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우주의 거대 구조 규모에서 중력이 뉴턴의 역제곱 법칙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대로 작동한다는 결정적 관측 결과가 나왔다. 빅뱅 이후 초기 우주의 빛과 수십만 개 은하·은하단의 상호작용을 정밀 추적한 ‘우주적 규모’ 중력 검증으로, 암흑물질 가설에는 힘을 실어주고, 수정 뉴턴 역학(MOND) 같은 대안 중력이론에는 치명타를 안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CMB와 은하단 30만개로 재본 ‘우주 만유인력의 법칙’
이번 연구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설치된 아타카마 우주론 망원경(ACT)이 관측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B) 데이터를 토대로 수행됐다. CMB는 빅뱅 약 38만년 후 우주가 식으면서 방출된 ‘우주의 첫 빛’으로, 이후 138억년 동안 팽창하는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과정에서 중력장의 영향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연구진은 특히 거대한 은하단이 움직이면서 CMB에 남기는 미세한 신호를 포착했다. 질량이 큰 은하단은 주변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사이를 통과하는 CMB 광자는 은하단의 운동과 중력 퍼텐셜 변화에 따라 에너지와 위상이 조금씩 바뀐다. 이런 ‘중력 흔적’을 약 30만 개의 은하·은하단에 걸쳐 통계적으로 쌓아 올려, 거대 규모에서 중력이 어떻게 약해지는지를 역산한 것이다.
그 결과, 중력의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감소한다는 뉴턴 역제곱 법칙의 지수 값 2에 대해, 실측 값은 약 2.1로 나왔다. 연구진이 제시한 오차 범위를 고려하면 이 값은 통계적으로 ‘2와 구분되지 않는 수준’으로, 우주 수억 광년 규모에서도 뉴턴의 역제곱 법칙과 이를 포괄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이 그대로 통용된다는 뜻이다.
“일반상대성이론, 태양계를 넘어 110억 년 우주에서도 통과”
사실 중력 이론의 ‘우주 규모 검증’ 흐름은 이미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다. 암흑에너지분광장비(DESI) 프로젝트는 은하와 퀘이사 약 600만개의 분포와 시간에 따른 구조 형성을 분석해, 110억 년에 걸친 우주 시공간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중력 방정식이 관측 결과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는 2024년 11월 미국천문학회에 보고될 예정으로, 태양계·은하계 수준을 넘어 ‘우주론적 스케일’에서까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버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ACT 기반 분석은 DESI처럼 우주 구조 성장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CMB라는 초기 우주의 ‘배경 신호’와 오늘날 은하단의 운동이 남긴 섬세한 흔적을 함께 이용해, 중력 법칙의 거리 의존성을 직접 수치화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서로 다른 관측·분석 방법이 같은 방향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은, 일반상대성이론·ΛCDM(람다-CDM) 우주론에 대한 신뢰도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합성 테스트로 볼 수 있다.
암흑물질에 힘 실어준 결정타, MOND엔 사실상 ‘레드카드’
이번 결과가 파장이 큰 이유는, 단순히 “뉴턴·아인슈타인 이겼다”는 수준이 아니라, 수십 년간 암흑물질 대 MOND(수정 뉴턴 역학)로 전개돼 온 우주론 논쟁의 추가 다시 암흑물질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MOND 계열 이론은 “중력 방정식을 고치면,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없이도 은하 회전 곡선을 설명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 시나리오가 맞으려면, 거대 규모에서 중력이 거리와 질량에 대해 뉴턴 역제곱 법칙에서 벗어나 보다 완만하게 감소하는 패턴이 관측돼야 한다. 하지만 ACT 기반 분석에서 얻어진 지수 2.1은, 오차 범위 내에서 역제곱 법칙과 사실상 일치했다.
이는 이미 CMB 각도 파워 스펙트럼이 ΛCDM 모형에 잘 들어맞고, MOND 계열 모형으로는 재현이 어렵다는 기존 결과와도 맞물린다. 위키백과에 정리된 바와 같이, 관측된 CMB 파워 스펙트럼 구조는 암흑물질을 포함한 표준 우주론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으며, MOND나 다른 수정중력이론은 이런 정량적 스펙트럼을 자연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여러 우주론 연구의 공통된 결론이다.
이번 연구로 MOND가 “완전히 폐기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론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하고, 국소적 규모에서의 변형 가능성을 남겨둔 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신중함은 필요하다. 다만 우주론적 규모, 특히 CMB·은하단·대규모 구조를 동시에 아우르는 스케일에서는 “암흑물질이 포함된 일반상대성이론 기반 표준 모형이 수치적으로 우세하다”는 평가가 한층 공고해진 셈이다.
암흑물질 25%, 정체는 여전히 ‘블랙박스’
우주론 커뮤니티의 표준 그림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별·행성·가스 등 보통 물질(바리온 물질)은 우주 에너지 밀도의 약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약 25%의 암흑물질과 70%의 암흑에너지로 채워져 있다고 추정된다.
하와이 스바루 망원경과 허블 우주망원경을 이용한 국제연구진은, 사자자리 방향 50만여 개 은하 주변의 중력렌즈 효과를 분석해 길이 약 80억 광년에 달하는 암흑물질 분포의 입체 구조를 재구성한 바 있다. 이 연구는 암흑물질 내부와 주변에 은하가 집중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그 물질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즉 정체 자체는 여전히 풀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ACT 기반 중력 검증은 “우주에 암흑물질이 존재해야 한다”는 기존 관측·이론적 추정을 다시 한 번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암흑물질이 WIMP(약 상호작용 무거운 입자)인지, 축척(아크시온)인지, 혹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새로운 입자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결정적 증거가 없다. 과학자들이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간 느낌”이라고 토로하는 이유다.
다음 판은 1,000만개 은하…‘뉴턴의 법칙’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검증한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에 약 30만개의 은하·은하단 샘플을 사용했지만, 향후 대형 분광·이미징 서베이가 본격 가동되면 1,000만 개 이상의 은하를 대상으로 같은 기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DESI, 유럽 유클리드(Euclid), 미국 내시경 우주망원경(로만 우주망원경) 등 차세대 관측 프로젝트들은 이미 수백만~수천만 개 은하의 3차원 분포 데이터를 쌓아 올리고 있다.
표본 수가 두 자릿수 이상 늘어나면, 뉴턴 역제곱 지수 2에서의 미세한 일탈(예를 들어 2.00이 아닌 1.98이나 2.02 수준)을 포착할 수 있는 통계 정밀도도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이는 암흑물질 자체의 성질, 예컨대 상호작용 단면적이나 자유 이동 길이에 따른 구조 형성 차이, 혹은 대규모에서만 약하게 드러나는 수정중력 효과를 탐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DESI 프로젝트가 “110억 년 우주 구조의 성장 이력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일치”를 검증하는 큰 그림을 그린다면, ACT와 후속 CMB·은하단 관측은 우주 초기와 현재 중력을 한 프레임 안에서 교차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우주론 실험실이 사실상 ‘광년 단위의 거대 가속기’로 변모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