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이 미술 작품은 두꺼운 물감층(임파스토)으로 구축된 보랏빛 산맥과 에메랄드색 호수, 나선형의 태양과 구름이 등장하는 추상적 산수화다. 표면이 거의 부조(레리프)에 가깝게 솟아 있어 평면 회화라기보다 소규모 설치미술처럼 빛과 그림자를 끌어들이며, 보는 위치에 따라 산의 주름과 물결이 달리 읽힌다.
전통적인 원근법 대신 색 대비와 질감의 밀도로 공간을 직조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자연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감각 데이터’로 재구성한 포스트-디지털 풍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꺼운 붓질의 정치학 – 임파스토가 말하는 것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산, 구름, 태양을 형성하는 과도하다 싶을 만큼 두꺼운 물감층이다. 미술 이론에서 임파스토(impasto)는 물감을 반죽처럼 두껍게 올려 붓 자국과 팔레트나이프 자국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기법으로, 표면의 요철이 실제 3차원 그림자를 만들며 회화의 물성(物性)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이후 빈센트 반 고흐, 렘브란트 등이 감정의 격렬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 기법을 적극 사용했고, 최근에는 아크릴 물감과 젤·모델링페이스트의 발달로 보다 가볍고 빠르게 층위를 쌓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두꺼운 보라·흰색 물감이 산의 주름을 이루고, 노랑·주황의 나선형 태양과 구름은 거의 소형 조각처럼 튀어나와 있다. 임파스토는 물감 두께가 1~3mm만 돼도 촉각적 질감이 인지되는데, 상업용 ‘헤비 바디’ 아크릴은 최대 5mm 두께까지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런 두께의 물감은 조명 각도에 따라 하이라이트와 그림자를 크게 바꾸기 때문에, 관람자가 움직일수록 산맥과 구름의 윤곽이 미세하게 변하며 ‘시간이 흐르는 풍경’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색채의 상징 – 보라 산맥과 황금 태양
형식 면에서 가장 이례적인 부분은 산이 자연의 갈색·회녹색이 아니라 강렬한 보라색이라는 점이다. 색채심리 연구와 디자인 실무에서 보라는 영성, 신비, 비일상성을 대표하는 색으로 분류되며, 자연 풍경에서 상대적으로 드물게 관찰되기 때문에 인공성과 초현실성을 동시에 상기시킨다는 분석이 제시돼 있다.
이 작품에서 보라색 산맥은 현실의 지형이라기보다 ‘의식 속에서 재구성된 자연’, 혹은 '가상 공간 속 알고리즘이 생성한 산맥'을 상징하는 기호에 가깝다.
반면 태양과 구름은 노랑·주황 계열의 따뜻한 색으로 칠해져 보라와 강한 보색 대비를 이룬다. 시각지각 연구와 색채이론에 따르면 보색 대비는 가장 높은 시각적 긴장과 집중을 유도하는 조합으로, 디지털 광고와 SNS 이미지에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활용된다.
여기서는 ‘차갑고 인공적인 보라 산’ 위로 ‘뜨거운 황금 태양’이 떠 있는 구조를 통해, 자연과 인공, 냉정한 데이터성과 따뜻한 인간성을 겹쳐 놓는 상징적 대비로 읽힌다.
인스타그래머블 풍경, 로맨티시즘의 귀환
이 회화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산·호수·하늘이라는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세부는 추상적 텍스처와 비현실적인 색채로 처리해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둔다. 최근 시각문화 연구에서는 인스타그램 등에서 공유되는 풍경 사진이 19세기 낭만주의 풍경화를 닮은 구도를 반복하며, 자연을 숭고·탈일상적 공간으로 이상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웨덴 연구팀이 수만 건의 자연 풍경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높은 산·수면 반사·극적인 하늘 같은 낭만주의적 모티프가 가장 자주 등장했고 이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자연’의 시각 언어를 형성한다고 보고했다.
이 작품 역시 중앙의 봉우리, 양 옆의 대칭적 산, 수면 위에 점점이 떠 있는 구름과 섬 같은 형상을 배치해 관습적인 ‘장엄한 산수’ 구도를 차용한다. 다만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팔레트나이프로 긁어낸 질감과 과장된 색으로 재해석함으로써, SNS에서 흔히 소비되는 클리셰 풍경을 비틀고 ‘풍경이란 결국 인식과 기억의 합성물’이라는 현대적 통찰을 던진다.
숫자로 보는 산수화 – 왜 이런 그림이 뜨나
이 작품이 속한 임파스토·텍스처 회화는 최근 글로벌 미술 시장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장르다. 아트바젤과 UBS가 발간한 ‘글로벌 아트마켓 리포트 2024’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미술 시장 규모는 약 6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 감소했지만 팬데믹 이전인 2019년(644억 달러)을 상회하며 회복세를 이어갔다.
온라인·디지털 채널을 통한 미술 거래가 2023년 기준 약 118억 달러로 집계돼 전체 시장의 18% 안팎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 회화·프린트 등 2차원 작품이 거래량 기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관점에서도 ‘텍스처가 강한 회화’는 경쟁력이 크다. 인스타그램을 통한 자연·도시 풍경 이미지 공유 행태를 분석한 연구에서, 사용자들은 복잡한 추상보다 산·숲·호수 등 구체적 풍경을 담은 이미지를 더 많이 공유했으며, 이들 이미지가 ‘장소에 대한 감정적 애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또 예술가·크리에이터 대상 SNS 전략 분석에 따르면, 짧은 영상이나 클로즈업 사진으로 질감·붓질이 잘 드러나는 회화 콘텐츠가 추상적 패턴 이미지에 비해 ‘공유·저장’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실증 분석도 있다. 두꺼운 물감과 극단적 색 대비를 택한 이 작품은 물리적 갤러리뿐 아니라 모바일 화면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전형적인 ‘SNS 친화형’ 회화인 셈이다.
철학적 독해 – 데이터 시대의 산수화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 그림은 동아시아 전통 산수화와 서구 낭만주의 풍경,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동양의 산수화는 실경을 묘사하기보다 ‘기(氣)’와 ‘도(道)’라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먹과 여백으로 표현해왔고, 서구 낭만주의 풍경은 자연을 인간 이성으로 포착할 수 없는 숭고한 타자로 그려왔다.
이 작품의 보라 산맥과 소용돌이 태양은 자연이라기보다 ‘에너지 필드’ 혹은 ‘데이터 필드’에 가깝고, 거친 임파스토 층은 알고리즘이 중첩된 레이어처럼 보인다.
에메랄드색 수면에 떠 있는 섬과 구름 조각들은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혼종적 공간’을 암시한다. 사회학과 문화연구에서는 오늘날 자연 경험의 상당 부분이 실제 풍경보다 사진·영상·SNS를 통해 매개되며, 개인의 기억 속 풍경이 미디어 이미지와 뒤엉킨 ‘시뮬라크르 자연’으로 변했다고 분석한다.
이 작품은 그런 혼종성을 긍정적으로 끌어안고, “인간이 보는 산과 하늘은 이미 이미지·데이터·기억이 겹쳐진 산과 하늘”이라는, 다소 포스트모던한 선언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문화적 의미와 향후 가치
문화적으로 이 회화는 ‘힐링’과 ‘에스케이프’ 욕망을 시각화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와 소비행태 조사들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컬렉터와 일반 소비자 모두 집과 일상 공간을 자연·풍경 이미지로 채우려는 수요가 증가했고, 특히 회화·프린트 시장에서 풍경·자연 테마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동시에, AI 이미지 생성과 디지털 아트 붐 속에서 ‘손으로 그린 흔적’과 ‘물감의 두께’는 차별화 포인트가 됐고, 임파스토·수작업 질감이 강조된 회화가 온라인 판매 플랫폼과 아트페어에서 주목을 받는다는 시장 분석도 등장한다.
이 작품은 그 두 흐름의 교차점에 있다. 관습적인 산수 구도를 차용해 ‘어디선가 본 듯한’ 안도감을 주면서도, 비현실적인 보라색과 조각 같은 텍스처로 관람자에게 “이 풍경은 과연 현실인가, 기억인가, 데이터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감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미지 소비 시대의 자연 경험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단순한 장식용 풍경화를 넘어 오늘의 시각문화 환경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포스트-디지털 산수화로 평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