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 뒤에는, 말보다 많은 감정이 숨어 있다
“팀장님이 자꾸 편하게 말하래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제일 불편해요.”
눈을 떨구던 그녀의 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신입으로 입사한 지 8개월. 어느 순간부터 회의실에서 그녀는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디어를 내면 ‘그게 아이디어야?’ ‘넌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머리는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달고 다니라고 있는 게 아니고.’ 가끔은 말 대신 큰 한숨으로 절 쳐다보세요. 그럴 땐 숨조차 쉬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냥… 입을 닫게 되었어요...”
상담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켠이 시려온다. 단어는 조금씩 달라도, 그 밑바탕에 깔린 아픔은 닮아 있다.
개인의 경험으로 시작되지만, 알고 보면 팀 전체가 감정적으로 얼어붙은 경우가 많다
그런 팀은 소통이 사라지고, 조심스러운 눈치와 말 없는 불신만 남아있다.
그래서 어쩌면 사무실에서의 침묵은 큰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 최근 조직문화 키워드 중 가장 주목받는 단어 ‘심리적 안전감’
실수해도, 궁금한 걸 물어봐도, 다른 의견을 말해도 비난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심리적 안전감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일터에서 이 확신은 유리컵처럼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깨진다.
한 번 상처받으면 조심하게 되고, 두 번 상처받으면 경계한다. 세 번째가 되면, 입을 닫는다.
그리고 침묵이라는 방패막 뒤로 숨어버린다.
그녀처럼. 어쩌면 우리처럼.
언제부터 목소리가 사라지게 되었을까.
◆ 코칭의 가장 기초이자 핵심역량은 ‘신뢰 관계 구축’
코칭 역량 모델에 ‘관계 구축’이라는 항목이 있다.
익숙하고 평범한 표현 같지만, 사실은 코칭의 모든 과정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고객과 수평적인 파트너십을 만들고, 신뢰감과 안전감을 하나하나 쌓아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것이 코칭의 시작이며, 가장 깊은 약속이다.
코칭 현장에서 고객들은 혼란스러워 하거나, 때로는 자신을 부정하며 길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럴 때 코치는 말한다.
“실수해도 괜찮고, 부족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있는 그대로 충분히 괜찮고 멋진 존재입니다.”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은 깊은 시선과 반응으로 대하며, 고객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조용한 거울이 되어준다.
◆ 그래서 코치는 기다린다
조급해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침묵에 고객의 생각이 있고 욕구가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자를 벗어나 코치로서 그녀에게 말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힘드셨을 거예요.
저는 당신의 진심이 보여요.”
그 말에 그녀는 아주 살짝 웃었다.
8개월 만의 첫 미소였다고 했다.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어쩌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걸
느끼지 않았을까.
◆ 침묵의 언어, 가장 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신뢰는 한순간에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공감 하나, 기다림의 태도 하나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말 속에서,
본래 가지고 있던 장점과 자기다움이 서서히 되살아난다.
어쩌면 그녀도, 나도, 우리 모두
말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오래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말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 칼럼니스트 ‘래비(LABi)’는 어릴 적 아이디 ‘빨래비누’에서 출발해, 사람과 조직,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코치이자 조직문화 전문가입니다. 20년의 실무 경험과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의 회복을 돕는 작은 연구실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