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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내궁내정] 엡스타인이 수년간 푸틴과 만나려 했던 진짜 이유…엡스타인 파일이 드러낸 크렘린 작전의 실체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이 수년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회동을 추진해왔으며, 심지어 2014년에는 크렘린 지도자가 그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식까지 받았던 것으로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350만건 이상의 방대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2017년 기록되고 최근 봉인 해제된 FBI의 기밀 정보원 증언에서는 엡스타인이 푸틴의 자산 관리자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크렘린은 이를 일축했다.


bloomberg, straitstimes, reuters, lemonde, usnews, nytimes가 보도한 이 폭로는 오랫동안 성매매 알선 혐의로 규정되어온 사건에 금융 및 지정학적 차원을 더하는 것으로, 이미 폴란드로 하여금 엡스타인과 러시아 정보기관의 연루 가능성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하도록 촉발했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이른바 ‘엡스타인 파일’에서 제프리 엡스타인이 수년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직접 접촉을 시도하며, 디지털 화폐·파생상품 등 금융 어젠다를 매개로 크렘린에 접근한 정황이 상세히 드러났다. 2017년 FBI 기밀 정보원은 엡스타인이 푸틴의 자산 관리인 역할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이 주장에 대해 검찰 차원의 입증은 이뤄지지 않았고 크렘린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푸틴은 만날 준비가 돼 있다’…2014년 이메일의 내용


2014년 10월, 엡스타인은 미 법무부가 이번에 공개한 350만건 이상 내부 문건 중 한 통의 이메일에서 “푸틴과 말했다. 당신이 방문해 21세기 금융시장, 디지털 화폐, 파생상품 구조화 금융을 설명해 준다면 매우 기뻐할 것”이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 이메일 발신자는 신원 전체가 익명 처리됐지만, “다음 유럽 방문 때 만남을 주선할 수 있다. 두 분은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할 것(sure you two will like each other)”이라고 적어 푸틴과 엡스타인 간 직접 회동을 기정사실화하듯 표현했다.

 

엡스타인은 이 메시지를 당시 백악관 법률팀 출신으로, 이후 골드만삭스 법률고문을 맡게 되는 캐시 루엠러에게 전달하며 ‘거절 사유’까지 미리 예상했다. 루엠러는 “당신의 재미는 불허된다(Your fun is denied)”라는 직설적 답변을 보내 사실상 푸틴 면담 시도를 차단했고, 이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가 강화되던 시기라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러시아판 비트코인’ 제안…지속된 크렘린 문 두드리기

 

루엠러의 제동에도 엡스타인의 ‘크렘린행 로비’는 멈추지 않았다. 미 법무부 자료와 주요 외신 분석에 따르면, 푸틴의 이름은 이번에 공개된 350만건 넘는 엡스타인 관련 파일 가운데 약 1,000회가량 등장하며, 최소 2013년부터 러시아 권력 핵심과 연결고리를 만들려는 시도가 반복됐다.

 

2013년 5월 8일, 엡스타인은 전 노르웨이 총리이자 당시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이던 토르비욘 야글란드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신이 20일에 푸틴을 만나는 것으로 안다. 그는 서방 투자를 간절히 원한다”며 “내게 해법이 있다. 러시아 투자를 증권화해야 하며, 정부가 첫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 과정에서 엡스타인은 러시아 정부가 서방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정교한 러시아판 비트코인(sophisticated Russian version of bitcoin)’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 것으로 미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등은 전했다.

 

엡스타인은 같은 해 전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바라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자고 요청했지만, 나는 ‘충분한 시간과 프라이버시’를 조건으로 내세우며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AFP와 주요 매체들이 DOJ 파일을 교차 검토한 결과, 실제 푸틴과 엡스타인이 대면했다는 객관적 증거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엡스타인의 일방적 주장’ 영역에 머문다.

 

“푸틴 재산 관리인” 진술의 한계…검찰 입증은 ‘제로’


이번 파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는 2017년 11월 27일 FBI가 기밀 인적 정보원(CHS)으로부터 확보한 진술이다. 해당 정보원은 엡스타인이 “고객들의 돈을 해외에 숨기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벌었으며, 푸틴과 전 짐바브웨 대통령 로버트 무가베의 자산 관리인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진술은 그 자체로는 ‘첩보 수준의 정보’에 가깝다. 미 법무부와 연방검찰은 엡스타인에 대한 기존 기소와 별개로 푸틴 또는 러시아 지도부 자산 관리와 관련된 구체적 공소를 제기한 적이 없고, 이번에 공개된 300만 페이지 이상 문서에서도 푸틴 개인 재산 운용의 직접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 역시 “엡스타인이 러시아 요원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시간 낭비”라며 일축했고, 러시아 외무부는 “서방의 위선을 보여주는 정치적 공세”라고 반박했다.

 

따라서 ‘엡스타인이 푸틴의 재산 관리인이었다’는 서술은 현재 시점에서 어디까지나 정보원 진술에 기초한 의혹 제기 수준일 뿐이며, 객관적 금융 자료나 공적 수사 결과로 뒷받침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부분은 ‘검찰 입증 없음, 근거 부족’이라는 단서 조항을 동반해야 한다.

 

 

탈달러·암호화폐 조언…제재 회피와 맞물린 금융 지정학


엡스타인 파일은 성범죄 스캔들을 넘어, 러시아의 대(對)서방 제재 회피 전략과 금융 지정학이 어떻게 교차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도 제공한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 제재가 강화되자, 러시아 경제 관료들은 서방 금융 시스템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했고, 이 과정에서 엡스타인에게 ‘우회로’를 자문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러시아 전 경제부 차관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비공식 ‘러시아 다보스’) 조직에 관여했던 세르게이 벨리아코프는 제재를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지 엡스타인의 의견을 구했다. 르몽드와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탈달러화(de-dollarization) 전략과 암호화폐 활용, 5000억 규모(화폐 단위 미확인)의 대규모 대출 구조” 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러시아가 실제로 201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 국채 보유 축소, 위안화·유로 결제 비중 확대, 금 보유량 증대, 국가 차원의 암호화폐 실험 등을 추진해 온 흐름과도 맞닿는다. 다만 엡스타인의 구체 제안이 러시아 제재 회피 정책에 어느 정도 실질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공개 자료 기준으로 “알 수 없음” 수준이다.

폴란드·노르웨이까지 번진 여파…정보전과 ‘컴프로마트’ 리스크


이번 폭로는 이미 동유럽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정치·외교적 파장을 낳고 있다. 폴란드 도널드 투스크 총리는 2026년 2월 초 “엡스타인 스캔들이 러시아 정보기관에 의해 공동 조직됐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엡스타인 네트워크와 러시아 정보기관 간 연계 여부를 공식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전례 없는 소아성애 스캔들이 러시아 정보기관에 의해 공동 조직됐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폴란드 국가안보에 중대한 함의를 가진다”며 “러시아가 현직 지도자들 다수에 대한 ‘불리한 증거(컴프로마트)’를 쥐고 있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노르웨이 금융범죄수사국인 오코크림(Økokrim)은 엡스타인이 전 총리 야글란드를 ‘푸틴 연결 고리’로 활용하려 한 정황에 대해 사전조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야글란드의 위법 행위가 드러난 것은 없지만, 서방 민주주의 국가 전·현직 지도자들이 엡스타인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와 어떤 접점을 가졌는지를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이번에 공개된 방대한 기록과 피해 진술을 토대로 엡스타인 사건이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해당할 수 있다”고 평가하며, 성범죄 차원을 넘어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 범죄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정보기관과의 연루 의혹이 입증될 경우, 단순 개인 범죄를 넘어 ‘국가 차원의 조직적 인권침해’라는 규정이 추가될 여지도 존재하지만 현재 공개 자료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근거가 부족하다.

 

국제정치학 전문가들은 "결국 이번 미 법무부 파일이 보여주는 것은 ‘엡스타인이 푸틴의 돈을 관리했다’는 확정적 스모킹건이라기보다, 성범죄·엘리트 네트워크·러시아의 제재 회피·암호화폐·정보전이 한 지점에서 교차하는 고위험 네트워크의 구조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며 "사법당국, 의회 조사, 국제기구 등이 추가 문건과 금융 흐름을 어떻게 추적하느냐에 따라, 엡스타인 사건이 ‘개인의 추악한 범죄’에서 ‘국가·정보기관이 관여한 국제적 공작’으로 재규정될지 여부가 갈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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