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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마음 회복 연구실] 마음에도 안전기지가 필요해…당신의 '뭉실이'는 무엇인가요?

래비(LABi)의 마음 회복 연구실 ⑥

 

◆ 격려와 지지 그리고 안정감,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한창 친구들이랑 뛰어놀기 좋아할 나이인 우리 아들에겐 여전히 곁을 지키는 낡은 친구가 있다. 아들의 세 번째 생일 선물이었던 황금색 강아지 인형 뭉실이는 이제 누런빛을 띠고, 털은 듬성듬성 빠져버렸다. 똑같이 생긴 새 강아지 인형 말랑이를 사줬는데도, 아들은 여전히 낡은 뭉실이를 가장 소중한 친구로 여긴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혼자 잠들기 무서워할 때도 아들에겐 뭉실이가 꼭 필요하다. "뭉실이가 슬퍼할까 봐 그래"라는 아들의 예쁜 마음 때문에, 낡은 뭉실이는 아들에겐 언제나 '넘버 원'이다.

 

이것은 어쩌면 아이에겐 사랑을 주는 방식이자 사랑을 지키는 방식이다. 아들은 뭉실이를 가방에 꼭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랑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인형일 뿐이지만, 아들에겐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스스로를 보호해주는 방패가 된다.

 

그런 아들을 보며 남편은 종종 뭉실이가 되어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네가 용기를 내는 걸 보면 정말 자랑스러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마다 난 정말 기뻐"처럼 아들의 눈높이에 맞춘 위로와 지지의 말들을 건넨다. 그 다정한 목소리는 아들에게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장치가 된다.

 

◆ 뭉실이의 언어는 사랑이고, 그 사랑은 확신을 만든다.

 

초등학교 4학년 남아인데도 감성이 풍부한 성향 때문일까. 혹은 누구에게나 애착 인형 하나쯤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감정 표현 방식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안전 기지(safe base)'를 찾고자 하는 보편적인 욕구가 있다. 아들에겐 낡은 인형 뭉실이가, 나에겐 피아노가 그런 안전 기지인 셈이다.

 

꽤 오랜 시간 피아노를 쳐왔다. 지금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헤드셋을 끼고 건반 앞에 앉는다. 그러면 세상의 소란은 잠잠해지고, 오직 나만의 작은 우주가 열린다. 피아노는 단지 악기가 아니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건반은 내 감정을 대신해 멜로디로 토해냈고, 나는 그 안에서 온전한 나로 숨쉴 수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만의 든든한 안전 기지였다.

 

◆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코칭은 바로 이 '안전 기지'의 개념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아이가 부모에게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코칭은 고객이 스스로의 내면에서 단단한 안전 기지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 기지는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뭉실이가 낡고, 털이 빠졌어도 아들이 여전히 뭉실이를 ‘넘버 원’으로 여기는 이유는, 뭉실이가 아들의 오랜 시간과 감정을 오롯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새 인형 말랑이는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할 친구가 되겠지만, 뭉실이는 과거의 사랑과 안정을 증명하는 유일한 존재로 남을 것이다.

 

◆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묵묵히 기댈 수 있는 존재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뭉실이’가 있다. 그건 힘들 때 말없이 안아주는 가족일 수도 있고, 어떤 말보다 귀 기울여 주는 친구일 수도 있다. 때론 차분히 들어주는 코치일 수도, 따뜻한 차 한 잔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 코칭이란, 누군가의 뭉실이가 되어주겠다는 다짐이다. 아들이 뭉실이 앞에서 가장 온전한 자신일 수 있었던 것처럼, 코치 또한 모든 판단을 멈추고 고객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코치는 단순히 곁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도록, 그 존재의 빛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다.

 

아직 스스로 믿기 어려운 가능성과 힘을, 누구보다 먼저 믿어주는 사람이다. 고객 안의 자원과 지혜를 신뢰하고, 그들이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음을 잊지 않도록 반사경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결국 코칭은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품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이 안전 기지가 되고, 그 기지에서부터 다시 걸어 나갈 힘이 자라난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입니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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