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조일섭 기자] SK텔레콤 유심(USIM) 정보 유출 해킹 사고로 2500만 가입자의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된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고 발생 19일 만에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위약금 면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피하면서 책임 회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최 회장은 7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SK텔레콤 사이버 침해 사고로 고객과 국민께 불안과 불편을 드렸다. 그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보안 정보보호 혁신위원회를 신설해 그룹 차원의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객 해지 시 위약금 면제 문제에 대해서는 “이용자 형평성과 법적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며 “SK텔레콤 이사회에서 논의 중이고, 나는 이사회 멤버가 아니라 드릴 말씀이 여기까지”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최 회장은 현재 SK텔레콤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등기이사나 이사회 구성원은 아니어서 공식적 책임을 피하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로 SK텔레콤의 미흡한 사고 대응과 책임 회피가 도마에 오르면서, 가입자 대규모 이탈 현상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일주일간 SK텔레콤에서 타 통신사로 이동한 가입자는 2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평소의 9배에 달하는 수치로, 하루 평균 3만명이 SK텔레콤을 이탈한 셈이다.

특히 SK텔레콤 이동전화 가입 약관 제44조에는 ‘회사 귀책사유로 고객이 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을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음에도, SK텔레콤은 위약금 면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회사 측은 “위약금은 개별 고객과의 약정에 따른 민사 문제”라며 일괄 면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회와 입법조사처는 “해킹이 SK텔레콤의 귀책사유로 인정된다면 위약금 면제는 약관상 가능하다”며, 대규모 통신사 해킹 사고에 대한 책임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보통신망법상 과태료 상향, 이행강제금 부과 등 조사 강제력을 강화하고, 해킹 피해 고객에게 유심 무상 교체 및 위약금 면제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보안 문제를 넘어서 그룹의 ‘국방’ 문제로 인식하고, 생명과 같은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위약금 면제 등 실질적 피해 구제 방안에 대해서는 책임을 이사회로 미루는 태도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불러오고 있다.
결국 SK텔레콤의 위약금 면제 여부와 실질적 피해자 구제 방안은 이사회 논의와 국회의 법·제도 개선 논의에 따라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통신사 보안 사고에 대한 기업의 책임과 피해자 보호 체계가 한층 강화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