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미국 미주리 주, 일레븐 포인트 강 근처. 레이첼 간츠는 남편 존이 사라진 지 3개월이 넘은 지금도 매일 아침 “존재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깨어난다.
극심한 홍수 속에서 남편을 잃은 그녀는 전문가들이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s)’이라 부르는 상태에 갇혔다. 이는 전 세계 수많은 가족들에게 닥친 현실이다.
전통적 애도와 다른 ‘모호한 상실’의 본질
모호한 상실은 ‘확실한 끝’이 없는 상실이다. 1970년대 미네소타대 폴린 보스 박사가 처음 명명한 이 개념은, 사랑하는 사람의 실종처럼 남겨진 가족이 실질적인 이별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의미한다.
장례식도, 사망 진단서도 없기에 애도와 수용의 의식이 부재하다. 보스 박사는 “이분법적 관점(흑백·생사)을 버리지 않으면 그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며, 남겨진 이들의 상실감과 트라우마는 “평생 얼어붙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반복적 언론 노출, 그 후 찾아오는 ‘정적’은 슬픔을 더욱 심화시킨다. 리디아 루덴코 등 많은 실종자 가족들은 “어떤 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 어떤 이는 나서서 행동하게 된다”고 토로한다.
글로벌 실종자 규모와 현황
모호한 상실은 특정 국가, 재난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4년 한 해 동안 유엔은 전 세계적으로 5만6559건의 실종자 신고가 접수되어, “지난 20년간 가장 큰 폭의 증가”라고 발표했다. 이는 전쟁·재난·국경 분쟁·테러 등 정치적·사회적 불안정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25년 기준 공식 실종자 등록은 7만명을 넘는다.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1만구 이상의 시신이 신원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으나, 공식 등록된 전쟁 실종자는 여전히 2만3000명 이상이다.
미국에서도 연간 46만명에 달하는 아동 실종이 보고된다. 세계최고의 인구대국인 인도에서는 시간당 88명, 하루 2130명, 한 달 6만4851명이 사라진다.
2025년 7월 발생한 텍사스 대홍수 직후 160명이 실종됐으며, 135명의 사망이 공식 집계됐다.

가족에게 남는 치유될 수 없는 공백
실종은 단순히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불확실성, 죄책감, 만성적 슬픔, 우울, 불안, 심할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까지 겪는다. 명확한 결말 없는 고통에 대한 심리적 동결(frozen grief)은 삶 전반을 마비시킨다. 애도는 완결감을 전제로 하지만, 모호한 상실에서는 그마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의 하다르 골딘의 어머니 레아는 “끝없이 새로운 상처를 주는 칼”이라고 표현한다.
보스 박사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며, 해결책 없는 상실 중 가장 고통스럽다”고 가족들의 경험을 인정한다.
전문가 제언 및 사회적 대응
전문가들은 우선 공감과 인정을 권한다. 즉 “해결되지 않은 모호한 상실임을 인정하고,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로는 장례식 같은 공식적 의식이 없어도, 지역 사회·공공 영역의 상실 인정은 심리적 안도감에 오히려 도움을 준다.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국제적 실종자 데이터베이스, DNA 분석 등 과학적·제도적 지원 확대 필요성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부차원의 유가족 지원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그저 안아주고, 침묵 속에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새로운 시대의 ‘슬픔’: 끝나지 않는 실종, 우리 모두의 과제
세계 곳곳에서 불확실한 상실은 더 이상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재난, 전쟁, 실종 범죄, 이민·피난 과정까지, 모든 이들이 마주할 수 있는 인류적 현상이다.
“모든 사라진 사람의 행방을 찾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유엔의 경고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