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사람 구경이 좋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 구경을 좋아했다.
학교 복도에서,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를 유심히 살피며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왜 저런 말을 했을까'를 혼자 상상하곤 했다.
이 작은 관찰은 TV를 볼 때도 이어졌다. 어릴 때 '사랑과 전쟁'을 보고 있으면 고개를 저었지만, 내겐 ‘휴먼 다큐멘터리’로 느껴졌다. 사람의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 설레는 순간과 무너지는 순간이 압축된 인간 군상의 기록 말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솔로’, '이혼숙려캠프', '돌싱글즈'가 그 자리를 채웠다. 제목은 달라졌지만, 내가 빠져드는 이유는 같다.
◆ 관찰 카메라의 비밀
연애 리얼리티 쇼의 진짜 묘미는 '관찰 카메라'에 있다.
화려하고 즐거운 웃음만 담지 않는다. 선택받지 못해 말없이 식사를 하는 장면, 기대가 빗나가며 흔들리는 눈빛, 스스로도 몰랐던 낯선 표정까지도 남김없이 담아낸다.
이것이 코칭과 닮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
고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개 '방송용 장면’과 같다. 사회적 기대 속에서 고르게 편집된 버전 말이다. 그러나 그 뒤엔 편집되지 않은 ‘미공개 영상’이 숨어 있다.
코치는 적극 경청이라는 ‘고해상도 카메라’로 숨겨진 뒷모습까지 함께 바라본다.
"방금 목소리가 살짝 떨리셨는데,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이 질문은 고객의 ‘디렉터스 컷’을 꺼내게 만든다.
◆ 대본을 새롭게 써 내려가는 순간
이혼숙려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이 과거의 선택을 곱씹으며 후회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보는 이로서는 안타깝지만, 되돌릴 수 없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종종 같은 장면을 되감기하듯 붙잡고, 실패의 기억을 같은 해석과 감정으로 끝없이 반복재생한다.
이때 코칭 대화는 같은 장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 지금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그 질문 속에서 후회만 남았던 장면은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 되고, 잃어버린 열정과 가능성을 되살리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 편집되지 않은 장면의 힘
코칭에서 코치는 '원맨 제작진'과 같다.
주인공은 언제나 고객이지만 코치는 무대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바라보며, 때로는 조용히 “컷!”을 외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주인공이 자신이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지 자각하도록 돕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 라이브 방송이라면 나를 빛나게 하는 ‘하이라이트 장면’도 있겠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지금의 나를 만든 ‘미공개 장면’도 있다.
코칭은 이 모든 장면을 함께 바라보는 작업이다. 편집되지 않은 나를 마주할 때, 비로소 다음 회차를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고객의 삶 속 '숨겨진 B컷 장면'을 함께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장면이 더 좋은 스토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도 질문과 경청이라는 조명을 켠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