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국제수로기구(IHO)가 바다 이름을 숫자로 치환하는 디지털 표준 ‘S-130’을 공식 채택하면서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일본해(Sea of Japan)’ 단독 표기 체제가 사실상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다. 동시에 부산에 IHO 인프라센터가 들어서며 한국이 글로벌 해양 데이터 표준의 실질 거점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나코 총회, S-130 최종 의결… S-23은 사실상 ‘역사 자료’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IHO는 4월 19~23일(현지시간) 모나코에서 열린 제4차 총회에서 디지털 해도 데이터셋 ‘S-130’을 완성·정식 채택했다. S-130은 특정 해역을 ‘동해’나 ‘일본해’ 같은 지명 대신 위도·경도 기반의 고유번호로 식별하는 디지털 해도집 표준으로, 전자해도(ENC), 전자항해(E-Navigation), 지리정보체계(GIS)에 최적화된 구조를 규명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번 결정은 2020년 제2차 총회에서 “기존 아날로그 해도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를 대체할 디지털 표준(S-130)을 개발한다”는 합의가 이뤄진 지 6년 만에 나온 최종 결실이다.
S-130의 발효와 함께 1929년 초판 발간 이후 1953년 제3판까지 ‘Sea of Japan’을 단독 표기해 온 S-23은 더 이상 국제 디지털 항행에서 참조되지 않고, 역사적 출판물·참고자료로만 남게 된다는 점이 IHO 및 관련 연구에서 반복 확인된다. 한국 정부가 1997년부터 약 30년간 IHO 회의와 유엔 지명 표준화 회의(UNCSGN) 등에서 동해·일본해 병기를 요구하며 벌여온 외교전이 ‘새 표준의 채택’이라는 다른 방식의 결말을 맞게 된 셈이다.
“지도에서 ‘일본해’ 지운다”… 이름 싸움에서 데이터 전쟁으로
다양한 매체들은 “세계 바다지도에서 ‘일본해’가 사라진다”, “동해·일본해 논쟁 마침표”라는 표현을 쓰며 이번 결정을 의미 있는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디지털 표준에서는 해역 명칭 대신 고유번호를 우선 사용하기 때문에, 적어도 IHO가 관리하는 공식 전자해도 체계에서는 ‘Sea of Japan’이라는 단독 명칭이 더 이상 표준 텍스트로 등장하지 않게 된다. 나무위키 및 지리학계 논문들도 “S-23에서 일본해만 표기됐던 구조가 S-130 도입 이후엔 무의미해진다”고 분석해 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명칭 갈등이 완전히 소멸했다기보다 전장이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지도 플랫폼과 민간 해양정보 서비스가 어떤 데이터 구조를 채택하고, S-130의 속성(attribute) 필드에 어떤 언어·어휘를 기본값으로 채워 넣느냐가 향후 ‘동해(East Sea)’ 노출 빈도를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측이 S-130 상용화 과정에서 동해 관련 역사·지명·국제사용 관행 자료를 축적·제공해야 한다는 지리학계 제언도 이미 2023년 학술 논문 형태로 제기된 바 있다.
부산 IHO 인프라센터, S-100·S-130 데이터 허브로
이번 모나코 총회에서는 IHO 인프라센터의 부산 설립 안건도 최종 승인돼 눈길을 끌었다. 부산시는 앞서 2025년 10월 IHO 집행이사회에서 부산이 설립지로 결정됐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이번 총회 의결로 설치·운영 방안이 공식 확정됐다. 센터는 올해 하반기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3단계 건물(일명 BIFC2)에 문을 열 예정이며, 초기 상주 인력은 약 10명,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해외 전문가로 구성될 것이라는 게 부산시의 설명이다.
재정 구조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IHO 인프라센터에는 매년 국비 약 25억원, 시비 약 2억원 등 총 27억원 수준의 운영비가 투입되며, 사무실 조성에는 시비 67억원이 들어간다. 센터는 S-100 기반 차세대 전자해도·해양정보 표준을 개발·검증하고, 3차원 해저지형·조석·기상 등 다양한 해양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디지털 해양 표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는다. 자율운항선박과 스마트항만, 해상 물류·보험·핀테크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동해 외교전, ‘데이터 주도권’ 2막 열렸다
IHO의 S-130 채택과 부산 인프라센터 유치는 ‘이름을 바꾸는 전쟁’에서 ‘데이터를 설계하는 전쟁’으로의 전환점이라는 데 국내외 보도의 평가가 모인다. 이제 쟁점은 일본해 단독 표기를 지워내는 것을 넘어, S-130 코드에 어떤 속성값을 채우고, 그 데이터가 글로벌 내비게이션 시스템·스마트폰 지도·해양 물류 플랫폼으로 얼마나 빠르게, 넓게 확산되느냐로 이동했다. 한국이 부산이라는 ‘표준의 심장부’를 거점으로 IHO와 국제 해양 데이터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키워낸다면, 동해 표기 문제는 외교전이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 인프라 전략의 일부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공개된 수치와 구조만 놓고 보면, 연간 20억원대 후반의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소규모 국제기구 센터가 S-100·S-130이라는 차세대 해양 표준 전체를 관리하는 허브가 되는 셈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단순한 ‘일본해 지우기’ 이상의, 해양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거버넌스 경쟁에서 전략적 레버리지를 확보한 셈이어서, 향후 국내 연구기관·IT기업·플랫폼 사업자의 참여 확대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