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날이 저물어 어둠이 르완다의 숲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침팬지들은 나뭇가지를 구부리고 엮어 나무 꼭대기 높은 곳에 새 잠자리 둥지를 만든다. 르완다 뉴그웨 국립공원 상공 10여 m 높이, 해질녘마다 침팬지들이 나뭇가지를 휘어 엮어 올리는 둥지는 단순한 ‘잠자리’가 아니라 일종의 기상 전략 기지에 가까웠다.
최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연구와 miragenews, impackful, uwa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둥지를 짓는 시점의 날씨가 아니라 ‘밤에 실제로 닥칠 기상 조건’과 더 잘 맞아떨어지게 둥지 구조와 위치를 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침팬지들의 행동은 밤새 찾아올 날씨를 미리 예측하는 능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저녁 날씨’ 아닌 ‘밤 날씨’에 맞춰 둥지 설계
서호주대학교와 르완다 현지 연구진은 뉴그웨 국립공원 동부 침팬지 집단을 대상으로 12개월간 둥지 짓기 행동을 추적 관찰했다. 연구진은 매일 저녁 침팬지들이 선택한 나무의 수종, 높이, 수관 밀도와 함께 둥지의 두께·깊이·지지 구조를 정량화하고, 그날 저녁과 밤사이 실제로 관측된 기온·강수·풍속 데이터를 대조했다.
그 결과, 둥지 선택·설계는 둥지를 짓는 순간의 기상조건보다 몇 시간 뒤 찾아오는 야간 기상 패턴과 더 밀접하게 일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쉽게 말해, 맑고 포근한 해질녘에도 밤에 기온이 떨어지거나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면 침팬지들은 더 두껍고 깊은 둥지를 짓고, 수관이 빽빽한 높은 나무를 고르는 쪽으로 행동이 기울었다는 것이다.
“더 따뜻하고, 덜 바람 부는 곳” 정교한 입지 선택
현장에서 데이터를 모은 박사과정 연구자 하산 알 라지는 “침팬지들이 둥지를 짓는 위치와 방식을 상당히 신중하게 골랐다”며 “더 따뜻하고,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선호하고, 서늘하거나 습한 날에는 둥지를 더 두껍고 깊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가 올 밤에는 수관이 조밀해 빗방울과 바람을 더 잘 차단할 수 있는 높은 나무를 선택하는 경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났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 보고된 패턴과도 맞닿아 있다. 세네갈·탄자니아 사바나 지역의 침팬지들은 기온이 낮아질수록 둥지 두께를 키우고, 바람과 비가 강한 날에는 가지를 더 촘촘히 엮어 구조적 지지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번 르완다 연구는 이 같은 ‘날씨 맞춤형 둥지’가 단순한 즉각 반응이 아니라, 몇 시간 뒤의 환경을 겨냥한 선제적 행동일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예보관'이라 부르긴 이르다…하지만 분명 ‘앞을 내다본다’
연구진은 다만 “이 결과가 침팬지가 인간처럼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을 곧바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시릴 그루터 겸임 부교수는 “침팬지들이 온도, 습도, 기압 등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토대로 밤사이 조건을 가늠하는 것일 수 있다”며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고려한 의사결정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공동 저자인 셰인 맬로니 교수 역시 “둥지 짓기처럼 매일 반복되는 루틴조차도 미래를 내다보는 의사결정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날씨 예보관이라 부르기엔 이르지만, ‘지금 여기’가 아니라 ‘곧 다가올 밤’을 기준으로 잠자리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침팬지의 인지 능력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층 더 ‘전략적’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불확실한 미래’까지 고려하는 영장류의 두뇌
이번 결과는 침팬지의 의사결정 능력이 인간 아동에 비견될 정도로 유연하다는 최근 인지 실험들과도 맞물린다. 미국 UC 버클리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연구팀은 두 개의 상자 중 먹이가 든 상자를 고르는 실험에서, 침팬지가 처음 선택을 한 뒤 더 신뢰할 만한 단서가 제시되면 자신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수정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패턴이 단순한 최근 자극 반응이 아니라 ‘합리적인 신념 수정(rational belief revision)’에 가깝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커런트 바이올로지》 게재 연구에서는, 침팬지에게 두 개의 상자를 제시하고 먹이가 어디 있는지 애매한 상황(불투명 상자, 실험자의 행동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경우)을 만들자, 침팬지들이 한 상자만 고르는 대신 두 상자를 모두 끌어당겨 ‘최악의 경우’를 피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침팬지에게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안을 준비하는 고유한 능력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르완다 숲속의 둥지 짓기 행동은 이런 인지 실험실 결과를 야생 현장에 대입해볼 수 있는 생생한 사례다. 불확실한 밤 기상 조건에 대비해, 침팬지들이 ‘위험을 최소화하는 설계’를 선택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 동물의 ‘생존형 기상 전략’에 주목해야
인류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극한 날씨가 점점 잦아지는 시대, 동물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방식으로 ‘날씨를 읽고 견디는지’는 보전 전략 수립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뉴그웨 국립공원 침팬지처럼 둥지 구조와 위치를 정교하게 바꾸는 종은 기온·강수 패턴 변화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지만, 그런 행동 레퍼토리가 제한된 종은 훨씬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점에서 늘 비교의 잣대가 되어온 침팬지가, 단순한 ‘본능의 동물’을 넘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잠자리 하나까지 전략적으로 설계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극단적 기상이 일상화되는 지구에서 인간 역시 “어떻게 내일의 위험을 오늘의 행동에 반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제 침팬지의 둥지 위에서 되물어야 할 시점임을 상기시킨다.























































