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강 작가의 인기는 2025년 상반기에도 여전히 뜨거웠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올해 상반기를 대표하는 책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노벨문학상 수상 효과는 한강의 작품을 넘어 소설 분야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지난해부터 이어진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등 정치적 이슈는 독서에 대한 관심을 위축시키기도 했지만 정치적 불안이 오히려 정치 분야 도서의 성장을 견인했다.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독자들이 늘어나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올해 상반기를 달궜던 사회적 이슈와 도서 판매 데이터를 종합하여 ‘2025 도서판매 동향 및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트렌드’를 소개한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차지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에도 계속해서 그의 작품이 조명을 받으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다른 작품들도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상위권에 올랐다. 무엇보다 한국소설은 한강의 작품을 포함해 올해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 10위 내 무려 다섯 작품이 오를 만큼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은 분야였다.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 10위에 오른 도서들의 연령대별 구매 독자를 살펴보면, 40대 독자가 27.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젊은 독자층의 구매 비중 상승이 돋보였다. 10대 독자는 지난해 상반기 0.6%에서 올해 2.1%로, 20대 독자는 14.0%에서 20.4%로 늘었다.
특히 양귀자의 <모순>과 정대건의 <급류>는 20대 독자 구매 비중이 각각 40.2%, 40.3%로 나타나며 젊은 독자층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소설' 후광효과 톡톡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 내 분야별 비중을 살펴보면 소설 분야는 지난해 14종에서 올해 23종으로 증가하며, 100위권 내에서 가장 많은 작품 수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각 15종씩, 100위내에 포함되었던 경제경영과 자기계발 분야는 올해 상반기엔 각각 11종, 9종만이 포함됐으며, 종합 10위권 내에는 이 두 분야의 도서가 한 권도 포함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소설 분야는 전년 대비 28.1%의 신장률을 기록하며 정치사회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신장세를 보였다. 상반기 종합 1위에 오른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채식주의자>는 종합 5위, <작별하지 않는다>는 종합 7위에 올랐으며, 4월 출간된 신작 <빛과 실>도 종합 17위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갔다.
한강의 작품에 대한 인기로 인해 한국소설 분야가 전년 대비 58.2%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하며 소설 분야의 신장세를 이끌었다. 그의 작품을 제외하더라도 소설 분야의 신장률은 13.9%, 한국소설 분야는 21.9%로 나타나 큰 폭의 신장세를 보였다. 이는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개인의 성취에 그치지 않고, 한국소설 전반에 대한 관심과 시장 확대를 견인했음을 알 수 있다.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그 개와 혁명> 등 국내 문학상 수상집도 20~30대 독자층에서 인기를 얻었고,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 등 역주행으로 인기를 얻은 두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파란만장 한국사회, 책으로 보는 정치 팬덤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등 불안한 정치 상황이 서점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듯 정치관련 도서의 출간이 줄을 이었고, 주요 정치인들 역시 지지층 결집을 위해 잇따라 책을 출간했다. 이에 정치 분야 판매는 전년 대비 40.8% 신장했고, 그 중 정치/외교 관련 분야가 전년 대비 113.9%나 신장할 정도로 독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베스트셀러 순위가 정치인 팬덤의 움직임과 인기를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헌법 키워드 도서의 인기로 법학 분야가 지난해 상반기 대비 34.6% 신장했다. 주로 법률 전공자나 종사자 대상의 교재가 많았던 분야인데 헌법 필사, 선고결정문 등 법에 관심이 없던 일반 독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책이 줄이어 출간되며 판매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2025년 상반기 종합 2위를 차지한 이재명의 <결국 국민이 합니다>처럼 올해는 ‘국민’과 ‘법’을 키워드로 하는 도서가 사랑을 받은 것이 눈에 띄었다. 대선을 치르는 시기에는 정치사회 분야 도서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경기 불확실성 증가로 인해 투자 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되면서 경제경영 분야는 전년 대비 -15.4% 판매가 감소했다. 재테크/금융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 주요했다. 자기계발 분야 도서도 전년 대비 -20.1% 판매 하락세를 보였다. 개인의 처세나 능력계발보다는 국내 정치 흐름에 이목이 쏠린 영향으로 분석된다.

텍스트힙 열풍으로 제철 맞은 시집&세계문학전집
콘텐츠 과잉 시대 속에서 텍스트힙 트렌드는 깊이와 여백을 찾으려는 젊은 세대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 책이라는 아날로그 매체를 다시 조명하게 만들었고, 그 중에서도 전통적인 문학 장르인 시집과 세계문학전집이 인기의 중심에 섰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했던 젊은 세대에게 오히려 ‘힙’한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그 결과 시 분야의 판매는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27% 상승했다. 기존에도 20대 독자가 주요 구매층이었지만, 텍스트힙 트렌드에 반응한 20대 독자층이 더 유입되며 구매 비중은 30.8%로 확대됐다.
시 분야 베스트셀러 30위 내에 각각 4종씩 순위에 오른 나태주, 류시화와 같이 기성 시인의 시집은 물론, 각각 2종씩 순위에 오른 고선경, 박준 등 젊은 시인들의 작품도 20대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토마토 컵라면>, <마침내 멸망하는 여름>과 같이 SNS에서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에 오른 자가출판 시집도 눈에 띄었다.
세계문학전집 역시 주목할만한 신장세를 보였다. 문학적 해석에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있던 장르였으나, 클래식한 무게감이 20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전년 대비 25.8% 판매가 상승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세계문학전집 도서가 외국소설 분야 30위 내 6종에 불과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무려 12종이 순위에 올랐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데미안>이 나란히 외국소설 분야 3, 4위에 올랐고, 조지 오웰도 <1984>, <동물농장>등 2종의 도서가 순위에 들었다.
마음챙김을 향한 독서, 종교&필사의 재발견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심리적 위안을 추구하려는 독서 경향은 종교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싯다르타', '부처', '석가모니' 등 불교적 상징이 제목에 포함된 도서들이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불교 관련 키워드 도서는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99.2%라는 놀랄만한 신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사회적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서 마음챙김과 자기탐색을 추구하는 Z세대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종교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하는 심리는 필사 도서의 인기로 연결됐다. 필사 도서는 2024년 29종에서 2025년 102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판매량도 135.8% 신장했다. 이는 감정의 흐름을 다잡고 일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가 새롭게 도서 소비에 반영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이 종합 21위,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가 종합 46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노트>, <헌법 필사>, <아이에게 들려주는 부모의 예쁜 말 필사 노트> 등 다양한 분야의 필사 도서가 출간됐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