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조일섭 기자] 대법원이 10월 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약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을 명령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함에 따라, 8년 넘게 이어진 SK그룹의 ‘경영권 리스크’가 사실상 해소됐다.
이번 판결로 SK는 미국과 유럽을 잇는 인공지능(AI)·반도체 신성장사업에 총력을 집중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되찾게 됐다.
경영권 불확실성 제거…지배구조 위험 해소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원심이 인정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자금이 불법 비자금으로, 재산 형성 기여분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 규모는 1조3808억원에서 655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결정으로 SK㈜ 지분 매각이나 SK실트론과 같은 핵심 계열사 지분 처분 가능성이 줄어들어, 그룹 지배구조의 지속 안정성이 확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회장은 SK㈜ 주식 1297만5472주(17.9%)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54.9%인 713만3588주는 이미 금융권 담보로 설정돼 있었다. 만약 원심이 확정됐다면 SK그룹의 경영권 자체가 흔들릴 위기였다.
유안타증권 이승웅 연구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산분할액이 용인됐다면 SK 경영권의 불안정성이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이 있었으나 대법 판결로 기존의 사업 방향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AI·반도체’ 쌍축 성장전략 재가동
사법 리스크를 해소한 SK는 AI와 반도체 중심의 성장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2024년 6월 경영전략회의에서 SK그룹은 오는 2026년까지 총 80조원 규모의 투자 재원을 확보해 AI, 반도체, 에너지 플랫폼 등 핵심 산업에 집중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AWS(아마존 웹 서비스)와의 협업을 통한 울산 AI 데이터센터 건립 프로젝트다. 이 데이터센터에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 SK텔레콤의 클라우드·통신 네트워크, SK가스의 에너지솔루션이 결합된다. 이를 통해 SK는 AI 인프라 밸류체인 구축과 글로벌 AI 생태계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를 30% 확대해 총 29조원 규모의 CAPEX(자본적지출)을 집행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22조원 대비 7조원이 늘어난 수치로, AI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과 HBM 시장 1위 수성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다.
‘AI 서밋 2025’·CEO 세미나로 미래 전략 총점검
SK그룹은 11월 3~4일 서울 코엑스에서 ‘SK AI 서밋 2025’를 개최해 글로벌 AI 기업 및 학계 인사들과 SK의 AI 비전과 협업 전략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에는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등 주요 관계사가 참여하며, 오픈AI,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빅테크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1월 6~8일에는 이천 SKMS 연구소에서 최고경영자(CEO) 세미나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최태원 회장은 신임 경영진과 함께 반도체·AI 중심의 사업 확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행에 담긴 ‘글로벌 네트워크’ 포석
대법 판결후 16일 오후, 최태원 회장은 미국 플로리다주로 출국했다. 일정 중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비즈니스 미팅 및 투자 유치 행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출국길에서 “어려운 경제 환경이지만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소회를 밝혔다.
이번 미국 방문은 SK온의 북미 배터리 동맹 강화, SK하이닉스의 미국 현지 반도체 투자 확대, SK텔레콤의 AI 연합 협의 등과 연계된 행보다. 특히 SK온은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합작 사업을 한국보다 우선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투자 속도를 20% 이상 상향 조정했다는 분석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SK의 글로벌 리더십 재점화
법적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SK그룹은 경영 안정성을 기반으로 글로벌 투자 및 기술혁신의 속도를 높일 전망이다. AI, 반도체, 에너지의 3대 축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며, 최태원 회장이 강조해온 “통합 AI 인프라 국가 경쟁력 모델”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순한 개인사 해소가 아니라, 재계 2위 그룹의 경영 안정성과 국가 산업 경쟁력의 연속성을 지켜낸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