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SK그룹의 지배구조에 다시 한 번 ‘경고등’이 켜졌다. ‘회삿돈 560억원을 사금고처럼 쓴’ 인물의 ‘화려한 컴백’은 단순한 인사 이슈가 아니라, 최태원 회장이 공언해 온 “이사회 중심·주주가치 중시” 거버넌스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560억 유죄’에서 광복절 특사, 그리고 복귀까지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은 2021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업무상 횡령, 외국환거래법·금융실명거래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고, 2025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2심과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그는 개인 골프장 개발 부지 대금을 치르기 위해 재임 중이던 회사 자금 155억원을 무담보로 빌려 쓰고, 유상증자 대금·주식 양도소득세·주식담보대출 상환 등에 쓸 목적으로 281억원을 수시 인출하는 방식으로 SK네트웍스와 SKC등의 회삿돈 560억원을 사실상 ‘개인 쌈짓돈’처럼 사용한 것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개인회사에 155억원을 대여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부실화와의 관련성이 있다”고 적시하면서도, 피고인이 사용 자금을 뒤늦게 변제했다는 점 등을 들어 2년 6개월이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을 확정했다.
그는 이후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형 집행의 족쇄를 풀었고, 사면 7~10개월여 만에 SK네트웍스로 ‘명예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전격 복귀했다는 점에서 ‘유전무죄·무전유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SK네트웍스 이사회와 지배구조의 구조적 맥락
SK네트웍스는 4월 2일 이사회를 열고 최신원 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회사 측은 보도자료에서 “지정학적 리스크와 산업 환경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최 명예회장의 경영 노하우와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AI 중심 사업지주회사로의 진화를 지원받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네트웍스의 최대주주는 SK그룹 지주사인 SK㈜로, 회사 IR 자료 기준 지분율 43.9%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타 특수관계인이 0.85%, 자기주식이 12.35%, 국민연금이 5.04%, 기타 주주가 37.86%를 나눠 들고 있다.
지배구조 분석기관 자료에 따르면 SK㈜는 SK이노베이션(55.5%), SK스퀘어(31.5%), SK텔레콤(30.6%), SKC(40.6%), SK네트웍스(43.9%)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통해 그룹 전반을 지배하고 있고, SK㈜의 개인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지분 약 17.9%)이다. 이번 복귀를 의결한 SK네트웍스 이사는 총 7명이다.
최신원은 법인 등기에 올라가지 않는 미등기임원으로 선임돼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결의만으로 회사에 복귀했는데, 이는 형식상 ‘사외’에서 자문하는 위치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 영향력은 상당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비판이 나온다.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는 그룹 메시지와의 정면충돌
SK그룹은 ESG 경영 기조 속에 ‘이사회 중심 경영(BSM·Board Stewardship Management)’을 확대하며 지배구조 개선의 모범 사례로 꼽혀 왔다. 특히 SK㈜는 ESG위원회·인사위원회·감사위원회·거버넌스위원회 등 이사회 내 위원회를 설치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뛰어넘는 수준의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2023년 국내 주요 그룹 지배구조를 평가한 랭킹에서는 SK가 전년 대비 17계단을 뛰어올라 이사회 독립성·소수 주주권 보장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최신원 명예회장 선임은, 그룹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쥔 SK㈜와 그 개인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이 강조해 온 거버넌스 원칙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SK네트웍스 이사회는 형식상 독립적 기구이지만, SK㈜가 43.9%라는 압도적 지분을 가진 상황에서 그룹 컨트롤타워의 의중과 완전히 무관한 결정을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거세다.
결국 시장의 시선은 “최태원 회장이 정말 몰랐을까, 알면서도 용인했을까”라는 질문으로 모이고 있고, 두 경우 모두 SK의 거버넌스 시스템에는 심각한 신뢰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주 충실 의무’ 강화한 개정 상법과의 충돌 가능성
최근 개정된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면서, “이사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법조계 분석에 따르면 이번 개정으로 이사회가 대주주 또는 총수 일가의 이해를 우선시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복귀를 밀어붙일 경우, 이사 개인에게까지 충실의무 위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SK네트웍스의 일반 주주는 2023년 말 기준 약 9만5000명 수준으로, 전체 발행주식의 약 44.8%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복귀에 이사회가 찬성했다면, 개정 상법상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위반 여부를 따져볼 수 있다”고 지적하며, 소수주주들이 이사 책임을 묻는 법적 대응을 검토할 경우 이번 인사는 ‘테스트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괴리, SK 거버넌스 ‘레드 플래그’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한국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리스크는 상시적인 할인 요인으로 지적돼 왔고, SK는 그동안 ESG와 이사회 중심 경영을 앞세워 이 같은 의구심을 줄이려 노력해 왔다. 지주사 SK㈜ 홈페이지의 거버넌스 페이지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하지만,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560억 횡령·배임 전력이 있는 ‘오너 일가’의 전격 복귀는 그 메시지를 스스로 상쇄시키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SK네트웍스는 AI 중심 사업지주사로의 변신을 선언하며 중장기 성장 전략을 추진 중인데, 이 과정에서 지배구조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기관투자가와 글로벌 ESG 투자 자금의 시선이 급속히 싸늘해질 수 있다.
국민연금이 5%대 지분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여부와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 방향에 따라 이사회와 경영진을 향한 압박 수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단순히 ‘최신원의 복귀 여부’가 아니라, “법원이 유죄로 판단한 전력과 사회적 신뢰 훼손을 감안했을 때, 이사회와 지주사, 그리고 최태원 회장이 스스로 설정한 거버넌스 기준을 얼마나 지킬 의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SK가 스스로 내건 글로벌 스탠더드를 실제 의사결정에서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이번 인사는 향후 그룹 전체의 ESG 평가와 자본시장 신뢰를 갉아먹는 ‘작은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SK그룹 거버넌스에는 분명한 ‘빨간불’이 켜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