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시민 기자] 수십억 년에 걸쳐 지구는 조용히 자기장이라는 ‘고속도로’를 통해 대기 입자들을 달 표면에 쌓아왔으며, 이는 미래 달 기지의 물·산소·질소 자원 확보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 연구팀은 2025년 12월 11일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 자기장이 단순한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대기 입자들을 달로 운반하는 ‘운반 채널’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 발견은 달 토양에 담긴 수소·질소·헬륨·아르곤 등 휘발성 물질의 출처를 설명하는 데 핵심 단서가 되며, NASA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자원 이용 전략에도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지구 자기장, 방패가 아니라 ‘자기 고속도로’
지구 자기장은 태양풍을 막아 생명을 지켜주는 보호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로체스터 대학 물리학·천문학과 에릭 블랙먼 교수와 대학원생 슈보카르 파라마닉 연구팀은, 이 자기장이 오히려 지구 대기의 일부를 우주로 빼내 달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입증했다.
태양풍이 지구 상층 대기(특히 열권과 외기권)를 때리면, 산소·질소·수소·헬륨 등 이온화된 입자들이 떼어져 나간다. 이들 입자는 지구 자기장선을 따라 움직이며, 일부는 지구 자기꼬리(magnetotail)를 통과해 달까지 도달하게 된다. 달은 지구 자기꼬리 안에 약 3~5일 정도 머무는 주기로 들어가는데, 이때 자기장선을 따라 지구 대기 입자들이 달 표면에 충돌하고, 레골리스(달 토양)에 잔류하게 된다.
연구팀은 초기 지구(자기장 없음, 강한 태양풍)와 현대 지구(강한 자기장, 약한 태양풍) 두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현대 지구가 오히려 더 많은 대기 입자를 달로 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장이 입자들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특정 경로를 따라 ‘유도’함으로써 전달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달 토양에 묻힌 지구의 ‘숨결’…수소·질소·헬륨·아르곤
이 연구는 1970년대 아폴로 임무에서 가져온 달 토양 샘플 분석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를 설명한다. 아폴로 샘플에서는 물(H₂O), 이산화탄소(CO₂), 헬륨(He), 아르곤(Ar), 질소(N₂) 등 휘발성 물질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발견됐다.
태양풍만으로는 이들 원소, 특히 질소의 농도를 설명하기 어렵다. 2005년 도쿄대 연구팀은 초기 지구 대기에서 탈출한 입자들이 달에 도달했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당시에는 지구 자기장이 강하면 오히려 대기 입자 유출을 막는다고 보았다.
로체스터 팀은 이 가정을 뒤집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현대 지구의 강한 자기장이 오히려 대기 입자들을 자기장선을 따라 달까지 ‘유도’하는 효과를 내며, 수십억 년에 걸쳐 지구 대기의 조각들이 달 레골리스에 축적돼 왔다는 것이다.
달 토양의 수소·질소 농도, 실측 데이터
아폴로 샘플 분석에 따르면, 달 토양에는 태양풍과 지구 대기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수소와 질소가 상당량 포함돼 있다.
수소/물 : 중국 창어(嫦娥)-5 임무에서 가져온 달 토양 분석에 따르면, 중위도 지역(북위 43°)에서 레골리스의 평균 수분 함량은 최소 146~170 ppm(100만분의 146~170) 수준이다. 이는 태양풍에서 온 수소가 달 광물(橄欖石·輝石·斜長石) 표면에 OH/H₂O 형태로 흡착된 결과로, 일부 지역에서는 200 ppm 이상까지도 관측된다.
질소 : 아폴로 샘플에서 측정된 질소 함량은 샘플에 따라 18~108 ppm 수준이며, 일부 미세입자(24 μm 이하)에서는 200 ppm 이상까지도 보고됐다. 이는 태양풍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지구 대기에서 온 질소가 상당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헬륨·아르곤 : 달 토양에는 헬륨-3(He-3)과 헬륨-4(He-4), 아르곤-40(Ar-40) 등도 태양풍과 지구 대기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르곤-40은 지구 대기의 주요 희가스이므로, 달 토양에 함유된 아르곤의 일부는 지구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
달 토양, 지구 대기의 ‘고고학적 기록’이자 자원 보고
연구팀은 달 레골리스가 단순한 먼지가 아니라, 지구 대기와 자기장의 장기적 진화를 기록한 ‘천연 보존고’라고 설명한다.
지구 자기장이 37억년 전 그린란드 철석에서 이미 강하게 존재했다는 증거(옥스퍼드대 2024년 연구)와 함께 보면, 지구 대기 입자들은 적어도 30억년 이상 달에 쌓여왔을 가능성이 있다.
달 토양에 축적된 수소·질소·산소·헬륨 등은, 지구의 대기 조성·기후·생물권 변화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화학적 기록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이 자원들은 미래 달 기지의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
물(H₂O) : 레골리스에 흡착된 수소를 가열·추출해 물을 만들 수 있다. 창어-5 샘플 기준 170 ppm 수준이면, 1톤의 달 토양에서 약 170 g의 물을 얻을 수 있다.
산소(O₂) : 달 토양(레골리스)의 40~45%는 산소이며, 이는 화학적·전기적 방법으로 추출 가능하다. NASA는 1.5 L의 달 토양에서 하루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얻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질소(N₂) : 지구 대기에서 온 질소는 달 기지의 공기(산소·질소 혼합)를 만들거나, 농업용 질소 비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달 자원 이용(ISRU) 계획
NASA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달 남극에 지속적인 인간 거주 기지를 구축할 계획이며, 이 핵심은 ‘현지 자원 이용(ISRU)’이다.
물 추출 : 달 남극의 영구음영구역(PSR)에는 얼음 형태의 물이 풍부하다. NASA는 이 얼음을 채굴해 가열·응축하는 방식으로 물을 추출할 계획이며, 목표는 연간 수천 톤 수준의 물 생산이다.
산소 추출 : 레골리스에서 산소를 추출하는 기술(예: 전기화학적 환원, 진공 열분해)을 개발 중이며, 이를 통해 인간 호흡용 산소와 로켓 산화제를 확보할 예정이다.
수소·질소 활용 : 지구 대기에서 온 수소와 질소는, 달 토양에서 직접 추출된 물과 산소와 함께, 기지의 대기 조성·농업·연료 생산에 활용될 수 있다.
시사점 : 지구-달, 40억년간 이어진 ‘자원 공급망’
이 연구는 지구와 달을 단순한 행성-위성 관계가 아니라, 수십억 년간 지속된 ‘자원 교환 시스템’으로 보게 한다. 지구 자기장은 생명을 지키는 방패일 뿐 아니라, 지구 대기의 일부를 달로 운반하는 ‘자기 고속도로’ 역할을 해왔다.
달 토양은 지구 대기의 장기적 기록을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 달 기지의 물·산소·질소 자원을 공급하는 ‘자원 보고’가 될 수 있다.
이 메커니즘은 화성·화성衛성(포보스·데이모스) 등 다른 행성계에서도 대기 유출과 위성 자원 형성에 적용될 수 있어, 행성 거주 가능성과 행성 진화 연구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