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문균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5년 6월 2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 공립학교에서 진행된 ‘LGBTQ+ 동화 수업’에 대해, 학부모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자녀의 수업 참여를 거부(옵트아웃)할 수 있도록 한 판결을 내렸다.
보수 6, 진보 3의 이념 대결 구도에서 내려진 이번 판결은 미국 공교육 현장과 종교자유, 소수자 인권 논쟁의 중대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판결 배경과 의미…다양성 교육 강화 vs 종교적 신념 보호
몽고메리카운티는 미국 내에서도 종교·인종적 다양성이 높은 지역으로, 2022년부터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Pre-K~5학년) 영어 교과서에 ‘Uncle Bobby’s Wedding’, ‘Born Ready’, ‘Pride Puppy’ 등 LGBTQ+ 주제 동화책을 포함시켰다.
도입 초기에는 학부모에게 사전 통지 및 수업 옵트아웃을 허용했으나, 학생 결석 증가와 행정적 부담, 소수 학생 낙인 우려로 2023~2024학년도부터 정책을 철회했다.
이에 무슬림, 기독교, 유대교, 우크라이나정교회 등 다양한 종교적 배경의 학부모들이 “자녀가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가치관(동성결혼·성전환 등)에 노출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다수의견 “종교적 양육권, 국가가 침해할 수 없다”
다수의견을 쓴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국가는 부모의 종교적 양육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책을 강제할 수 없다”며, 학교 측의 옵트아웃 거부가 헌법 제1조(First Amendment) ‘종교 자유의 보장’(Free Exercise Clause)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알리토는 판결문에서 “LGBTQ+ 동화책은 명백한 가치판단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어린 학생들에게 특정 가치관을 ‘축하’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부모가 자녀의 종교적 양육을 지도할 권리는 오랜 헌법적 전통”이라며, 학교 측이 성교육 등 다른 과목에서는 이미 옵트아웃을 허용하고 있음을 들어,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예외 적용이 불합리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로 몽고메리카운티 교육청은 해당 동화책이 수업에 사용될 때마다 학부모에게 사전 통지하고, 희망하는 학생은 수업에서 제외해야 한다.
진보진영·교육계 반발…“공교육 근간 흔드는 판결”
소수의견을 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등 진보 성향 3인은 “공립학교의 역할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을 접하게 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며, “이번 판결은 일부 학부모가 공교육 커리큘럼 전체를 사실상 거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우려했다.
전국교사협회(NEA)는 “학생들이 자신을 교과서에서 발견할 권리를 빼앗는 결정”이라며, “교사들은 자기검열과 책·수업 삭제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적 종교단체인 인터페이스얼라이언스(Interfaith Alliance)는 “LGBTQ+ 존재 자체를 배우는 것만으로 종교 자유 침해라고 본다면, 타종교·타문화 교육도 모두 거부될 수 있다”며,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훼손하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보수진영·종교계 “부모권·종교자유의 승리”
반면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와 종교계는 “정치적·이념적 교육 강요에 맞선 부모권·종교자유의 중대한 승리”라며 환영했다.
미국가톨릭연합(CatholicVote)은 “국가가 부모보다 자녀를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을 대법원이 단호히 거부했다”고 논평했다.
일부 보수단체는 “이번 판결로 각종 커리큘럼에 대한 종교적 옵트아웃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판결 후폭풍, 공교육 현장 ‘혼돈’…LGBTQ+ 학생 소외 우려
이번 판결은 단순히 LGBTQ+ 동화책 수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향후 진화론, 인종·다문화 교육, 성평등 등 다양한 교과목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옵트아웃 요구가 줄을 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공교육의 통합성과 포용성이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LGBTQ+ 학생과 가족들은 “존재 자체가 교과서에서 지워질 위험”을 호소하고 있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소수자 학생의 안전과 소속감, 학교의 포용적 환경 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종교자유 vs 포용적 공교육, 미국 사회의 ‘뉴노멀’ 논쟁
Mahmoud v. Taylor 판결은 미국 사회가 ‘종교적 자유’와 ‘포용적 공교육’이라는 두 핵심 가치의 충돌 속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공립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 종교계와 시민단체, 학부모와 교사 모두가 각자의 가치와 신념을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미국 공교육의 미래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한편 이번 판결은 ‘Mahmoud v. Taylor’라 불린다. 이 명칭은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의 전통적인 명명 방식에 따라, 소송의 대표 원고(주로 첫 번째로 기재된 원고)와 대표 피고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즉 ‘Mahmoud 등 학부모 대 Taylor 교육감(및 교육청)’의 형식으로, 이 사건의 주체와 쟁점을 명확히 나타낸다.
이 사건의 원고는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 공립학교의 LGBTQ+ 동화책 수업에 대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자녀의 수업 참여를 거부할 권리를 주장한 학부모들이며, 그 중 대표 원고가 ‘Mahmoud’(아메르 마흐무드 등)이다.
피고는 몽고메리카운티 교육청을 대표하는 교육감(슈퍼인텐던트)으로, 당시 교육감의 성이 ‘Taylor’였기 때문에 ‘Mahmoud v. Taylor’라는 명칭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