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정이 소비가 될 때,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을까
매년 이맘때면 《트렌드 코리아》를 펼친다. 조직과 내 삶을 동시에 비춰보는 습관이 된 지도 오래다.
그 중 내년의 핵심 키워드 가운데 가장 오래 시선을 붙든 것은 ‘필코노미(Feelconomy)’였다. 감정과 기분을 상품처럼 관리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기술과 효율을 말하는 거대한 메가트렌드 속에서, 감정이 소비의 한 항목으로 등장한 사실이 묘하게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 AI가 주는 위로와 그림자
요즘 직장에서 어려운 감정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거나,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빈틈을 메우듯 AI 기반 상담과 코칭 서비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익명으로 늦은 시간에도 인간에게 느끼는 부담감 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 상당히 매력적이다.
코칭 공부할 때 코치들 사이에서 "코칭이나 상담이 AI에 대체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늘 화두였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AI 코치와 상담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전했다는 사실과 함께 반대 의견도 나왔지만, 대화 이면엔 직업적 두려움과 존재의 위협을 느끼는 듯 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과 해결책 제시, 조언은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위로와 공감, 지지 마저도 AI는 지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완벽하게 역할을 수행해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AI는 나의 요구에 맞게 답변을 부드럽고 빠르게 바꿔주지만 과연 효과적일까.
진짜 성장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때 시작되는데, AI는 또 다른 ‘나’처럼 너무 쉽게 나를 학습하여 내가 좋아하는 말로 위로를 준다.
◆ 코칭적 자기 진단: 불편함을 통한 발견
코칭은 감정을 단순히 흘려버리는 소비가 아닌, '자기 발견 투자'로 전환시킨다.
질문을 통해 감정을 유발하는 내면의 '핵심인자'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는다.
나는 코칭 현장에서 에니어그램(Enneagram), 버크만(Birkman), MBTI, Gallup 강점진단 등 다양한 진단 도구의 디브리퍼로 활동해 왔다. 에니어그램은 본질적 두려움과 욕구를 보여주고, 버크만은 무의식적 니즈가 충족되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부정적 감정을 알고 있어야 우리는 성장하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 감정 예산, 소비가 아닌 투자로
필코노미 시대, 감정을 소비하는 것 대신 감정에 투자해보면 어떨까.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 “이건 나의 어떤 니즈가 충족되지 못했다는 신호일까?”에 집중한다면 감정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가 되고, 다시 자원이 된다.
이러한 투자를 위한 실천적 방법이 바로 인간적 코칭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팀원과의 1:1 코칭 대화를 의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래를 위한 최고의 감정 투자다. 심리적 안정감이 받쳐줘야만 진짜 성장이 가능하고, 이는
다시 리더의 자원이 된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강점과 약점, 선호와 비선호를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셀프 코칭의 시작이다.
결국 필코노미 시대에 감정 관리의 비밀은 외부 서비스가 아닌 ‘나’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질문 속에 있다.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입니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