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동기부여를 받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똑같은 팀장의 피드백 한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극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망치는 말이 된다.
퍼실리테이션을 배우고 나서도 이 질문만큼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뭘까?'
조직의 소통 방식은 조금 알게 됐지만, 그 안에 있는 '개인'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나는 결국 그 답을 찾아 심리 진단 도구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국민 진단 도구라 불리는 MBTI는 입문이었다. 그 다음은 에니어그램이었다. MBTI가 행동유형을 보여준다면, 에니어그램은 그 행동의 뿌리에 있는 두려움과 욕망을 건드린다. 처음 내 에니어그램 유형을 확인했을 때, 솔직히 좀 민망했다. '내 마음속에 이런 욕구가 있었나?' 그 불편함이 오히려 흥미와 이해의 기반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한 버크만 진단까지 손을 뻗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드러나는 숨은 욕구를 찾아내며 일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진단 도구였다.
닥치는 대로 공부했고, 하나씩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확신이 줄었다. 나조차도 나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진단지 몇 장으로 타인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도구는 도구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걸 배우는 걸까. 그 답은 오래된 우화 하나에 있었다.
강을 건너야 하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등을 내어달라고 부탁했다. 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고 강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전갈은 결국 개구리의 등을 찌른다. 죽어가는 개구리가 이유를 묻자 전갈이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찌르는 게 내 본능이라서."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는 누구나 젠틀한 페르소나를 쓰고 일한다. 하지만 지치거나 위기가 오면, 꽁꽁 눌러두었던 각자의 본능이 전갈의 독침처럼 튀어나온다.
그 순간을 "대체 왜 저래"라고 비난하는 대신, "아, 저 사람의 기저에는 저런 불안이 있구나"라고 읽어내는 것. 그게 진단 도구를 배우는 진짜 이유다.
이 관점을 기반으로 전사 조직개발 워크숍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200회가 넘는 현장을 다니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성격 진단 워크숍이라고 하면, 갈등이 심하거나 관계가 틀어진 '문제 조직'이 먼저 손을 들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바라본 현실은 반대였다. 오히려 사이가 좋고 성과도 내는 이른바 잘나가는 팀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수습이 아닌 도약을 위해 서로의 다름을 시간을 내어 들여다보는 것이다.
반면 진단 도구를 잘못 쓰는 경우도 많이 봤다. "나는 T라서 원래 공감을 못해", "너는 그런 유형이니까 나랑은 안 맞아." 이건 이해가 아니라 면죄부이고, 수용이 아니라 선 긋기다.
약 200회의 현장이 내게 알려준 건 결국 이것이다.
진단은 사람을 설명하는 정답이 아니다. 내가 당연하게 느끼는 것이, 옆사람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나와 다른 당신을 이해하려는 그 작은 노력이, 생각보다 꽤 많은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
[래비가 제안하는 커리어 블렌딩 3단계 질문]
STEP 1. 당신은 진단 결과를 '편견'으로 쓰고 있는가, '이해'로 쓰고 있는가?
-타인의 MBTI나 성격 유형을 듣고 "어쩐지 그래서 그랬구나"라며 단정 짓고 선을 긋고 있지는 않은가? 도구는 타인을 라벨링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와 다름을 수용하기 위해 존재함을 기억해야 한다.
STEP 2. 우리 팀은 '좋은 관계'를 넘어 '탁월함'을 추구하는가?
-문제가 터져야만 서로의 성향을 알아보려 수습에 나서고 있는가? 갈등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서로의 강점과 스트레스 패턴을 파악해 팀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STEP 3. 동료의 '본능(전갈의 침)'을 이해하고 있는가?
-직장에서 페르소나가 무너지고 갈등이 생기는 지점은 결국 각자의 숨겨진 본능이 부딪힐 때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방어적으로 변하는지, 그 기저의 마음을 관찰해 본 적이 있는가?
[11화 예고]
MBTI, 에니어그램과 버크만 등 다양한 도구들을 통해 사람의 다름을 입체적으로 보게 된 래비.
하지만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래비에게 완전히 새로운 미션을 던진다. "래비님이 조직문화도 하시니까, 사내 인권 업무도 같이 맡아보면 어떨까요?" '인권'이라는 무겁고 낯선 단어 앞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사람과 조직의 성장을 고민하는 코치이자 교육·문화 담당자입니다. 20년의 치열한 실무 경험과 워킹맘의 일상을 재료 삼아, 지나온 모든 순간이 어떻게 현재의 나로 '블렌딩'되는지 그 성장의 기록을 담아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