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단 1화만 보고 감상을 남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굳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이유는 잠을 설치다 새벽에 깨면서 느꼈던 그 신선함과 몽롱함의 순간을 온전히 붙잡고 싶어서다.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화제를 몰고 온 작품. 그 정도의 기대감은 알고 있었다. 한때 영화와 방송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필자지만 <또오해영>은 놓쳤다. 대신 업계를 떠난 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작가님의 세계를 뒤늦게 만났다. 특히 <나의 아저씨>는 각본집까지 구매했을 정도로, 그녀가 빚어내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인물의 화법에 깊이 매료됐다. 보통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맞아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는 달랐다. 먹을 것이 넘쳤다. 아니 흘러넘쳤다. 사전 정보를 최소화한 채 작품에 몰입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덮어두고 오롯이 느끼는 방식으로 1화에 빠져들었다. ‘구교환’, 갈수록 압도적이다.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올해 초로 기억한다. 투자·배급사 홍보팀장과 영화관장을 지내다 퇴직한 형이 본인이 몸담았던 회사에서 선보이는 영화 <하트맨> 시사회에 초대받았다는 얘기였다. “형, 권상우 주연이라며. 그럼 <히트맨> 시리즈겠지. 무슨 <하트맨>이야?” 형의 답은 단순했다. “그런가? (내가 뭐 그렇지…웃음) 암튼 보고 올게.” 결론적으로 형이 맞았다. 주연이 권 배우인 건 맞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흥행작 <히트맨>과는 스토리도, 캐릭터도, 결도 전혀 다른 완전히 별개의 작품이었다. 제목 하나로 오해가 만들어낸 작은 해프닝이었다. 순간 서로 빵 터졌다. 그렇게 둘의 에피소드를 뒤로 한 채 시간이 흘렀다. 여느 때처럼 지친 몸으로 맞은 금요일 귀가길, 넷플릭스를 훑다 보니 이 작품이 신작으로 올라와 있었다. 묘한 인연이다. 결국 보게 되는 영화는 이렇게 돌아온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영화는 착하다.” 순수한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읽힌다. 아역 배우의 연기, 그리고 권상우 특유의 표정 연기에서 오는 소소한 온기가 기억에 남는다. 다만 솔직한 감상은 다르다. ‘아직도 이런 방식의 영화가 만들어지는구나.’ ‘폭력
<살목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저수지 사진 한 장, 그리고 공포영화라는 정보 하나만으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극장을 찾았다. 콘텐츠 헤비유저를 자처하지만, 의외로 나는 작품을 백지 상태에서 마주하는 편이다.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것이 주는 날것의 감각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이상하게도 관람 전, 평점과 반응이 궁금했다. 독립영화의 결에 한국형 공포. 잘못 고르면 낭패일 수 있다는 직감 때문이었을까. 네** 평점을 눌렀다. 9.0을 넘는 수치, 그리고 나쁘지 않아 보이는 댓글들. 저녁 약속이 밀린 타이밍, 머리를 비우고 싶었던 마음까지 겹쳤다. 그렇게 만난 작품이 바로 <살목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 하다가 아… 하더니 헐…” 그리고 끝. 포털 사이트 평점에 당한 걸까. 댓글에 속은 걸까. 잠시 ‘알바부대’를 의심하는 순간까지 갔다. 물론, 시대의 코드를 내가 놓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쉽사리 납득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까다로운 관객만은 아니다. <왕사남>보다 <휴민트>를 더 재미있게 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러니 이 평가는 어디까지나 나의 한계일
이제 “이 드라마가 어느 방송사 작품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는 듯하다. 콘텐츠 소비의 중심이 완전히 OTT로 이동한 지금, 플랫폼은 중요하지만 출처는 더 이상 고민의 여지가 아닌 것 같다. 최근 읽은 모 석간신문 기사에서 우연히 접한 작품 하나가 머릿속에 잔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 잔상이 결국 시청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만난 작품이 <클라이맥스>다. 어느 채널인지 따질 필요도 없이, 이미 구독 중인 OTT를 하나씩 훑어봤다. “어? 없나?” 하고 체념하려던 순간, 디즈니플러스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찾았다.’ 유레카까지는 아니지만, 콘텐츠를 발견했을 때의 작은 쾌감은 분명 존재한다. 아마도 스스로를 ‘콘텐츠 헤비 유저’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배우 조합이었다. 주지훈과 하지원.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형성되는 배우들이다. 각자의 필모에서 이미 검증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맡은 역할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유형이다. 하지원 배우와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영화 홍보 일을 하던 시절, <해운대>와 <7광구>를 통해 함께 현장을 뛰었던 기억이다. 한 작품은 대박,
한때 영화 홍보를 업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경쟁사 홍보팀 막내였던 한 친구가 있었다. 잠시 소식을 끊고 지내는 사이, 그는 결국 꿈꾸던 영화감독이 되어 있었다. 입봉작은 <청년경찰>. 이름 석 자가 또렷이 떠오른다. 김주환. 며칠 전, 회사 후배를 통해 그와 다시 연결됐다. 뜻밖의 인연이었다. 수년 만에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았고,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넷플릭스에 막 공개된 작품이 있었다. 바로 그 친구 연출의 <사냥개들2> 시즌1을 인상 깊게 본 터라 시즌2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한 회당 한 시간 남짓, 총 7화가 한 번에 공개됐다. 금요일 회식의 숙취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토요일이라는 짧지만 소중한 휴식의 시간을 소파에 맡긴 채 정주행에 들어갔다. 애정하는 후배가 연출한 작품이기에 독설을 아끼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 이렇게까지?’ ‘그래서 이 다음은?’ 이 질문의 반복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결국 작품의 뼈대다. 이 작품은 그 균형을 놓친 채 전개되는 인상이 짙다. 전반적으로 서사는 거칠고, 감정의 축적은 충분하지 않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지점도, 반전의 쾌감도 선명하게 남지 않는
어릴 적 이런 형태의 주거 공간을 자주 보곤 했다. ‘빌라, 멘숀, 빌리지…’ 직접 살아본 적은 없지만 이와 같은 이름들이 묘하게 익숙하다. 예고편과 스틸컷을 훑는 순간, 객관적 지표와는 무관하게 심박이 먼저 반응했다.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주말의 끝에서 선택한 작품이 티빙의 <원정빌라>다. 톱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연출이나 서사가 압도적일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평점이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소재가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끌렸다. ‘현대판 이웃사촌 비극 스릴러인가.’ 평소 반전과 긴장감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몰입했다. OTT 작품답게 러닝타임도 부담스럽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쁘지 않았다. 시간을 보내기에는 무난하다. 다만 반전의 결이 비교적 예상 가능한 범주에 머물렀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갈등은 전채였고, 본편은 사이비였다 층간소음, 주차 문제, 사소한 시비. 공동주택에서 흔히 벌어지는 갈등이 주요 서사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작품은 그 틀을 비껴간다. 오히려 그 모든 갈등은 본편으로 들어가기 위한 전채에 가깝다. 실제 중심축은 ‘사이비 종교’다. 이는 ‘나는 신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PD
‘넷플의 법칙’. 머피의 법칙처럼, 이제는 이것도 하나의 법칙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수십, 아니 수백 편의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막상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건질 만한 작품 하나 찾기 어렵다. 심지어 신작마저 이미 본 작품일 때가 있다. 선택지는 넘치는데, 선택할 것은 없는 아이러니. 나는 그 상황을 ‘넷플의 법칙’이라 부른다. 이럴 때는 미련없이 ‘디즈니플러스’나 ‘쿠팡플레이’로 옮긴다. 그래도 없다면 ‘티빙’까지. 플랫폼을 옮겨 다니는 이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소비 패턴이 된 시대인 듯 하다. 주말이었다. 나른하게 흘려보내고 싶었지만 현실은 평일처럼 분주했다.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사실 그 이유를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지만, 애써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 정확힌 마인드 콘트롤 상태) 그때 티빙에서 이 영화를 만났다. <실제상황>. 이전에 언급한 적 있지만, 필자는 작품 그 자체로 놓고 볼 때 홍상수와 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흐름, 예측을 비껴가는 장면 구성,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흔드는 연출. 그 불균질
연달아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마주한 날이다. 말 그대로 ‘땡 잡은 날’이다. 키득거리며,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심야 극장을 찾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나도 쉰을 바라본다. 넷플릭스가 지겨우면 디즈니플러스를 켰고, 그것마저 식상하면 쿠팡플레이에 접속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 플랫폼에 독립영화가 많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솔직히 몰랐다. ㅜㅜ) 그의 작품을 거의 다 봤다고 자부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바로 ‘술, 담배, 음식’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일상의 결을 직조해왔다. 초창기 작품들은 작가적 색채가 강하면서도 일정한 흥행성을 동반한 상업영화의 성격을 지녔다고 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짜 ‘독립’을 택한 듯한 행보로 이어졌고, 지금은 완연한 독립영화의 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팬이지만, 초창기 특유의 농도 짙은 ‘맛’이 조금은 옅어진 듯해 아쉬움도 커진다. 그렇게 다시 만난 작품이 바로 <수유천>이다. (*필모그래피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제목이 있었던가 싶다.) 늘 그렇듯이 특별한 사건은 없다. 권해효가 등장하고, 김민희도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외적인 부분을 떠나, 순수하게 작품 자체로만 놓고 볼 때 유독 좋아했던, 아니 강렬하게 애정했던 두 감독이 있다. 홍상수와 김기덕.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마니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작품관과 연출 방식,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까지도 즐겼을 뿐이다.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 개봉관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놓치고 있었다. (*故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은 가끔 다시 보곤 한다.)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전, 큰아이 학원 라이딩을 앞둔 시간보다도 일찍 눈이 떠졌다. 그 틈을 타 간만에 넷플릭스가 아닌 쿠팡플레이를 뒤적였다. 고요한 일요일 새벽은 QT를 하기에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콘텐츠 몰입의 시간이기도 하다. 웬만한 작품은 이미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홍 감독의 비교적 최근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묘한 충만함을 안은 채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시절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만 ‘역시 홍상수지~’라고 단정하기엔 망설여졌다. 특유의 현실을 비트는 위트와 대사에서 터져 나오는 실소는 다소 옅었다. 대신 시나리오인지 독백인지 경계가 모호한
<신명> 개봉 당시 김규리 배우의 열연, 그리고 대통령 내외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픽션으로 기억한다. 아니나 다를까 넷플릭스 신작으로 올라오면 거의 1위를 하는 듯하다. 여느 때처럼 심신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잘 버텨낸 한 주를 마무리하며 금요일 퇴근 후 이 영화를 꺼내 들었다. 접하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명’이겠지 싶었다. 돌이켜보니 그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지는 못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신명’은 세상의 이치를 밝히 아는 영적인 존재들, 즉 하늘과 땅의 모든 신령하고 깨어 있는 존재를 뜻한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천지신명께 빈다’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한마디로 <신명>은 그럭저럭 볼 만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이미 탄핵된 전 대통령 부부의 행적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됐겠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이 남는다. 어쨌든 그들은 그것이 ‘맞다’고 믿었을 것이고,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