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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마음 회복 연구실] 당신의 마음 '케어라벨'을 확인한 적 있나요?

래비(LABi)의 마음 회복 연구실 ①

 

◆ 말보다 조금 더 느린 방식으로


칼럼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잠시 멈칫했다. 말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말과 질문으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을 오래 해왔다.


그런데 글은 조금 다르다. 말은 눈을 마주하고, 마음의 결을 따라 흐르지만 글은 그 결을 조심스럽게 눌러 담아야 한다. 이 칼럼은 내게 말보다 조금 더 느린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에 닿아보려는 시도다. 그래서,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코칭을 공부하며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던 한 문장이 있었다. “마음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있다.” 그 마음의 움직임을 먼저 알아채고, 그 조용한 틈에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빨래비누에서 래비(LABi)까지


어릴 적 부터 나는 ‘빨래비누(bbalebinu)’라는 아이디를 썼다.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했지만, 내겐 하나의 태도였다. 빨래비누는 화려하지 않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묵묵히 얼룩을 지우고, 본래의 색을 되찾게 해준다.


곁에 있으면 편안한 존재,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처음엔 마케팅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직문화와 인권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코칭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사람을 만난다.

 

그 여정 끝에 '래비(LABi)'라는 이름이 생겼다. 빨래비누에서 출발한 이름이지만, 이제는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회복을 탐구하는 나만의 연구실이 되었다.

 

 

◆ 잃어버린 마음의 케어라벨

 

[마음 회복 연구실]에서 내가 처음 발견한 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붙어 있던 '케어라벨'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옷을 세탁하기 전에 케어라벨을 확인한다. 이 옷이 면인지, 울인지, 뜨거운 물에 줄지는 않는지. 하지만 정작 자기 마음에 대해서는, 그 라벨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지금 이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단순한 피로인지. 익숙해져서 무뎌졌거나, 너무 오래돼 닳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회사에서는 전문가, 집에서는 엄마, 아이 앞에서는 어른. 이 모든 역할 사이에서, 나는 내 마음의 라벨을 잃어버렸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책하던 밤, 부당한 대우를 견디며 애써 웃던 오후.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내가 어떤 재질인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점점 알 수 없게 됐다.

 

◆ 케어라벨을 찾는 대화


코칭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그 잃어버린 라벨을 함께 찾아내고, 거기서부터 대화를 시작하는 일이다. 누구나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 말 뒤에는 감정이 쌓여가는 조직, 성과로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리더, 혼자 버티고 있는 고독한 마음들이 있다.
그 마음들은 모두, 섬세하게 다뤄져야 하는 한 벌의 옷 같다.

 

이 칼럼은 그 마음들의 조용한 틈에 작은 불을 켜보려는 시도다. 그리고 '빨래비누'에서 시작된 내가 왜 지금도 '회복'이라는 단어 곁에 머물고 있는지를 이 실험실의 기록들을 통해 조금씩 나눠보려 한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입니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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