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한 학교가 수업 시간 동안 스마트폰 신호를 차단하는 선구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는 학교 내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려는 전 세계적 움직임의 일환으로, 칠레 최초의 시도다.
산티아고의 로 바르네체아 비센테나리오(Bicentenario) 학교의 이 프로그램 덕분에 학생들은 소셜 미디어를 스크롤하는 대신 스포츠를 하거나 친구들과 교류하고 전통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즉 스마트폰 사용을 못하자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실생활 교류와 전통적 활동에 눈을 돌리는 현상이 뚜렷이 관찰되고 있는 것.
BBC News, 인디아투데이, Houston Chronicle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2025년 8월부터 시행됐으며, 13~14세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신호차단 자석 케이스에 스마트폰을 보관해 직접 소지하지만 전화, 문자, 인터넷 등 모든 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케이스는 교직원만 수업 끝에 열어준다.
학교 측은 "쉬는 시간이 매우 활기차다"고 평가하며, 학생들은 배구·농구·탁구·도서관·카페 공간에서 교류하는 모습이 늘었다고 밝혔다. 도서관 보드게임, 운동장 전통놀이, 스포츠 토너먼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병행하며 학생들의 사회적 유대감 강화에 힘쓰고 있다.
학생 및 교직원 반응…“더 자유롭고 친구들과 교류 늘었다”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 14세 학생 호세 다비드는 “더 자유로워지고, 쉬는 시간에 더 오래 머물고, 친구들과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도 훨씬 많이 하게 됐다”고 밝혔다. 13세 학생 프란시스카 수사르테 역시 “완전히 휴대폰을 맡기는 방식보다 신호차단 케이스가 더 편하다”고 평가했다. 휴대폰 반입은 허용하되, 신호 차단장치를 통한 접근 제한이 상대적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한 정책…칠레, OECD 통계상 집중력 저하 심각
세계 여러 국가에서도 유사한 정책이 확산 중이다. 한국은 지난 2025년 교실 내 휴대폰 사용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핀란드·프랑스·이탈리아·호주·네덜란드 등도 학생 스마트폰 제한을 강화했다. 칠레의 경우 OECD 2023년 평가에서 학생의 51%가 디지털 기기로 인해 집중력 저하를 겪는다고 답해, OECD 평균 30%를 크게 웃돌았다. 동료 학생의 기기 사용까지 동반 산만 요인으로 작용하며, 전체 학생의 42%가 이러한 간접 산만함을 호소했다.
로 바르네체아 시의 펠리페 알레산드리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원격수업 기간 중 언어, 수학, 비판적 사고 능력 저하가 심화됐다”고 경고했다.
정신 건강과 학업 성취도, 정책 변화 추동
스마트폰 중독과 정신 건강의 상관관계는 다양한 연구로 뒷받침되고 있다. 킹스칼리지 런던의 2021년 연구(청년대상)는 자기 자신을 ‘휴대폰 중독자’로 인식하는 청년이 불안 증상을 겪을 확률이 두 배,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세 배에 달한다는 결과를 냈다.
최근 연구에서는 심각한 스마트폰 사용이 수면장애·비만·학업성취도 저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 기기들이 중독 유발 목적으로 설계됐다”며, 건강한 사용 시점은 16세 이상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칠레, 전국적 법제화 논의…정책 효과의 실질적 한계도 존재
칠레 상원 교육위원회는 전국 학교 디지털 기기 사용 금지 및 규제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 통과될 경우, 로 바르네체아 시범학교를 넘어 전국 확대가 예상된다. 시범학교 프로그램은 향후 1년간 모든 학년과 구내 타 학교에 순차 도입될 예정이다.
다만, 최근 영국 등지의 대규모 연구에서는 ‘학교 내 휴대폰 금지 정책이 학생 정신건강·학업성취도·수면 등에서 실질적 개선효과를 보이지 않았다’는 결과도 나왔다. 학생들은 학교 내 제한만큼 방과 후 스마트폰 사용을 늘리거나, 전반적 SNS, OTT 시청 시간에는 변화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주의력 상승·친구와의 교류 확대·집중력 향상” 효과는 현장에서 관찰되고 있어,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장기 추적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