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에게 ‘금 거북선’과 ‘3377’ 패치가 붙은 공군 점퍼를 건네며, 외교 선물이 다시 한 번 외교·안보 메시지의 핵심 도구로 부상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다시 떠오른 ‘금빛 거북선’
청와대는 “세계 최강 수준의 한국 조선 산업과 방산 협력 강화를 기원하는 상징”이라고 설명했고, 항공 점퍼의 숫자 3377에는 1949년 3월 3일 수교 이후 정확히 77년째 되는 날 양 정상이 만난 시점을 각인했다. 표면적으로는 우호의 상징이지만, 실제로는 ‘조선·방산·안보 협력’이라는 복합 메시지를 압축한 셈이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역대 대통령들의 해외 순방 선물 중 의미와 스토리, 그리고 ‘센스’가 돋보였던 사례를 통계와 구체적 사례로 짚어보면, 선물이 곧 외교 전략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숫자로 보는 대통령 선물 외교
행정안전부와 대통령기록관 집계를 보면, 역대 한국 대통령이 해외 정상·외교사절로부터 받은 선물은 약 1만6000점, 이 중 4071건이 정리·공개돼 있다. 청남대 대통령역사문화관(대통령관)에 전시된 선물만 52종128점으로, 박정희부터 노무현까지 각국 정상들이 보낸 의장도, 장식용 식기, 크리스털 등 상징 선물이 촘촘히 쌓여 있다.
선물의 유형은 대체로 3가지 축으로 나뉜다. ▲자국 역사·문화 상징물(왕관, 도자기, 칼, 전통 공예품 등) ▲상대국 ‘취향·관심사’를 겨냥한 맞춤형 선물(스포츠, 취미, 고향 연고 등) ▲현안 메시지를 담은 전략형 선물(무역·안보·에너지·기술협력 등 이슈를 은유한 상징물) 등이다.
대통령기록관이 공개한 선물 목록을 종합하면, 한국 대통령이 받은·준 선물 중 상당수는 “기록으로 남는 외교 문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향후 회담 의미를 해석하는 2차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취향 저격형 선물: ‘태권도복’에서 ‘3377 항공점퍼’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3377’ 항공 점퍼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어린 시절 조종사를 꿈꿨고 영화 ‘탑건’의 팬이라는 점을 고려해 준비된 맞춤형 선물이다. 한국 공군 조종사 점퍼에 수교일(3월 3일)과 77주년을 결합해 숫자 코드로 외교 스토리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취향 저격형’ 선물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태권도복과 검은 띠를 선물했다.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 4년간 태권도를 수련해 4~5급 실력을 갖췄다는 점을 감안해, 도복과 띠, 상·하의에 영문 성명을 새기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넣어 ‘개인 맞춤형·동맹 상징형’ 선물을 완성했다.
국제적 차원에서 보면, 이런 취향형 선물은 미국 대통령 선물 등록부에서도 두드러진다. 바락 오바마는 시진핑 주석에게서 서명 농구공, 멕시코 대통령에게서 구슬로 장식한 코카콜라 병, 브라질 대통령에게서 부부 초상 자수 등을 받았는데, 모두 취미·대중문화·가족 이미지를 건드리는 방식이었다.
역사·문화 상징형: 거북선, 금관, 바둑판, 그리고 ‘달 착륙 패’
이재명 대통령의 ‘금 거북선’은 한국 조선업과 방산을 한 번에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과 군사적 상징(거북선)을 결합해 필리핀과의 방산 협력 확대를 암시하는 구조다.
이전에는 문화·역사를 전면에 내세운 선물들이 특히 눈에 띈다.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신라 금관 복제품과 1000g 분량의 순금이 들어간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는데, 언론은 당시 시가 기준 약 1억8700만원 규모의 금이 포함된 것으로 전했다.
시진핑 주석에게는 최고급 희귀목재로 만든 바둑판과 나전칠기 쟁반을 선물했다. 같은 재질의 바둑판이 온라인에서 1세트당 약 500만원에 거래된다는 점이 전해지며, ‘전략 게임(바둑)’과 ‘한중 전략 관계’를 겹쳐 해석하는 분석이 나왔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바둑알과 고급 홍삼(‘천삼’)을 선물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신영복 교수의 글씨 ‘통(通)’을 건넸다. 시 주석은 답례로 옥 바둑판과 바둑알, 말 그림을 전달하며 ‘소통·전략·동반자’ 메시지를 교환했다.
역으로 한국 대통령이 받은 사례도 상징성이 크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세계 최초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인들의 사인이 담긴 기념패를 선물하며, 한미 동맹을 ‘우주 시대 동맹’으로 격상시키는 상징을 남겼다.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선물한 ‘꽃잎 무늬 화채그릇 세트’ 역시, 한·러 기본관계조약 체결 시점에 맞춰 교환된 상징 선물로 기록돼 있다.
‘센스 폭발’ 혹은 ‘황당한’ 세계 정상들의 선물
세계 정상들 사이에서는 의외의 선물이 회자되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 선물 기록과 해외 언론 분석을 보면, ‘가장 기이한 선물’ 목록에 자주 등장하는 사례들이 있다.
앤드루 잭슨 미국 대통령은 1835년 한 낙농업자로부터 1,400파운드(약 635kg)짜리 거대 치즈를 선물받았다. 치즈는 2년간 백악관에 보관되다가 일반에 개방된 행사에서 2시간 만에 동나고, 냄새는 상당 기간 남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의 외교에서 판다 두 마리를 선물로 받은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파키스탄에서는 확대경과 함께 ‘쌀 두 톨’을 선물받았다. 각각의 쌀에 닉슨의 초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외교 선물의 ‘극단적 수공예’ 사례로 꼽힌다.
조지 W. 부시는 네덜란드 총리에게서 스케이트 세트(보호대 포함)를, 탄자니아 대통령에게서 박제 사자와 표범을 받는 등, 스포츠와 사냥 이미지를 결합한 선물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이들 사례는 비용보다 ‘밈(meme)화’ 가능성과 화제성을 중시하는 현대 외교 선물 트렌드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이자 참고 모델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선물은 회담 직후의 사진 한 장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대통령기록관·역사문화관·해외 언론 보도를 통해 수십 년 뒤까지 분석 대상이 되는 ‘외교 데이터’다. 이재명 대통령의 금 거북선과 3377 점퍼는 조선·방산·공군·동맹·수교 77주년까지 겹겹이 메시지를 쌓은 구조로, 향후 필리핀과의 방산·안보 협력 진전을 평가할 때 다시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정책 및 외교 전문가는 "향후 과제는 선물을 단순한 ‘의전 비용’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과 산업정책, 문화 수출 전략까지 연동된 정교한 포트폴리오로 설계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대통령 선물 외교의 다음 단계는, K-콘텐츠·K-방산·K-테크를 어떻게 하나의 상징물에 집약해 세계 정상들의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