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태광그룹이 17년 만에 재개한 인수합병(M&A) 시계가 화려하게 돌아가고 있다.
석유화학과 섬유 등 기존 주력 사업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자 4000억원대 후반에 애경산업 경영권 지분 약 63%를 인수하는 계약을 최종 확정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과 티투프라이빗에쿼티(PE), 유안타인베스트먼트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애경산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연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애경산업의 시가총액이 4300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은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애경산업은 1985년 창립 이후 ‘루나’, ‘에이지투웨니스’ 등 화장품 브랜드와 생활용품 브랜드 ‘케라시스’, ‘2080’, ‘스파크’ 등을 보유하며 지난해 매출 6791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화장품 부문 매출 비중이 약 60~70%를 차지하며, 이 중 약 70%가 해외시장, 특히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태광그룹은 중국 의존도를 다각화 기회로 보고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수출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번 인수는 태광그룹의 사업 다각화 전략의 일환으로, 전통 섬유·석유화학 중심 사업 구조에서 소비재(B2C) 및 화장품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투자 규모를 줄였으나 올해부터 이익잉여금 4조1589억원을 기반으로 M&A 시장에 공격적으로 재진입, 화장품과 부동산, 에너지 분야에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애경산업 인수는 신사업 육성 및 그룹 재도약의 핵심 모멘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애경그룹은 유동성 위기 가운데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AK홀딩스의 순차입부채는 2조원을 넘었고, 부채비율은 2020년 233.9%에서 2024년 328.7%까지 상승했다. 특히 제주항공 사고와 유통업 침체로 인한 경영 압박이 심각했다. 이에 따라 애경은 골프장 중부CC를 약 1690억원에 매각 완료했으며, 이번 애경산업 매각 대금으로 단기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거래는 단순한 지분 매각 그 이상으로, 애경그룹의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재편된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에도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할 전망이다. 태광그룹은 애경산업 인수를 통해 화장품 사업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신성장 동력으로 키울 방침이며, 사업 다각화와 글로벌 시장 확대 전략을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애경그룹은 심각한 부채 문제를 인수 대금 조달로 해소하고, 태광그룹은 ‘현금 부자’의 강점을 활용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며 재계 판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태광그룹의 이번 M&A 재개는 이호진 전 회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도 키우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그룹 내 책임경영 강화와 신사업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