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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체르노빌 사고 40주년, 금지구역에서 야생동물 번성하다…‘죽음의 땅’이 '야생의 낙원'으로 변신한 '역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우크라이나가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사고 40주년을 맞는 올해, 인간 출입이 통제된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은 유럽 최대급 ‘의도치 않은 자연보호구역’으로 변신했다. 방사능 오염으로 여전히 상시 거주가 금지된 이 땅에서, 늑대·불곰·멧돼지·프르제발스키 야생마 등 대형 포유류가 사고 이전 수준을 넘어서는 개체군을 형성하며 번성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인간이 물러나자 돌아온 대형 포식자들


체르노빌 원전 4호기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직후, 주변 20만㎢가 넘는 지역이 오염 판정을 받았고, 원전 반경 30㎞는 강제 소개와 함께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였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걸쳐 약 4,200~4,500㎢에 이르는 이 구역은 사실상 ‘인간 부재 구역’으로 남아 있다.

 

이 지역의 야생동물 변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체르노빌 인근 4,200㎢ 조사 구역에서 말코손바닥사슴·멧돼지·늑대 등 대형 포유류 개체수가 사고 이후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고, 늑대는 인근 국립공원보다 7배 많은 밀도로 관찰됐다. 영국 BBC는 방사선량이 상당한 ‘붉은 숲’ 일대에서조차 늑대 밀도가 주변 자연보호구역 대비 7배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귀환’이다. 100년 넘게 자취를 감췄던 갈색 불곰이 다시 체르노빌 숲에서 포착됐고, 유럽들소·스라소니·흰꼬리수리 등 상위 포식자와 대형 초식동물이 잇따라 기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국제 연구진은 현재 출입금지구역 내에서 200종이 넘는 조류가 관찰되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유럽 대륙 차원에서 멸종위협을 받는 종이라고 보고한다.

 

멸종 위기에서 돌아온 ‘프르제발스키 말’의 실험


체르노빌 생태 회복의 상징은 단연 프르제발스키 야생마다. 중앙아시아 토종 야생마인 이 종은 1990년대에 들어 사실상 야생에서 사라져, 전 세계 번식 개체가 12마리 수준까지 줄어든 멸종 위기 종이었다. 우크라이나 당국과 국제단체는 1998년, 인간의 출입이 거의 없는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이 ‘최후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소수 개체를 방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험은 지금까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영국 과학전문 매체와 우크라이나 연구진은 프르제발스키 말 개체수가 방사 이후 약 7배로 증가했으며, 출입금지구역 전역에서 안정적인 번식 및 서식이 관찰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문가는 “원전 건설 이전 수준까지 야생동물 개체수가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지역의 프르제발스키 말은 체르노빌이 단순 ‘폐허’가 아니라, 고위험 지역이면서도 희귀종 보전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방사능보다 강력한 변수는 ‘인간의 부재’


핵심 쟁점은 방사능이 야생동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영국 포츠머스대 짐 스미스(Jim Smith) 교수 등은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의 포유류 밀도가 주변 보호구역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는 점을 근거로 “방사능이 동물에게 이롭다는 뜻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사냥·농업·개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치명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서류·조류를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크라이나 및 국제 연구팀이 수행한 동부 청개구리 연구에서는 출입금지구역 개체와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 개체 간에 건강 상태와 수명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다만 고선량 지역 개구리에서 피부 색소가 더 짙게 나타나는 경향, 고방사선 구역 조류에서 백내장 발생 비율이 높게 보고되는 등 미묘한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이런 데이터를 종합해 “방사능의 만성 노출은 분명 위험 요인”이지만, "체르노빌의 생태계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요인은 인간의 완전한 퇴장"이라고 진단한다. 대규모 농경지였던 지역은 사고 이후 방치되며 자연 천이를 거쳐 숲으로 바뀌었고, 일부 연구에 따르면 사고 이후 체르노빌 일대 산림 면적은 약 두 배 수준으로 확대됐다.

 

‘살아있는 실험실’이 된 출입금지구역


오늘날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은 군사적 긴장과 방사능 위험이 공존하는 동시에, 전 세계 생태학자들에게는 살아있는 실험실로 기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제 연구진은 수십 대의 트레일 카메라와 방사선 측정망을 통해 늑대·곰·야생마·수달 등 대형 포유류의 행동을 추적하고, 방사선량과 개체 건강·번식 사이의 상관관계를 장기 모니터링 중이다.

 

BBC와 주요 국제 언론은 체르노빌과 한반도 비무장지대(DMZ)를 함께 조명하며, “인간의 발길이 갑자기 끊긴 고위험 지대가 역설적으로 생물다양성 핫스폿이 되는 현상”을 소개했다. 인간 활동이 집중된 도시와 농경지에서 멸종 위기종이 사라지는 동안, 방사능 오염지에선 상위 포식자까지 포함한 복합 생태계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체르노빌은 ‘재앙 이후의 자연 회복력’을 가늠하는 장기 관측소로 자리잡았다.

 

전쟁과 노후화가 던지는 새로운 변수


다만 이 ‘기적의 회복’은 새로운 위험 요인과 맞닥뜨리고 있다. 2022년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체르노빌 일대는 여러 차례 점령과 재탈환을 겪었고, 출입금지구역 상당 부분이 군사적 요충지·통과로로 사용되면서 지뢰, 참호, 콘크리트 장벽 등이 생태계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기고 있다.

 

2025년 2월에는 파괴된 원자로를 덮기 위해 건설된 ‘신안전격납구조물(New Safe Confinement)’이 드론 공격을 받아 손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의 골자다. IAEA는 같은 해 12월 이 구조물이 “방사성 물질 격납을 포함한 주요 안전 기능을 상실했다”고 평가하면서도,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적 안정성은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지역의 방사능 정화와 폐로 작업은 최소 2065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생태 교란 요인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체르노빌 40년의 역설은 분명하다. 방사능 재난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지만, 인간이 물러난 틈을 타 자연은 자신만의 속도로 무너진 생태계를 재구축하고 있다.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은 ‘원전 사고의 상처’이자, 동시에 ‘인간 부재가 만든 거대한 실험실’로서 앞으로 수십년간 인류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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