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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Moonshot-thinking] '깜깜이'에서 '깜빡이'를 켠 폐기물 시장

 

인테리어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발주처도, 시공사도, 심지어 처리업체조차 정확한 최종 행선지를 확언하기 어렵다. 전화 한 통, 사진 몇 장, 도장 찍힌 서류가 전부였던 이 시장은 오랫동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최근 일부 현장에서 시도된 변화는 이 깜깜한 시장에 처음으로 불을 밝힌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상업용 건축, 인테리어 전문기업 알스퀘어디자인에 따르면 1200t 규모의 폐기물을 매립이나 소각 없이 전량 재자원화했고, 그 결과 서울 여의도공원 4배 면적에 17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것과 같은 탄소 감축 효과가 나왔다. 선언이 아닌 증명으로 얻어낸 성과다.

 

폐기물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버렸고, 그것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 불법 투기나 부적정 처리가 적발되는 건 문제가 터진 뒤였고, 그마저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웠다.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ESG 경영을 내세워도 자사 폐기물의 최종 처리 방식을 명확히 보고할 수 없다.

 

변화는 디지털 플랫폼 도입에서 시작된다. 현장 담당자가 앱으로 배출 요청을 등록하는 순간부터 수거 차량 이동, 집하장 반입, 선별 작업, 최종 출하까지 모든 과정이 바로바로 기록되는 시스템이다. 저울에서 측정된 무게는 자동 입력되고, 적재된 폐기물 사진은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종류별 비율을 계산한다. 전자 인계서는 즉시 발급돼 문자로 전송되며, 모든 데이터는 시스템에 투명하게 쌓인다.
시스템 핵심은 '추적 가능성'이다. 폐목재가 고형 연료로, 폐콘크리트가 순환 골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배출자가 확인할 수 있다. 발전소나 시멘트 공장에 공급된 연료가 화석연료 몇 t을 대체했는지, 그로 인해 줄어든 탄소량이 얼마인지도 숫자로 나온다. 실제 운영 사례에서 1000여 t의 폐기물은 단 1t도 매립되거나 소각되지 않았다. 이는 1090.2tCO₂ 감축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로 입증됐다.

 

환경 지키고, 비용도 줄이고

 

ESG 경영은 비용이 늘어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최근 시도된 사례들은 정반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공사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면서 폐기물 처리 비용을 기존 대비 평균 5% 절감한 현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불투명한 처리 경로에서 발생하던 중간 마진과 비효율을 데이터 기반 관리로 제거한 덕분이다. 친환경 경영이 곧 비용 효율화라는 사실이 현장에서 증명되는 중이다.

 

이는 환경(E) 지표만 개선한 게 아니다. 거버넌스(G) 면에서도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발주 기업들은 시공사에서 받은 데이터 리포트를 자사 ESG 보고서에 바로 반영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관계를 넘어 지속가능경영 파트너십이 형성되는 배경이다.

 

규제보다 먼저 움직인 현장들

 

올해 1월부터 수도권 전역에서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전면 금지됐다. 수도권 매립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환경부가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많은 건설·인테리어 업체들은 아직 묘안을 찾지 못했다. 처리 비용은 급등했고, 불법 처리 적발 사례도 여전하다.

 

일부 현장에서는 이 규제가 시행되기 전부터 자발적으로 자원순환 체계를 구축해왔다. 정책 변화를 앞서 준비한 곳들은 규제 환경에 민감한 기업들에 실무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다. 특히 ESG 공시 의무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투명한 폐기물 처리 데이터는 발주 기업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자산이 된다.

 

폐기물 처리 플랫폼을 운영하는 천일에너지 박상원 대표는 "폐기물 산업이 도로나 항만처럼 사회기반시설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산업의 투명화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인프라의 신뢰성과 직결된다. 불투명한 시장 구조는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불법 투기 단속, 환경오염 복구, 부적정 처리 적발에 들어가는 행정력이 모두 그렇다.

 

증명된 모델, 확산 가능한 표준

 

최근의 시도들은 일회성 실험이 아니다. 실증을 넘어 1년 전체 운영으로 검증된 모델들이 나오고 있다. 알스퀘어디자인과 같이 100여 개 현장에서 같은 프로세스를 반복 적용해 안정성을 입증한 사례도 있다.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는 표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깜깜이' 시장에 불을 켜는 일은 데이터와 투명성에서 시작된다. 365일간 쌓인 알스퀘어디자인의 1200t의 기록은, 공사 폐기물이 매립지 대신 여의도공원 4배 크기의 숲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 증명이다. 이제 선택은 업계와 정책 당국 몫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폐기물을 계속 배설할 것인가, 아니면 ICT로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가. 답은 데이터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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