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7 (금)

  • 구름조금동두천 10.7℃
  • 구름많음강릉 13.4℃
  • 박무서울 13.2℃
  • 박무대전 11.8℃
  • 박무대구 12.0℃
  • 박무울산 15.2℃
  • 박무광주 14.8℃
  • 흐림부산 18.7℃
  • 맑음고창 12.7℃
  • 맑음제주 21.4℃
  • 맑음강화 12.9℃
  • 구름많음보은 9.4℃
  • 구름많음금산 7.7℃
  • 맑음강진군 15.7℃
  • 구름많음경주시 12.3℃
  • 구름많음거제 16.2℃
기상청 제공

Opinion

[마음 회복 연구실] 마음에도 안전기지가 필요해…당신의 '뭉실이'는 무엇인가요?

래비(LABi)의 마음 회복 연구실 ⑥

 

◆ 격려와 지지 그리고 안정감,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한창 친구들이랑 뛰어놀기 좋아할 나이인 우리 아들에겐 여전히 곁을 지키는 낡은 친구가 있다. 아들의 세 번째 생일 선물이었던 황금색 강아지 인형 뭉실이는 이제 누런빛을 띠고, 털은 듬성듬성 빠져버렸다. 똑같이 생긴 새 강아지 인형 말랑이를 사줬는데도, 아들은 여전히 낡은 뭉실이를 가장 소중한 친구로 여긴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혼자 잠들기 무서워할 때도 아들에겐 뭉실이가 꼭 필요하다. "뭉실이가 슬퍼할까 봐 그래"라는 아들의 예쁜 마음 때문에, 낡은 뭉실이는 아들에겐 언제나 '넘버 원'이다.

 

이것은 어쩌면 아이에겐 사랑을 주는 방식이자 사랑을 지키는 방식이다. 아들은 뭉실이를 가방에 꼭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랑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인형일 뿐이지만, 아들에겐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스스로를 보호해주는 방패가 된다.

 

그런 아들을 보며 남편은 종종 뭉실이가 되어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네가 용기를 내는 걸 보면 정말 자랑스러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마다 난 정말 기뻐"처럼 아들의 눈높이에 맞춘 위로와 지지의 말들을 건넨다. 그 다정한 목소리는 아들에게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장치가 된다.

 

◆ 뭉실이의 언어는 사랑이고, 그 사랑은 확신을 만든다.

 

초등학교 4학년 남아인데도 감성이 풍부한 성향 때문일까. 혹은 누구에게나 애착 인형 하나쯤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감정 표현 방식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안전 기지(safe base)'를 찾고자 하는 보편적인 욕구가 있다. 아들에겐 낡은 인형 뭉실이가, 나에겐 피아노가 그런 안전 기지인 셈이다.

 

꽤 오랜 시간 피아노를 쳐왔다. 지금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헤드셋을 끼고 건반 앞에 앉는다. 그러면 세상의 소란은 잠잠해지고, 오직 나만의 작은 우주가 열린다. 피아노는 단지 악기가 아니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건반은 내 감정을 대신해 멜로디로 토해냈고, 나는 그 안에서 온전한 나로 숨쉴 수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만의 든든한 안전 기지였다.

 

◆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코칭은 바로 이 '안전 기지'의 개념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아이가 부모에게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코칭은 고객이 스스로의 내면에서 단단한 안전 기지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그 기지는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뭉실이가 낡고, 털이 빠졌어도 아들이 여전히 뭉실이를 ‘넘버 원’으로 여기는 이유는, 뭉실이가 아들의 오랜 시간과 감정을 오롯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새 인형 말랑이는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할 친구가 되겠지만, 뭉실이는 과거의 사랑과 안정을 증명하는 유일한 존재로 남을 것이다.

 

◆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묵묵히 기댈 수 있는 존재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뭉실이’가 있다. 그건 힘들 때 말없이 안아주는 가족일 수도 있고, 어떤 말보다 귀 기울여 주는 친구일 수도 있다. 때론 차분히 들어주는 코치일 수도, 따뜻한 차 한 잔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 코칭이란, 누군가의 뭉실이가 되어주겠다는 다짐이다. 아들이 뭉실이 앞에서 가장 온전한 자신일 수 있었던 것처럼, 코치 또한 모든 판단을 멈추고 고객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코치는 단순히 곁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도록, 그 존재의 빛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다.

 

아직 스스로 믿기 어려운 가능성과 힘을, 누구보다 먼저 믿어주는 사람이다. 고객 안의 자원과 지혜를 신뢰하고, 그들이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음을 잊지 않도록 반사경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결국 코칭은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품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이 안전 기지가 되고, 그 기지에서부터 다시 걸어 나갈 힘이 자라난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입니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관련기사

1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마음 회복 연구실] 상처는 흉터가 아닌, 성장의 나이테

◆ 설악산의 기억, 그때 나는 나를 이겼다 지금도 '산'하면 15년 전 회사 팀워크숍으로 갔던 설악산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 팀은 무려 1년을 준비했다. 각자 주말마다 작은 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졌고 함께 회사 계단을 오르내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새벽에 한계령에서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초반엔 웃으며 사진을 찍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허벅지는 천근만근, 머릿속에는 조직장에 대한 원망과 함께 '왜 사서 고생하지?'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정상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보다 지금의 고통을 그만 멈추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은 것들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 장만했던 등산복이 땀에 흠뻑 젖은 느낌, 얼굴에 엉긴 소금기, 그리고 대청봉 정상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날이 내 인생에서 분명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결국 해냈다는 사실. 그 이후로 나는 가끔 마음속에서 되뇌곤 한다. "그때 내가 설악산을 올랐잖아.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겠지." ◆ 상처는 흉터가 아닌, 나이테가 된다 삶도 산을 오르는 일과 닮았다. 정상에 오르기 전, 누구나 몇

[눈치코치] 스페셜리스트와 제네럴리스트…당신의 선택은?

어느덧 여섯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제 자신을 문득 살포시 돌아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전역한 바로 다음 날, 저는 말년 군인에서 다시금 ‘군기 팍 든’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들어간 첫 직장은 건설회사였습니다. 23년 전 공채로 입사해 4년 남짓 다니며 대리로 특진도 했지만, 결국 제 선택은 ‘이직’이었습니다.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또 고심했습니다. 그때 불현듯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될래, 아니면 조직 안에서 제네럴리스트(Generalist)로 성장할래?” 제 선택은 ‘스페셜’이었습니다. 그래서 홍보라는 본래의 신호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과감히 업종을 바꾸며 새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 이직을 해야만 스페셜리스트가 될까요? 제 대답은 단호히 “그렇다!”입니다. 한 회사에서 같은 팀, 같은 본부에 수십 년을 머무는 건 - 자의든 타의든 -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정년까지 한 조직에서 근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의지나 조직장과의 관계, 회사 시스템의 변화, 사업 구조 개편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언젠가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결국 나만의 커리

[플라이미투더문] 노력도 가끔 배신한다…방향성 있는 노력이 중요

딸아이에게 종종 동화책을 읽어줄 때면, 필자는 아이의 비판적 사고를 강화해 주겠다는 명목 하에 여러 질문을 던지곤 한다. 물론 어깨 너머로 느껴지는 아이엄마의 불편한 시선은 마치 세금과도 같다. “백설공주가 주인 없는 난쟁이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고 침대에서 자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신데렐라의 구두는 왜 12시가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발사이즈로 특정인물을 가늠하는 것이 논리적인 접근인가?” 이러한 괴짜스러운 접근방식이 ‘토끼와 거북이’의 한 구절에 닿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 노력도 가끔은 배신한다 얼마 전 매니저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직원과 코칭을 진행 한 적이 있다. 그는 관계 개선을 위해 지금껏 다양한 시도를 해왔으며, 매니저에게 맞추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이 없음을 느껴 정신적으로 위축이 되고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한 상태였다. 심지어 내면에 매니저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커진 상태였다. “제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요?” 힘겹게 꺼낸 그의 말에 나는 질문했다.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한 5년 후의 나를 상상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요?”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

[Moonshot-thinking] 서울 오피스 시장의 조용한 이동…"큰 숲 아닌 다핵적 도시 생태계로 재편될 것"

도시는 숲과 같다. 거대한 나무가 뿌리를 내린 자리에는 그늘이 드리우고, 작은 풀과 꽃은 늘 주변부를 향해 흩어진다. 요즘 서울의 오피스 시장 또한 다르지 않다. 한때 기업들은 ‘큰 나무’의 상징인 대형 빌딩과 전통적 핵심 권역에 뿌리를 내리려 했다. 이제는 작은 숲을 이루며 점진적으로 흩어지고 있다. 이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아니라, 가늘고 지속적인 흐름이다. ◆ 경기 불확실성과 비용 절감의 명령 알스퀘어 리서치센터가 얼마전 발간한 ‘2025 오피스 임차시장 트랜드 리포트’는 이러한 변화를 수치로 확인해준다.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부터 경기 동행지수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기업의 재정 부담이 뚜렷해졌다. 이 과정에서 임차인들의 이전 수요는 서울 기타 지역으로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기업들은 임대차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간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큰 빌딩에 입주해야 기업이 성장한다’는 믿음이 강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합리적”인가가 기준이 되고 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의 차원을 넘어, 불확실한 경기 환경 속에서 기업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 공실률, 안정과 불안 사이 서울 핵심 권역의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