 묘하게 부럽게 느껴진다.
두 남녀 주인공은 나를 잠시 학창 시절로 데려갔다.
목동시립도서관 입장료 100원. 그 돈을 내고 들어가 앉았던 나만의 자리. 공부하다가 옥상 휴게실에서 마셨던 200원짜리 탐스. 식당의 우동과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가격은 이제 흐릿하다.
넉넉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하셨지만,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친구들을 설득해 그들의 문제집을 대신 풀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공부가 좋았다. 아니, 그것밖에 할 줄 몰랐고 그것이 내 길이라고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이 내가 꿈꾸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단 한 회만으로도 그 시절의 감정과 공기를 선명하게 불러냈다. 이런 몰입은 오랜만이다.
그리고 새삼 느낀다. 요즘 아이돌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연기, 표현, 감정 전달까지 모두 갖춘 완성형 아티스트에 가깝다. 갓세븐, 아이즈원 출신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다. 그야말로 두 손을 들게 만드는 수준이다.
◆ 예고편만으로 판단하지 말자
사실 나는 멜로, 특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 역시 소개글과 몇 장의 스틸컷만 보고 그럴 것이라 단정지었다.
반백 년을 살다 보니, 단편적인 정보로 결론을 내려버리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코칭을 배우고, 코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종종 성급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그러지 말자, 인정하자, 상대의 입장에서 보자.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
이 단순한 문장들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실천일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남은 회차가 기다려졌다. 이번 주말에는 몰아볼 생각이다. 특별한 이유도, 거창한 배경도 없지만 ‘계속 봐도 되겠다’는 감각을 준 작품. 그 직관 하나로도 충분하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메마른 순간이라면 ‘샤이닝’에 한 번쯤 기대보라고 권하고 싶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위로를 건네는 이거 물건이다…(to be continued)
P.S: 남자 주인공을 당연히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연기돌’이었다. 이유없이 생각난 소설, 황순원의 ‘소나기’를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JTBC 작품인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넷플릭스·디즈니+·쿠팡플레이부터 뒤진다. 결국 거기 중 하나에 있어야 본다. 콘텐츠 소비 패턴이 변했다. 지금은 완전히 OTT 시대다.
* 칼럼니스트 ‘올림’은 건설,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소재·화학, IT, 패션 등 다양한 업계를 거쳐온 홍보전문가입니다. 인증코치이기도 한 그는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미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